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며칠 전부터 헐어있던 입안을 달래 줄
흰죽 한 사발이 그리웠던 참인데
아내라고 중얼거려 보면
뜨끈해진 입안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의 아내인 나는
누군가의 뒤꼍인 사람
그러므로 비가 내리는 메가박스 뒷골목에서
꽃무늬 우산을 쓴 아내를 기다려 보았다
아내를 불러보는 동안
누군가가 기다리는 사람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반쯤 젖은 채 어깨를 부딪쳐 갔다
눈을 감으면
나를 기다리는 무수한 아내
없으면서도 있는, 이마를 짚어주는 아내
누군가의 뒤꼍이 될지언정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녹색으로 바뀐 건널목을 급히 뛰어가는
아내를 붙잡지 않았다
김온리 시인 프로필
부산 출생
2016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야, 부르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