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동블루스(2) - 단편소설

by 하기

2.


현철의 아버지는 현철을 낳았을 때 50세가 넘어 있었다.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10년간 홀아비로 지내다가 재혼한 여자가 현철의 생모였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아가씨와 결혼했다고 동네 남자들로부터 시샘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 탓이었을까. 현철의 생모는 현철을 낳고 2,3년간 시름시름 앓더니 현철이 세 살 되던 해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현철의 아버지는 자기 팔자에 여자 복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그 후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전국을 떠돌며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며 지냈다. 도배와 미장기술이 있어 집 짓는 곳이 그의 일자리였다.


현철은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의 집에서 자랐다. 스무 살이나 터울지는 이복형이 아버지 역할을 하였다. 형은 결혼을 일찍하여 형수를 집에 들였다. 현철은 엄마같은 나이대의 형수, 이복남매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복형제간이라 그렇게 깊은 정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형도 나이 어린 현철을 불쌍히 여겨서 형제간에 불화는 없었다. 그러나 현철은 형보다는 누나와 친하게 지냈다. 누나가 현철을 바라보는 동정어린 눈길이 모정을 그리워하던 현철에게 엄마의 정을 원초적으로 느끼게 해 준 탓일지로 몰랐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사업을 해서 마련한 이문동의 단독주택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는 두세 달에 한 번씩 들러 돈을 내놓고는 1주일 정도 머물다가 집을 떠났다. 아버지가 오면 형과 형수, 누나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같이 살자고 졸랐지만 현철은 왠지 아버지가 낯설어 근처에 가지 않았다.


“현철아, 니는 아버지 보고 싶지 않았나?”아버지는 소 닭보듯 자신을 보는 현철에게 한번은 섭섭한 듯 물어보았다.


“아니요. 그냥 할 말이 없어서.”머뭇머뭇하며 중얼거리는 현철을 보며 아버지는 안쓰러운 듯 바라보시다가 1,000원 짜리 한 장을 지갑에서 꺼내어 현철의 손에 쥐어 주곤 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집을 떠나 건축현장으로 갔다.


아버지가 떠난 후 현철은 집에서 혼자 있는 날 전화를 받는다. 불길하게 울리던 수화기를 들자 난생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아, 여기 건축현장인데 혹시 장씨 아저씨 댁인가요?”


“네, 그런데요. 우리아버지가 장씨인데...”


“그래 혹시 어른 안계시니? 아버지가 현장에서 떨어지셔서 크게 다치셨어.”


현철은 옆의 집에 마실을 나간 형수에게 급히 뛰어 가 전화를 돌려준다. 전화를 받은 형수의 얼굴이 노래지더니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아버지가 건축현장에서 추락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식날 곡을 하는 형과 누나 사이에서 현철만 울지 않았다.


“현철아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안 슬프니?”누나가 현철의 손을 잡으며 장례식장에서 물어보았다.


“슬퍼.”현철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안 울어?”


“눈물이 안 나와.”


그런 현철의 얼굴을 누나는 신기한 듯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현철의 집에서는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아버지의 수입이 나오지 않아 생계가 곤란해졌다. 형이 아버지의 역할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지만 작은 중기회사에 다니는 처지로 월급이 많지 않아 형수는 조금이라도 수입을 보태기 위하여 현철이 지내던 아버지의 방을 비우고 대학생들에게 하숙을 쳤다.


안채와 떨어져 따로 입구가 있는 별채에 인근에 있는 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형들이 하숙을 하였다. 처음에는 학교에 오래 있어 현철과는 부딪히는 일이 없없다. 현철은 형들을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겨울에 일어난 군인들 간의 총격전 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광주에서 일어난 일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교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형들도 학교에 출석하지 않게 되자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형들이 자주 현철과 마주쳤고 형들의 방에 들어가서 과자를 먹으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나도 형들에게 관심이 있는 듯 현철과 함께 형들 방에서 간식을 먹고는 했다. 누나는 현철과 형들에게 떢볶이 등 간식을 만들어 주어 형들도 누나를 좋아했다.


“현철아 내년이면 중학생 되는 데 영어공부는 좀 했니?”


“아니요. 아직 공부한 적이 없는데...”


“그럼 형이 영어 가르쳐줄테니 배워볼래?”


“혼자 공부하기 힘들었는데 좋아요. 형.”


형들과 영어공부를 하며 친해진 현철은 형들로부터 사회 돌아가는 거와 현재의 정치상황 등에 대하여도 듣게 되었다. 형들은 조만간 보안사사령관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현철은 형들이 나가고 없을 때 형들 방에서 놀다가 한쪽에 있던 성인잡지들을 보게 된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도색잡지들이었는데 한창 여자에 관심을 가질 나이였던 현철은 그런 잡지들을 보면서 여자의 신체와 자신의 남성에 대한 자각을 하며 사춘기에 접어들게 된다.


형들은 대학생들이라 미팅을 하고 연애를 하여 연애상대인 여자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현철은 여자친구가 있는 줄 모르고 형들 방에 들어갔다가 한참 스킨쉽에 몰두한 남녀의 모습에 놀라 문을 닦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형과 여자친구의 모습에 잡지에서 보았던 장면이 생각나며 얼굴이 빨게 지곤 했다.


형들과 친해진 현철은 그 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형들하고 누나와 같이 가게 된다.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탈리아 전에 1루측 내야석에 앉아 평생 처음 오는 야구장에서 추억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이 이기고 누나의 손을 잡고 관중들과 함께 우르르 나오며 바라 본 동대문의 야경을 현철은 오래 기억하게 된다. 어쩌면 순수하게 행복을 느꼈던 드문 순간이라 그날의 감정을 잊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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