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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Sep 28. 2023

신학과 관념에 대한 언어유희를 통한 성경의 재해석

소돔의 하룻밤, 이승우



이승우 소설가의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신학적이고 관념적인 문체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신학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작가의 이력답게 소설가는 성경의 내용을 전문가적 시선으로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동일한 서사의 반복과 점층적 관념의 직조라는 소설가의 개성적인 문체는 대부분의 평론가를 이승우의 소설에 매료되게 만드는 개성이 있다.


그들이 하려고 하는, 그들이 모르는 나쁜 짓은 큰 무리, 무리 지어 이루어진 힘센 한 집단이 개별자로 떨어져 있는 힘없는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다. 다수의 무리로 이루어진 집단이 집단을 이루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이라고 할 수 없는 소수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구별되지 않는 동일성의 한 세계가 낯설고 이질적인 외부자에게, 단지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영역 안의 다수의 구성원들이 영역 밖에서 들어온 개인이나 소수의 외지인들을 욕보이는 것이다. 나그네들에게 성적으로 폭행을 가하겠다는 소돔성 남자들의 위협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의 극한에 있는, 모든 물리적 폭력의 심중에 있으며 모든 폭력이 그 폭력을 통해 명중시키려고 하는 표적이기도 한 혐오와 모욕이다.
소설 본문 중에서


어느 시대나 소수자나 아웃사이더에 대한 혐오와 멸시는 존재하였던 것 같다. 소돔이라는 도시도 유별나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외부자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도시는 아니었다. 오히려 외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그들에 대한 집단 테러의 형태로 분출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사회였다. 이런 점 때문에 주인공 롯은 항상 외부자의 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들을 자기 집으로 도피시켜 안전을 도모하게 하였다. 롯은 기본적으로 인성이 선량하였기에 도시의 집단적인 혐오와 모욕으로부터 손님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부분의 도시인들과는 달리 소돔의 풍요로움과 화려함과 자유로움의 뒤에 있는 차별과 악덕과 문란함을 구별해 낼 줄 알았지만, 그러나 그 역시 그 공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시는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는 도시가 제공하는 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도시인이었다. 그는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도시가 무조건 사람을 나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소돔을 싫어했고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소돔 사람들을 싫어했고 도시를 사랑했다. 그는 소돔 사람들(의 차별과 악덕과 문란함)의 멸망에 대해서는 놀라지도 않고 아쉬워하지도 않았지만, 도시(의 풍요로움과 화려함과 자유로움)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고 아쉬워했다.
소설 본문 중에서


소돔의 사람들을 경계하기는 했지만 롯도 본질적으로는 도시인이었다. 그래서 천사들이 소돔을 벌주고 유황과 불로 파괴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산으로 도피하기를 권유할 때 못내 아쉬워하며 이웃 도시로의 탈출을 제안한 것이었다. 소돔 사람들을 용서하기는 힘들었을지라도 소돔이라는 도시는 그에게 자유의 공기를 주었다. 한 번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자유가 없는 평화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한 인생의 연장일 뿐 삶의 환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이 소돔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 나았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파괴되지 않는 성이 파괴된 성보다 더 정의로웠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보다 더 착할 거라고 판단할 수 없다. 오늘 살고 있는 사람이 어제 죽은 사람보다 살 가치가 더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롯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 두려웠고, 성으로 피신한 자기 선택을 후회했고, 산으로 도망가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어야 한다고 뒤늦게 깨달았고, 그래서 산으로 도망가서 숨어 살았다.
소설 본문 중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이라는 장편소설로 등단을 할 만큼 장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설가이다. 장편을 잘 쓴다고 해서 그의 단편이 초라하지는 않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중단편에서 관념적 소재를 가지고 서사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그의 치밀한 문체는 많은 아우라를 품어 내며 독자와 평론가들을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신형철 평론가와 함께 문학의 길로 학생들을 인도하는 교수이기도 한 그는 창작에의 열정도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못지않게 젊고 싱싱하여 현재까지 왕성하게 그의 문학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그런 그의 작업이 한국 문단에서 지울 수 없는 가치로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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