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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Mar 05. 2023

황사보다 무서운 더스트의 재앙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SF단편소설로 화려하게 데뷔한 김초엽 소설가가 첫 장편을 들고 나타났다.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으로 먼저 선공개된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종이책으로 출간되게 된 것이다.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본문중에서


다국적기업이 연구하던 프로젝트에서 치명적 오류가 발생하여 세상은 더스트라는 오염물질로 덮이게 된다. 핵폭풍보다도 무섭다는 먼지폭풍은 세상을 뒤덮고 인류를 절멸에 가까운 위기로 몰고간다. 사람들은 생존수단으로 돔을 건설하고 돔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돔 밖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유리된 채로 더스트와 죽음의 공간으로 내몰린다. 미운 놈과 좋은 사람들은 구분되지 않은 채 모두 죽어가는 더스트로 오염된 지구를 구원할 사람은 정녕 없단 말인가?


사람들은 레이첼이 마을을 구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레이첼이 만든 덩굴식물이 더스트 폭풍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고. 아무도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눈 앞의 현상을, 살아남은 마을을 목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더스트 폭풍 사건은 거의 신앙심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그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본문중에서


더스트를 만들어 낸 기업의 연구실에서 식물을 연구하던 사이보그 레이첼. 그녀는 더스트를 만들어낸 연구실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더스트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하여 프림 빌리지라는 돔 밖 마을 끝 언덕에 온실 연구소를 만든다. 더스트 내성종으로 돔 안에서 하루하루 기계를 수리하며 근근히 살아가다 실험대상으로 전락할 위기를 피하여 돔 밖으로 도피한 엔지니어 지수는 로봇팔을 치료하러 온 레이첼과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된다.


"제 생각은 분명해요. 우린 프림 빌리지를 지켜야 해요. 이 마을 밖은 아주 끔찍해요. 전 돔 시티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봤어요.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위해 절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요. 인류를 구하겠다는 생각같은 건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더스트에 버티는 식물들을 가져가면, 그들은 횡재를 했거니 생각하며 뺏어가겠죠. 그러고는 우리를 죽일 거예요."

본문중에서


레이첼의 연구결과가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고 확신하는 지수. 하지만 레이첼은 세상의 구원보다는 매력을 느끼게 된 지수라는 파트너가 자기를 떠나지 않고 계속 프림 빌리지에서 자신과 함께 지내기를 갈구한다. 지수도 레이첼에게 강하게 끌리며 그녀의 뇌를 치료하다 최근친에게 매료당하는 시스템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레이첼을 더욱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프림 빌리지가 외부의 공격에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마을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덩굴식물을 들고 도피하여 돔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배신자로 마을은 양분되어 반목과 갈등이 극심해지며 돔 밖 다른 마을들처럼 프림 빌리지에도 종말이 다가오게 된다.


어떤 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 혹은 관측으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확한 분석을 거쳐 귀납적으로 하나의 이론을 이끌어낸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과학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떤 기묘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의 근거를 끈질지게 쫓아가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유효한 과학적 방법론일지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본문중에서


뿔뿔히 흩어진 마을 사람들이 심은 덩굴식물들이 더스트 퇴치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인류는 드디어 더스트 해결법을 찾아내고 만다. 그 과정을 역추적하며 레이첼과 지수의 존재와 프림 빌리지 마을의 전설을 마주하는 과학자 아영은 레이첼을 워크샵에 초대하고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한 번 읽어서는 전체적인 윤곽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2회독 시에는 작가의 과학적 지식이 기초가 되어 만들어 낸 미래 디스토피아의 모습에 푹 빠져 들었다. 지구 끝의 온실의 매력을 온전히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필수적으로 2회독 이상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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