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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Dec 25. 2022

죽지 않는 할머니의 은밀한 비밀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 공지영

죽지 않는 할머니의 은밀한 비밀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 공지영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제목 그대로 죽지 않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사의 기로를 넘길 때마다 젊은 가족이나 지인이 죽어나가는 엽기적인 일이 반복되면서 가족의 불행이 점증되는 서사를 통하여 현대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이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을 빗대어 풍자하는 우화소설에 해당한다.


그날 식탁에 대충 차려놓고 할머니를 부르러 가자 할머니는 경대 앞에서 루주를 바르고 있었다. 그 루주 빛은 너무 붉어서 외삼촌의 젊은 피 같았다. 나는 순간 할머니가 막내외삼촌을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밑도 끝도 없이 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젊은 남자 하나를 잡아먹은 늙은 여우의 형상이었다. 누군가가 네가 그런 여우를 보기라도 했느냐고 물으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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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기억 속의 할머니들은 손자들이 예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하나 더 주지 못해 애달아하는 아가페적 모습이었기에 소설 속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묘사에 약간의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대갈등을 부추긴다는 느낌. 아마 작가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어머니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땅을 보러 다녔다. 우리 집은 더 부자가 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 덕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할머니에게는 돈 벌어다 주는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어. 희한하지. 저 양반이 찍으면 영락없이 1년 이내에 값이 두 배로 뛰는 거야...... 여동생은 그날 이후 내내 침대에 누워 책을 보거나 아니면 가끔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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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할머니는 가족들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사실적 모습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면 소설의 개연성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한다. 자신보다 약하고 여린 사람들의 희생을 통하여 자신의 부와 명예를 이어나가는 유한계급에 대한 쓴소리로 읽으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명확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살아 있는 것들이 많다. 할머니보다 약한 것들도 너무도 많다. 할머니는 그래서 오늘도 죽지 않는다. 장마가 시작된 이래, 오래된 우리 집 정원에는 습기 차고 더운 공기가 진득하게 차 있다. 무언가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 비가 오면 잠시 냄새는 사라졌다가, 싱싱하게 고개를 드는 자운영이나 여뀌의 풋풋한 내음을 압살 하며 냄새는 다시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서서히, 그러나 격렬하게 썩어가는 냄새,...... 내 말을 믿어줄 분들, 그리고 나와 내 여동생이 살아날 방도를 아는 분들의 전갈을 바란다. 내 이메일 주소는, wildcat@hellchosun.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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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노인을 혐오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어떤 소설(박형서 소설가, 당신의 노후 참조)은 고액 연금을 받는 노인들만 살해하는 미래직업을 소재로 디스토피아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소설이 이런 미래에 대한 전주곡이 되지 않고 복지국가 모델이 잘 적용되어 모든 세대가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갖춰지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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