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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Feb 26. 2023

달의 뒤편 / 장석주


달의 뒤편 / 장석주



그믐밤이다, 소쩍새가 운다.


사람이건 축생이건 산 것들은


사는 동안 울 일을 만나 저렇게 자주 운다.


낮엔 喪家상가를 다녀왔는데


산 자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풍년이었다.


무뚝뚝한 것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앞이 막혀 나갈 데가 없는 자리에서


'죽음!'이라고 나직이 발음해본다.


혀뿌리가 목젖에 붙어 발음되는


이 어휘의 슬하에 붙은 기역 받침과


막다른 골목의 운명은 닮아 있다.


저녁 산책길에서 똬리 튼 뱀을 만나고


저수지에서는 두어 번 돌팔매질을 했다.


작약 꽃대가 두 뼘 넘게 올라왔다.


그믐밤이다, 直立人직립인의 앞길이 캄캄하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시는 커피는 쓰고 깊고 다정하다.


다시 혼잣말로 '죽음!' 해본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바닥이 아니었다.




장석주 시인 프로필


1955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시 '심야'로 데뷔


시집 '절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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