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여름
수박향이 나는 물고기에 대해 알고 있니
은어라는 이름의 물고기래
때로 어떤 문장은 화석처럼 박힌다
언젠가 우리 물 맑은 곳으로 떠나자, 약속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한 사람의 눈동자보다 깊은 수심은 없어, 어디에도
흐리고 비, 흐리고 가끔 비
물고기에게서 어떻게 수박향이 날까
은어는 초록 이끼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대
허공에 떠다니는 우울을 알뜰하게 모아
바라봤다 나는
우리 사이, 이끼와 수박향의 거리만큼 가깝게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없이, 투명한 여름
약속처럼 언젠가는 오지 않았고
몇 번의 여름을 서툴게 배웅하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적 없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때때로
저기 밤의 웅덩이에서 피어오르는 목소리
은어가 돌아올 때까지 뭘 하며 지낼 거야
여름이 오지 않기를 믿으며 바라며
뭘 하며 지낼 거야 한 사람이 사라지면
원이 닫히지 않기를 바라며 믿으며
종이 위 빗방울이 마르는 동안만 뭉클할 것, 내내
이제 수박 예쁘게 자르는 방법 따위를 지우며
수심을 다스리자 안녕 초록 이끼로 번지는 우울들아
먼 데 화석으로 반짝, 밤을 건너는 물고기자리
이은규 시인 프로필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다정한 호칭'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