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들은 엄마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대할 때 귀신같이 엄마의 의도를 알아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리를 해도 엄마의 요리가 아빠를 위한 요리인지 나를 위한 요리인지 눈치채고, 아빠를 위한 요리라면 뺏어먹고 싶어서 치맛자락을 붙들고 칭얼댄다. 밥 속에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조금만 섞어 넣어도 아이는 단번에 알아차리고 빨간불이라며 입을 막는다.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아이의 작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는 엄마의 눈치와 더불어 엄마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리는 아이의 눈치가 자란다.
그림책 읽기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렇다.
엄마가 의도적으로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아이들은 그 의도를 금세 알아차린다. 엄마가 그림책을 들고 와서 아이를 무릎에 앉혔을 때, 엄마의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아이가 몸부림을 치며 거부감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림책 자체에 흥미가 없고, 가만히 앉아서 그림책으로 대화하는 것이 익숙지가 않다. 특히 운동성이 발달한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 번 그림책에 거부감을 갖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그림책을 보려고 하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때문에 그림책 읽기, 그림책 대화를 시도하는 엄마라면 책을 읽히고 싶은 엄마의 의도를 조금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억지로 강요하면 할수록 그림책 읽기는 오히려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자란다.
나는 임신과 동시에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다.
매일 하나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함이라기보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애정을 표현했다. 아이가 그 애정을 모두 느낄 것임을 확신했다. 아이는 12개월까지는 그림책 보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뚜렷이 자기의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돌이 지난 후 약 4개월 정도 책을 피했다.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가 왜 그럴까? 우리 아이는 더 이상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일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내가 아이와 그림책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림책을 읽어주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상호작용이 빠져 있었고, 아이의 흥미와 관심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림책 읽는 것을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지는 않았다.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같이 봤다. 그림책을 가지고 탑도 쌓아보고, 집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그림책을 늘 가까이 두었다.
어느 날, 아이와 같이 책을 읽다가 아이가 책에서 숫자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그림책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각 페이지에 적혀 있는 숫자들에 관심이 있었다. 아이가 숫자에 관심을 보이자 나는 숫자가 많이 나오는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아이는 숫자가 나오는 그림책을 정말 좋아했다. 그다음 관심사는 알파벳이었다. 알파벳과 관련된 그림책을 함께 읽자 그 역시 매우 좋아했다. 그림책을 보며 단순히 페이지의 숫자를 읽는 방식으로 그림책을 보기도 한다. 아이는 왜 1페이지는 대부분 적혀 있지 않은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은 그림책은 왜 적혀 있지 않은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아이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대화하듯이 책을 읽으며 아이는 다시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책을 폈으면 책에 있는 글밥은 모두 다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골고루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접었다. 그저 아이의 시선이 중심이 되어 가볍게 그림책으로 대화를 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구비해 놓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책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아이의 몫이다. 책 속에 나와 있는 교육적 요소를 찾아내어 아이에게 주입을 할 필요도 없다. 그림책을 재밌게 읽고, 아이가 궁금해하거나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것에 대해서 반응하면 그뿐이다. 따라서 어떤 날은 책을 끝까지 못 읽을 수도 있고, 한 페이지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평소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면 그림책으로 대화하기의 시작은 어떤 게 좋을까?
처음 그림책 대화를 시도한다면 아이가 평소 즐겨하는 놀이를 활용하자.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면 먼저 놀잇감으로 그림책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여러 가지 놀잇감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면, 그림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로 먼저 접근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평소 즐겨하는 놀이라면 더욱 좋다. 운동성이 좋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라면 그림책으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볼 수 있다.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책을 밟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책으로 집을 만들어볼 수 있다. 책 세 권이면 집이 완성된다. 단단한 책 표지 그림책을 기억자로 세우면 집의 벽이 된다. 이 모습을 보면 아이가 금세 다른 집의 벽을 만든다. 얇은 책으로 뚜껑을 덮으면 지붕이 된다. 그리고 이 안에서 아이와 레고 놀이를 해 볼 수도 있다.
‘책을 밟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책이 상하면 어떡해?’라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책도 하나의 놀잇감이 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자. 책을 그저 책장에 꽂아두는 것보다 책을 활용하여 놀이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 평소 아이가 즐겨하는 놀이에 책을 놀잇감으로 섞어서 놀게 되면, 아이는 책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리고 그림책 안에 어떤 그림과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아이와 책의 거리를 좁혀본다.
아이가 유튜브 영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면 어떨까? 아이가 좋아하는 소재(만화 캐릭터, 공룡, 자동차 등)의 내용이 실린 그림책을 선택하여 아이가 한 권의 그림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책을 골라 그림책 읽기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뽀로로, 일어날 시간이야>와 <크롱도 혼자 응가할 수 있어요>라는 책은 우리 집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시작으로 해서 그림책에 재미를 붙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책을 시작으로 그림책에 무궁무진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보다 엄마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엄마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며 그림책을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림책으로 대화하는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고,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 행위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 좋아하는 소재의 그림책을 읽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매개로 하여 엄마와 아이가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음 장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기도 하는 독서의 과정, 독서의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존중하여 아이가 딱 한 권의 그림책을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그림책의 주제가 무엇이든,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든 딱 한 권의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그림책을 질릴 때까지 읽고 나면 아이는 다른 그림책으로 자신의 관심을 확장해 간다. 그림책 읽기의 시작은 좋아하는 그림책을 한 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 권의 그림책은 두 권이 되고, 네 권이 되고, 여덟 권이 되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