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동블루스(3) - 단편소설

by 하기

3.


현철은 누나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외대생들에게 별채를 하숙 치면서 안채에 있는 방 2개 중 안방은 형님 부부가 거처하고 누나 혼자 쓰던 작은방을 같이 쓰게 된 것이다. 누나는 현철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내주며 본인은 윗목에서 잠을 잤다. 현철은 미안했지만 누나와의 동거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누나에게서는 여자의 향기가 났다. 옅은 화장품 냄새가 풍기는 방 안에서 누나와 함께 자면 현철은 설렘과 함께 엄마의 품에서 잠드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조카가 태어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졌다. 때마침 혼처가 난 누나는 목포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결혼상대는 지방에서 배를 가지고 양식업을 하던 어부였다. 도시의 처녀가 시집을 가기에 좋은 상대는 아니었지만 어려운 살림에 자기라도 입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착한 누나가 선뜻 혼인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철아 누나 시집가더라도 자주 놀러 올 테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 현철이도 자주 연락하고 방학 때 누나 집에 놀러 오고.”


“모르겠어. 누나 시집 안 가면 안 돼.” 현철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누나의 손을 잡고 부탁했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잦은 이별은 현철에게 체념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했다.


외대생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한자를 익혀 현철은 중학교에서 진도를 잘 따라갔다. 아니 잘 따라갈 뿐만 아니라 월례고사나 중간, 기말고사 성적도 좋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원래 나쁜 머리도 아니지만 형님에게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받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형님이나 형수님에게 손을 내밀 빌미를 적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 탓도 있었다.


현철은 누나가 시집간 후 말수가 더 적어져 과묵해졌다. 친구들은 마음속 깊은 상처를 모르고 말없는 현철이 재미없는 아이라 생각하고 멀어져 갔다. 등교와 하교를 혼자 하며 현철은 외톨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피하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다. 그런 강박관념이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수현은 외할머니의 손에 자라났다. 수현이 돌이 되기 전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바람을 피운 여자와 미국으로 도피했다. 어머니는 수현을 수현의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지방으로 돈을 벌러 갔다.


처음에는 매주 주말에 집에 와서 수현을 보고 외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직접 주면서 수현을 살뜰하게 살피던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돈을 송금하는 것으로 어머니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수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끔 서울에 올라오면 예전과 달리 엄마의 몸에서는 분 냄새가 많이 났다.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지방에서 만난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된 것이다. 재혼을 하고 엄마는 점점 연락이 줄어들어 수현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수현은 외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외할머니도 인형 같은 외모의 수현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노년의 재미를 붙이게 되어 둘은 모녀 사이처럼 다정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수현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키도 평균 이상으로 커지고 부쩍 예뻐졌다. 여러 여자들과 로맨스를 즐기던 아버지의 외모를 이어받아 수현의 얼굴에는 이성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었다. 부정에 대한 그리움이 전이되어 남자들에게 관심도 많아 알게 모르게 그녀는 주변의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런 남자들의 눈길을 수현도 즐기게 된 것은 그것이 그녀의 일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급생들은 그녀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뭐든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남자 선생님들도 그녀에게 유독 친절했으며, 결손가정이라는 그녀의 환경도 남자들의 그녀에 대한 보호본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그녀에게 약점보다는 강점으로 부각되었다.


남성들의 그녀에 대한 태도는 부정에 목말라하던 그녀에게 오아시스가 되어 주기도 했지만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약화시켜 그녀를 위기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학생이 된 그녀는 남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충만했다. 그녀의 미모를 탐내던 남자들에게 그녀는 알게 모르게 매력을 흘리며 남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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