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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Jun 18. 2023

벽돌깨기


벽돌깨기 / 하기



반질한 나무상자 속에서

비쭉 얼굴을 내밀고

처음 네가 세상에 선보이던 날

동네 삼거리 구멍가게 앞에는

코찔찔이 아이들의 눈빛도 웅성거렸지


100원짜리 동전을 

너의 주머니에 넣으면

흑백모니터에는 전자음과 함께

깨야 할 벽돌들이 나타나고

나는 기다란 막대기로 화면 속 흰 공을 튕기며

흑백모니터 속 정사각형 벽돌을 깨야했네


화면 속 벽돌을 다 깨고 나면

낭랑한 미디음의 팡파르가 울리고

축하의 꽃다발이 화면을 가득 채웠지


화면이 바뀌고 난이도가 높아진

새로운 스테이지가 나타나면

동네 꼬마들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영화 속 슈퍼맨 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네


그때 나는 알지 못했지

한 계절이 가기도 전에 벽돌깨기보다

천배는 재밌고 신나는

겔라그제비우스테트리스가

화려한 컬러로 오락실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은 내가 깨야할 벽돌보다는

나에게 던져질 벽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하얀 막대기로 흰 공을 튕겨내며

보너스 스테이지 벽돌을 깨던

그때 나는 알 수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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