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한 나무상자 속에서
비쭉 얼굴을 내밀고
처음 네가 세상에 선보이던 날
동네 삼거리 구멍가게 앞에는
코찔찔이 아이들의 눈빛도 웅성거렸지
100원짜리 동전을
너의 주머니에 넣으면
흑백모니터에는 전자음과 함께
깨야 할 벽돌들이 나타나고
나는 기다란 막대기로 화면 속 흰 공을 튕기며
흑백모니터 속 정사각형 벽돌을 깨야했네
화면 속 벽돌을 다 깨고 나면
낭랑한 미디음의 팡파르가 울리고
축하의 꽃다발이 화면을 가득 채웠지
화면이 바뀌고 난이도가 높아진
새로운 스테이지가 나타나면
동네 꼬마들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영화 속 슈퍼맨 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네
그때 나는 알지 못했지
한 계절이 가기도 전에 벽돌깨기보다
천배는 재밌고 신나는
겔라그, 제비우스, 테트리스가
화려한 컬러로 오락실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은 내가 깨야할 벽돌보다는
나에게 던져질 벽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하얀 막대기로 흰 공을 튕겨내며
보너스 스테이지 벽돌을 깨던
그때 나는 알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