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마트 워치가 영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직도 조작에 서툴다. 1km마다 시간 측정 음성 가이드를 켰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3km를 달려보니 6분 5초, 6분대로 달리고 있었다. 요즘 평균 페이스가 6분 22초인데 개인 기록 경신하려나. 재밌는걸.
남편과 같이 10km를 일요일 오후에 달리고 있는데 남편을 제치고 앞으로 나선다. 남편은 4월 하프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훈련량이 적어서 주 1회 겨우 달리고 있다.
나는 주 4회 목표인데 주 2~3회 하기도 빠듯하다
때로는 스마트 워치에 의존하지 않고 몸의 감각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같은 호흡, 같은 보폭으로 유지하며 10km를 달려보자는 전략이었다. 시계보다 몸의 감각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10km 구간 기록 59분
처음부터 빨리 달리자는 계획은 없었는데 기록이 6분 초반이다 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1시간에 완주하겠다는 생각에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자. 생각만 이렇지 반환점 돌고 나서 까지 가능하냐가 문제다. 10km는 1시간 3분이 최근 가장 빠른 기록이다.
사람의 힘은 이상하게도 반환점을 돌면 리셋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달리기는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6킬로를 다시 1km로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
반환점 돌자마자 혼자 외친다.
"다시 Go ~ Go~"
보나마다 8~10km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스피드를 좀 더 낼 것이고 문제는 6~8km 구간이다. 스피드를 유지하자. 내 생각에 따라 달리는 게 아니라 내 발이 자동으로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움직이는 건지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자동기계처럼 막 혼자서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리 힘든 줄도 모르겠다.
마지막 9~10km 구간에는 나머지 있는 힘을 다 쏟아냈다. 힘을 다 쥐어짜 내도 사람은 화수분처럼 다시 힘이 채워진다. 신기하게도.
앗싸 59분 22초 10km 통과했다.
운동 삼아 하자는 달리기가 하프코스를 지나 풀코스를 완주하게 되었고 이제 2회째 풀코스를 도전하다 보니 스피드에 직면하게 되었다. 풀코스 5시간 34분 완주 기록은 평균 페이스가 7분 30초일 때 이야기다. 그것도 힘들어서 대회 때는 3번 정도 걸었고 쥐가 날까 봐 30km 넘어서는 10번 이상 스트레칭을 한 후 바로 달리곤 했다.
7분 30초 평균 페이스가 6분 50초, 6분 30초, 6분 20초, 그리고 오늘 5분 59초 6분대를 깨다니. 이 나이에 이게 가능하다는 생각에 희열이 느껴졌다. 국가대표를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속도를 줄이고픈 욕심이 나기도 한다.
마라톤은 절제의 운동이라고 했는데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건강하게 달리자고 하는데 자꾸 속도를 내보자고 한다. 자꾸 개인 기록을 경신하니 더 재미있어 다시 줄이게 된다.
나의 풀코스 마라톤 기록은 계속 달리는 한 5시간 34분으로 놔둘 수는 없다. 최소한 4시간 30분까지는 도전하고 싶다.
왜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이 속도와 나는 방법에 집착했는지 알겠다. 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속도가 달라지기 위해서 방법을 달리해야 하고 체력을 키워야 하고 사고 자체를 달리해야 가능하다. 도전하겠다는 생각과 훈련만이 기록 단축을 하게 되고 그 단축하는 사이에 나는 또 사고의 폭과 깊이와 경험이 달라지게 됨을 느꼈다.
5킬로 29분 01초
혹시 일요일 기록이 우연이 아닐까?
다시 달려보자.
혼자 월요일 저녁에 5킬로만 달려봤다. 2km는 7분 페이스로 달리고 시계를 다시 세팅하여 5킬로는 스피드를 내봤다. 일요일 생각 없이 달린 것보다 오늘은 기록을 더 의식해서인지 몸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일요일은 훨씬 몸이 가벼웠다.
그럼에도 1km 구간이 5분 57초가 나오자 이 페이스로 감각을 유지하고 호흡도 유지해 봤다. 5km가 참 길게 느껴졌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만 생각하고 달려보자. 아무리 길던 풀코스도, 하프도, 10km도 힘들 때는 한 발자국만, 하나, 둘, 셋만 반복하다 보면 완주하더라.
5킬로 29분 01초
와~ 5킬로를 30분 이내로 완주하고 싶었는데 29분 01초에 완주했다. 새로운 기록 경신의 날이다. 다음에 10km 목표는 58분이다. 물론 풀코스 뛸 때는 30km 지점까지 속도를 내긴 힘들겠지만 작은 변화, 기록 단축만으로 달리기가 더 재미있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훈련하면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다리가 천 근 만 근이지만 계단도 오늘따라 반갑다. 새로운 기록 경신을 위한 시상대에 오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