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하여 책상 위에 놓인 탁상달력을 보니 올해도 벌써 3분의 1이 지나고 석 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토마스 만은 그의 대표작 ‘마의산’에서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객관적인 총량으로서의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주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시간은 객관적인 수량에 상관없이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그는 소설에서 처음 7개월간의 여정을 책의 7장 중 다섯 장에 해당하는 만큼 할당하고 나머지 6년 반의 여정은 2장의 분량도 할당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의 주관적 분량에 대하여 강조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은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젊었을 때보다 우리의 생활이 단순 반복적인 사이클을 반복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에 따른 학문 단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십오 세에 志學하고 삼십 而立 사십 不惑 오십 知天命 육십 耳順 칠십 從心所欲不踰矩라.”이처럼 각자의 나이에 맞는 각자의 소임이 있다고 우리의 선현들은 생각해왔던 것 같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100세 장수 시대에 나이에 따른 사람의 분류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 60세는 예전처럼 노인이라 부르기엔 너무 젊다. 오히려 중년이나 장년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그만큼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관리로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신체적 능력은 떨어지고 음식에 대한 소화력도 떨어지지만 나쁜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넓어지고 경제적 안정 속에 취미생활 등에 투자할 시간도 많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자주 언급하는 말 중에 “너희 늙어 봤냐? 우린 젊어 봤다.”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자신이 겪어 온 젊음에 대하여 인식하며 노년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음을 젊은이들에게 암시한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삶에 대한 여유와 관조의 태도를 갖는 것에 대하여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꼰대 짓한다며 백안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도 ‘아재 개그’라는 등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풍조를 부채질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참 갑질이 대한민국의 독특한 풍조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아 안 좋은 생각이 드는데 청춘과 장년층 사이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우기 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볼 성 사나운 짓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어른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도 좋지 않다. 모든 지 솔선수범하고 어린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심 없이 대할 때 젊은 사람들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 면종복배가 아닌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젊음이 특권이 아니듯이 나이 듦이 특권으로 작용해서도 안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 간에 어울림을 통하여 노년의 지혜가 청춘을 살아가며 아파하는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때 사회적으로 세대 간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어갈 것이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노년을 활기차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체력을 유지하고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꾸준한 운동을 청장년 시절부터 해야 한다. 적당한 근육 량과 체격을 갖고 업무와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 운동은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 건강에 운동이 좋다면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취미 활동이 하나 이상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취미를 통하여 교우관계도 넓힐 수 있고 삶의 의미도 확보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본인한테 맞는 취미생활을 발견하여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노년에 외롭고 심심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의학이 발전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시대에 노년의 삶의 질은 육체적 건강과 건전한 멘털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나이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무기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후회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