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장덕의 님 떠난 후

그녀가 떠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by 하기

명곡의 탄생, 장덕의 님 떠난 후

그녀가 떠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남아있어요

홀로 남아 이렇게 생각해봐도

어쩌면은 그것이 잘 된 일이야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을 알게 됐지만

사랑을 하면서

슬픔은 커져만 가고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 못 하면

우리의 갈등은

자꾸만 커져 갔지요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떠난 님이 그리워

방황하고 있어요

미워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


장덕은 1976년 현이와 덕이라는 남매 듀엣 그룹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장덕이라는 이름이 각인된 것은 1977년의 제1회 서울가요제를 통해서였다. 빵모자를 쓰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15세 천재 작곡가, 볼우물이 깊게 파이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적인 외모는 한순간에 대중들을 매료시킨다.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은 그녀의 감수성과 천재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녀의 노래 속에 침잠해있는 깊은 슬픔의 아우라는 불행했던 가족사에서 연유한다. 첼리스트였던 아버지와 서양화가인 어머니는 그녀에게 예술적 재능이라는 선물을 유전적으로 주었지만 성격적 불화에 따른 부부의 이혼은 사춘기의 소녀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를 닮아 분신 같았던 오빠 현이와 같이 살지 못하고 가끔 만나 반가움에 행복해하지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녀와 가로등을 만든 것이다. 오빠는 덕이에게 먼저 배운 기타를 가르쳐주며 음악 속에서 동생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빠의 바람대로 장덕은 음악을 통하여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후 3년 연속 서울가요제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오빠와 만든 덕이와 현이라는 그룹 활동도 노래 가사에 어울리는 귀여운 외모로 오늘날의 악동뮤지션의 원조처럼 국민남매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서구적인 외모로 어필하며 러브콜을 받는다. 그러나 가족은 다시 그녀의 굴레가 된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아버지와의 불화와 스트레스는 그녀에게 이른 나이에 불면의 밤을 맞게 한다. 수면제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번민의 날들이 더 큰 불행을 잉태하고 있는 나날이 계속된다.


딸의 음악적 재능이 불행한 가족사 때문에 꺾이는 것을 걱정하였던 그녀의 모친이 그녀를 미국으로 초대하여 테네시 주립대학 작곡과에 다니게 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미국에서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행복의 길을 찾은 듯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짧은 결혼생활은 서로의 성격차이로 끝이 나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향수병이 되어 귀국하는 그녀.


짧은 미국 유학생활이었지만 선진국의 음악수업을 받은 그녀는 음악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사랑의 경험은 그녀에게 더 많은 창작의 소재를 제공하였다. 오빠와 함께 부른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가 히트하고 연이어 솔로로 부른 '님 떠난 후', '앵무새', '이별인 줄 알았어요'가 성공하면서 그녀는 천재 작곡가 소녀에서 스타 가수로서 발돋움한다.


소녀와 가로등에서 보여줬던 기타와 피아노 반주 위주의 감수성 있는 발라드는 타악기와 현악기를 두루 사용하고 비트감이 살아있는 댄스곡으로 발전하고 미국에서 배워온 전자음악 기법을 작곡에 도입하여 대중들은 그녀의 세련된 가요에 열광하게 되었다. 이은하에게 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대가수의 재기를 이끌고 큰 사랑을 받으며 작곡가로서도 그녀는 동료와 대중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인기는 또다시 불행한 가족사 때문에 위기를 맞이한다. 이혼 후에 영혼의 분신같이 서로 의지하였던 오빠가 말기 설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가수로서의 생명연장을 위하여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하지만 그 과정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마음이 여렸던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또다시 불면의 밤이 이어지고 약물의 유혹에 빠져든다.


대중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댄스곡을 부르는 그녀를 보며 행복해했지만 막상 무대 위 화려함 뒤에 가려진 깊은 슬픔과 우울은 보지 못했다. 그녀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소비하며 만족해하는 대중들에게 개인적 불행으로 더 이상 줄 게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그녀는 우리에게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라는 곡을 통하여 이별을 예고한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대의 마지막 겨울 눈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잎새처럼 가족들과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차가운 동토에 묻혔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오빠 장현도 동생을 따라 밤하늘의 별이 되고 만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인터넷과 유튜브를 검색하면서 그녀의 운명을 맞닥뜨린 나에게 계속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귓가를 맴돌았다. 백석의 시들이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듯이 장덕이 남기고 간 명곡들은 불행의 굴레와 병마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대중들에게 영원히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떠나고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선물이 아닐지. 우리 모두의 운명에 예정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위하여...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승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ncY7Qlfm9oQ

https://www.youtube.com/watch?v=HE_K-VbkIUI

https://www.youtube.com/watch?v=wPkuhmixjB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명곡의 탄생, 전영록의 종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