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지막 행운 - 8
나는 다음날 제주도 이사 준비로 바쁘다는 이유로 연가를 내고 혼자서 Y의 아파트 주차장으로 찾아갔다. 하얀 원피스의 그녀를 만났던 계단 근처로 가자 둘둘 말린 헝겊 같은 것이 모서리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펼쳐보았다. 여기저기 찢기고 때가 묻어 처음에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항상 입고 나타났던 원피스였다. 꿈속에서 옷을 벗었던 그 장소에 그녀의 옷이 있었던 것이다. 원피스를 자세히 살펴보니 안쪽에 검은색 실로 영문 이니셜이 박음질되어있었다.
"LSJ ♡ KJW"
나는 원피스를 가지고 온 가방에 집어넣은 후 피시방에 가서 그녀에 대한 옛날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통하여 그녀가 사랑했던 연인이 그녀가 사고로 죽은 후 군대에서 총기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수소문을 통하여 그녀의 여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여동생을 만나서 원피스를 보여 줬더니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옷은 사고 당시 언니가 입고 나간 옷이에요. 군대에 간 남자 친구가 입대 전날 선물한 거라고 나에게 자랑했죠. 그리고 원피스 안쪽에 자기가 오빠의 이니셜과 자기 이니셜을 직접 실로 새겨 넣은 거라 군대 간 오빠를 면회 갈 때도 꼭 입고 갔었어요.”
“그럼 사고가 나고 시신을 찾으셨나요?”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니요.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고 후 휴가를 내고 나온 오빠가 사방팔방에 도움을 구해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원통해하며 군에 복귀하던 모습이 선하네요. 그게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죠. 총기사고라고 하지만 오빠를 아는 사람들은 연인을 잃은 충격에 자살을 했다는 말들이 나온 것 같아요. 오빠의 이름이 김정우였어요. 양주에 있는 선산에 매장되었죠.”
“그럼 이 원피스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오빠의 무덤에 합장을 하고 싶은데 그쪽 집안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시신을 못 찾아 수정언니와 오빠를 합장시켜주지 못했거든요, 지금이라도 이 옷을 태운 재라도 같이 묻어 주고 영혼결혼식을 시켜 주고 싶어요.”
우리는 이런 사연을 남자 쪽 집안에 전달했다. 남자 쪽 집안에서도 총각으로 결혼도 하지 못한 아들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던 처지라 자연히 동의를 해주었다. 우리는 둘이 같이 다녔다는 절의 스님에게 부탁하여 원피스를 태운 재를 양주에 있는 김정우의 무덤에 같이 묻어주고 영혼결혼식을 올려 주었다. 양쪽 집안을 대표하여 이수정의 동생과 김정우의 동생이 참여하였다. 그들이 의식을 모두 끝내고 돌아간 후 나는 그녀에게 소주 한잔을 올리고 갖고 온 차를 타기 위하여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나를 보고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나의 흰색 아반떼 승용차에 올라탔다.
나는 상계동 임대아파트를 떠나 제주도에 이사를 하였다. 임대아파트를 인수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직원이라 기존 가구를 거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하여 나는 많은 짐 없이 제주도로 올 수 있었다. 영희와의 추억이 있는 임대아파트라 정도 들었지만 영희 생각도 많이 나서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여름휴가를 내고 발령일보다 1주일 먼저 제주도로 내려왔다. Y와 관련된 업무 등을 후임자인 남반구 반장에게 모두 인계인수하여 사무실에서의 일을 마무리하였다.
입사동기인 강창배 반장에게 부탁하여 원룸을 계약한 나는 강창배 반장을 공항에서 만나 그의 차를 타고 내가 거처할 원룸으로 갔다. 원룸에는 텔레비전, 냉장고, 인터넷 피시 등이 모두 빌트인으로 갖추어져 있어 내가 새로 구입해야 하는 가구가 없었다. 나는 가지고 온 옷가지와 책 등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사를 마무리하고 강반장과 함께 족발을 먹으며 한라산 소주 한잔을 하였다.
“이번에 재산제세 전화상담팀으로 발령 난 것 같아.”강반장이 말했다.
“저번에 전화로 얘기해줘서 알고 있어. 그럼 나랑 같은 반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기존 직원들이겠네.”
“올해 전입했으니까 오래되지는 않았어. 반년 정도 근무했지. 여자 1명에 남자 1명. 아니 근배 씨가 왔으니 남자 2명이군.”
“둘 다 결혼했지?”
“응. 남자 직원 지용태는 이번에 득녀했고... 여직원인 장인수 반장은 나이가 근배 씨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데 이혼했다고 들었어.”
“이혼?”
“응. 남자가 잘 나가던 세무사였는 데 바람을 피웠나 봐. 위자료로 강남의 아파트 하나 얻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왜 관심 있어.”
“아니, 내가 아는 세무사가 최근에 이혼을 해서 혹시나 하고... 설마 아니겠지.”
“전남편이 김동호 세무사라고 최근에 우리 청 공무원이랑 사귀고 있다고 하던데...”
나는 강반장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김동호 세무사의 전부인이랑 같이 근무하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태연한 척하며,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네. 하하. 그럼 앞으로 창배 씨만 믿을게. 잘 지내보자고 제주도에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