수술실에서 저승사자를 만나다

(단편소설) 만년 차장 한만운 개납 생존기 - 12

by 하기

12. 수술실에서 저승사자를 만나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 직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탄 나와 아내는 10시간 만에 두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리무진 승용차가 우리를 버즈 알 아랍 호텔로 데려다주었다. 호텔의 스위트룸에 예약이 되어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병원 측은 생각보다 더 우리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 같았다.

서울대학교 병원이 두바이 정부의 지원으로 위탁 운영하는 두바이 국립병원은 모든 비용과 급여가 정부에서 지급되었고 그동안 큰 수술이 없다가 내가 병원 측에서 두바이 정부에게 보일 수 있는 첫 번째 개심수술 사례가 되어 병원 측에서 신경을 쓴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사와 같이 온 병원 코디네이터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40층에 위치한 스위트룸에서 바라보는 마즐레스 알 바하르 해변은 호텔 투숙객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와 분리되어 있었다. 코발트 색 바다와 화이트 와인 빛 해변은 휴양을 즐기러 온 전 세계 부호들의 경연장 같았다. 숙박비만 수 천만 원에 이르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아내와 나는 내일 병원에 입원할 걱정은 안 하고 호텔과 주변 구경에 몰두하게 된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여기서 쉬다가 갔으면 좋겠다.”

“나도 수술만 아니면 천국에 온 기분일 텐데.” 나는 아내의 말에 아쉬운 듯 대꾸했다.

우리는 상어 수족관이 딸린 해저 레스토랑에서 캐비어 요리를 먹으며 다시는 못 올 세계 초호화 호텔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리무진 승용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두바이 공항에서 70킬로 정도의 거리로 300 병상 규모의 5층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서울의 대형병원만 보아 왔던 우리는 병원이라기보다는 리조트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환자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병원 내부도 한적한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온 간호사가 많아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1인용 입원실에 입원을 하고 나서야 지장은 박사가 왕진을 위하여 방문하였다.

“한만운 환자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여기서 잘 치료해 드릴 테니 걱정 말고 병원만 믿으세요.”

“네. 저는 원장님만 믿고 따라갈 테니 이번에는 재수술이 필요 없도록 완벽하게 수술해 주십시오.”

“저번에는 링 커버 수술이 초기 도입단계라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되었으니 앞으로 건강하게 지내실 일만 남아있을 겁니다. 하하.” 지장은 박사는 나에게 확신을 줄 만큼 강한 어조로 얘기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투 속에 일말의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내심 걱정이 들었다. 이런 걱정은 아내가 지장은 박사와 단독 면담을 하고 나서 입원실에 들어올 때 어두운 표정을 본 순간 현실이 되어 강하게 나를 압박해왔다.

“여보 동의서를 써 달라고 하는 데 당신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쓰기 전에 왔어요.”

“그래. 형식적인 것이니 써야지.”

“아니 그게 아니라 심장 재수술의 경우 성공확률이 많이 낮아진데요. 60% 정도. 셋의 하나는 재수술 후 심장이 뛰지 않아 사망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현재까지 이 방법밖에 당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하네요.”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수술하기 전에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차 수술의 경우 95%의 성공률을 말해서 걱정을 안 하고 동의서를 썼는데. 셋의 하나라니 너무 높은 것 아닌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니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보. 셋의 둘은 살 수 있으면 확률이 높은 거 아닌가. 어차피 인명은 재천인데 우리 진인사하고 대천명합시다.” 아내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아내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눈가가 촉촉해져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처럼 의지하던 누나에게 국제전화를 했다. 누나도 걱정이 되는 듯 나에게 상태를 물어보았다.

“누나. 걱정하지 마. 수술은 잘 될 것 같대. 그래도 워낙 큰 수술이니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잘못되면 정연이와 정연이 엄마 잘 부탁해. 누나가 잘 챙겨줘야 해.”

“무슨 그런 말을 하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아. 하늘에 계신 엄마가 너를 돌보아 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 누나는 나를 위로했지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힘이 없었다.


아내와 내가 있는 입원실에 자꾸 누군가가 어른거렸다. 아내는 누군가를 못 봤냐는 나의 말에 아무도 없으니 내일 수술 잘 받을 생각만 하고 빨리 자라고 하였다. 수술부위를 소독하고 혈관을 청소하는 시술을 마친 나는 잠을 청하려고 하였다. 아내도 보조침대에서 피곤한 지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 순간 검은 갓에 검은 망토를 걸친 남자가 입원실 화장실 쪽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겁에 질려 그를 노려보니 그는 잠시 나를 보다가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저승사자였다. 창백한 얼굴에 검은 입술. 그가 나를 데려 갈려고 왔던 것일까. 나는 으스스한 생각에 잠을 못 자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전신마취를 위해 이동침대에 누워 마취실로 향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은 못 하고 나와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눈으로 했다.

“수술 잘 받고. 5시간이면 끝난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내는 나에게 하는지 자기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취실에 들어가자 마취전문의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내 입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새로운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며 말하였다.

“자. 이제 잠이 드실 거예요. 편안히 계시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시 눈을 떠서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까짓 거 한 번 해보는 거지. 죽을 운명이면 죽고 살 운명이면 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두 번째 전신마취 개심수술에 들어가게 된다.

내가 의식이 든 것은 중환자실이었다. 나의 입에 석션이 삽입되어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로 내가 의식이 있는 걸 알지 못하는 듯하였다.

“이번 수술 정말 힘들었대. 수술 과정에서 몇 번이나 인공심폐기가 작동을 멈추어 환자가 죽을 뻔했다네. 잘못하면 큰 의료사고 날 뻔했어. 휴.”

“그런데 그 얘기 들었어. 수술실 앞에 이상한 남자가 서 있었대. 검은 갓에 검은 망토를 한. 저승사자라도 왔다 간 것인가.”

“어쨌든 저 환자 정말 행운아야. 그 어려운 개심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또 살아나다니. 저승사자도 저 남자의 행운을 꺽지 못했다는 것 아니니. 흐흐.” 그들의 대화는 지장은 박사가 중환자실로 들어오며 중지되었다.

지장은 박사는 내가 눈을 뜬 것을 보더니 반가워하며 말하였다.

“한만운 환자분. 수술 성공했습니다. 축하드려요. 이제 다시 재수술할 일은 없을 거예요. 심부전도 없고 부정맥도 없고 모든 게 정상적입니다. 심장근처에 고인 혈전은 모두 제거됐고 링커버도 최신 모델로 재장착하였습니다. 앞으로 종기도 다시 생기지 않을 거예요.”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지장은 박사의 가늘고 하얀 손을 꼭 쥐었다. 박사도 손을 치켜들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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