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내가 산책하는 천변에는
황새, 백로, 왜가리, 까마귀, 산비둘기도 있고
꽃, 풀, 억새, 갈대, 바람, 여명, 노을도 있다.
내가 산책하는 역주변에는
서점, 상점, 분식집, 레스토랑, 커피집, 떡집도 있고
볼링장, 당구장, 탁구장, 만화방, 비디오방, 콜라텍도 있다.
내가 산책하는 동네에는
골목, 단독주택, 아파트, 고시원, 도서관도 있고
사람들, 강아지들, 옆집아저씨, 옆집아줌마, 딸내미친구, 집사람지인도 있다.
이 모든 것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내 두 발, 두 눈, 두 귀가 아직 멀쩡한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산책한다.
자연인은 목수다
가구도 만들고 집도 만든다
자연인은 요리사다
닭도 잡고 회도 뜬다
자연인은 예술가다
시도 쓰고 기타도 친다
자연인은 부자다
땅도 있고 연못도 있다
자연인은 한의사다
약초도 캐고 약차도 달인다
자연인은 스포츠맨이다
헬스도 하고 골프도 친다
자연인은 완벽하지만
자연인 속에 자연은 없다
자연이 없는 자연인을
자연은 좋아할까?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나는 자연인이 아니다
딸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영어를 복습한다
딸내미가 아빠 발음 구려 하며
유창하게 원어민처럼 발음할 때
야나두, 뇌새김, 시원스쿨이 생각난다
조카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바둑을 복습한다
9점 접바둑이 맞바둑으로 바뀌어
계가를 하며 복기를 할 때
나의 인생이 아직 미생임을 깨닫는다
후배에게 업무노하우를 전수하며
업무를 복습한다
나도 모르는 업무노하우를
술술 꾀고 있는 후배를 볼 때
불현듯 불안감이 몰려온다
상사에게 탁구를 레슨하며
탁구를 복습한다
전무님 나이스 드라이브하며 매일 져 주지만
승진은 전무님 학교후배가 먼저 할 때
스카이의 높음을 알게된다
예습할 수 없는 인생
오늘도 나는 인생을 복습한다
탁구를 하다가
요통이 생겼다
안 쓰던 근육에 갑자기 힘을 줘서
몸이 놀랐나보다
욱씬거리는 옆구리에
파스를 붙이며 생각한다
인생도 탁구도
힘 빼고 천천히 가야
뒷 탈이 없다는 것
물처럼 강처럼
그렇게 유유히 흘러
아무도 모르게
바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
또 하나의 아픔이
나에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감기처럼 지나간다
말려도 말려도
속 깊은 쓴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씹어도 씹어도
인생의 쓴맛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른 내 목에
촉촉한 훈기를 주는
고마운 너의 이름은,
질경이!
사람들은 말하지
세상은 정글이라고
정글에선 오늘도
시인처럼 맑은 눈을 가진
사슴이 맹수들에게 물리어
생살을 뜯기며 죽어간다
멀리서 사슴무리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그 사슴을 도와줄 수 없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슴들도
사슴을 물어뜯는 맹수들도
거역할 수 없는
정글의 법칙
어제처럼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한 마리 사슴의 죽음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며
각자의 우산을 펴고
비정한 도시의 정글 속으로
또 다시 걸어 들어간다
오늘도 딸아이는 핸드폰과 함께
시체놀이를 한다
시체들이 주고 받는
카톡문자는 좀비들의 암호
ㅋ ㅋ
ㅇ ㅈ
ㄷ ㅊ
ㄲ ㅈ
“이거 한국말이야?”
“응 아니야”
“암호 해독 좀 해줘”
“시러”
내가 딸내미에게 카톡을 보내면
언제나 읽씹
이런 된장!!!
라디오에선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나오는데
창 밖에는 비가 온다
비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를 몰고 마트에 간다
집에는 없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입구에서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가족들 선물을 사고
먹거리를 쇼핑하고 나면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난다
마트에서 보내는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트!
Metoo “왜 나만 갖고 그래”
Youtoo “너도 했잖아”
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불 “남이 하면 불륜”
Withyou “우리는 친구”
Onlyyou “니가 문제야”
2018년 대한민국 웃픈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