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몇 km를 달리겠다는 결심입니다. 최근에 12km까지 달렸고 정모 계획에는 18km이지만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거리를 정합니다.
그래, 한강으로 반환점을 두자!
클럽 멤버들과 3km를 같이 달리고 나머지는 개인 페이스에 맞게 달리기로 합니다.
처음 오신 분도 계시고 10여 명이 되는 분들이 오셨지만 한강까지 가실 분은 안 계시는군요. 잘 달리는 홍 00 님도 볼 일이 있어 10km만 달린다고 해서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혼자서라도 가보자고 결정했습니다. 혼자 장거리를 달린다는 것은 함께 달리는 것과 천지 차이가 나서 더 힘들기 마련입니다. 중간에 걷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쉬우니까요. 이 훈련부장님이 나중에 합류한다고 하는 소식도 들립니다.
나의 컨디션이 좋고 날씨도 아주 좋은 상황이라 최적의 달리기 환경인데 장거리 안 달릴 이유가 없죠.
푸른 하늘과 비행기마저 기분 좋게 하는 날입니다. 최근에 딸은 가을보다 겨울 하늘이 더 파랗고 예쁜 것 같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네요.
3km 지점까지 서로 이야기하며 달리다가 이후로는 서로 거리가 멀어졌고 5km 지점에서는 거의 되돌아가는 분위기에서 시간을 봤더니 스마트워치를 켜지 않고 달렸군요. 6분 25초 평균 페이스 나쁘지 않습니다. 최근 6분 25초에서 6분 30초로 계속 유지하고 다음 목표는 평균 페이스 6분 20초에 두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은 장거리이기 때문에 6분 25초는 힘들 것 같고 6분 50초면 좋겠습니다.
외로운 고독과 호흡과 리듬과의 조화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목동 근처를 지나가니 정월 대보름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제대로 쳐다보다가는 흐름을 놓칠 것 같아서 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한강 왕복하려면 18km를 예상하고 한강이 보이기만을 고대하며 달립니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달리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어디에 가도 좋다고 놓아버리면 거리와 체력을 안배할 수가 없으니까요. 어떤 목적, 목표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인 시간관리, 목표관리 코치에 매력을 느낍니다.
나를 반겨줄 리 없는 한강이지만 목적지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뻥 뚫린 풍경만으로도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매일 꼴찌로 돌아오더라도 기다리는 분들이셔서 기다리지 말라고, 천천히 가겠노라고 톡을 보낸 후 잠시 둘러봅니다.
한강의 물결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갈매기의 꿈' 영어 필사 첫 문장이 생각납니다. 이런 묘사를 배우고 싶어서 자꾸 읽어본 첫 문장입니다.
It was morning, and the new sun sparkled gold across the ripples of a gentle sea.
아침이었다. 새로운 태양이 부드러운 바다의 잔물결 위에 황금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morning을 afternoon으로 고치면 지금의 한강 모습입니다.
반환점을 돌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습니다. 반환점부터가 진짜 달리기 시작이니까요.
잠시 쉬었더니 서늘함을 느끼어 서둘러 달리기 시작합니다. 반환점 돌자마자 내리막이라 참 다행입니다.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던 오르막, 내리막이 달리기 할 때는 큰 산같이 느껴집니다.
달리기 하다 보면 감사한 일을 많이 느낍니다. 달리다 보면 호흡으로 힘들게 되는데 평상시에 편하게 숨 쉴 수 있어서 감사, 뛰는 것보다 걷는 게 편안해서 걸을 수 있으니 감사, 달리기 전 3시간 공복 상태 유지해야 속이 거북하지 않고 잘 달릴 수 있어서 평상시 먹을 수 있어서 감사, 달리다 보면 목이 마른 경우가 있는데 평상시 목마를 때 아무 때나 물 마실 수 있어서 감사, 사진 찍는 것도 달릴 때는 자제하게 되는데 아무 때나 서서 사진 찍을 수 있어서 감사, 감사한 일 투성이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이렇게 달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달릴 에너지가 없으면, 건강하지 않으면 달릴 수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반환점 지난 1km 지점에 훈련 부장님이 뒤늦게 합류해서 만났습니다. 힘들어서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 엄살 피울 일과 힘들 때 걸어야지 하는 생각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 페이스에 맞춰 이 훈련부장님은 세게 달렸다가 천천히 돌아와서 다시 보조를 맞춰주며 달려주셨습니다.
겨울에는 12km 달릴 정도까지는 목이 마르지 않는데 오늘은 목이 마릅니다. 물을 찾고 있는데 마침 목동 근처에 정월 대보름 축제 행사가 있어서 거기서 마시자고 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방법이 있는 법, 해결책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달리기는 할수록 긍정적인 사고 없이는 해낼 수 없다는 신념이 생깁니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사고로 방법을 찾아내야만 완주하니까요. 긍정적 사고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 바로 걷게 되거나 멈추게 됩니다.
축제 행사장을 들어가고 있는데 훈련부장님이 이미 양손에 물컵을 들고 오십니다.
"감사합니다.
와~ 물맛이 이리 좋네요.
가장 맛있는 물입니다."
세상에 이런 물맛이 있다니!
달릴 때 목이 말라서 한참 찾다가 마시는 물은 꿀물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도 이러겠지요.
마지막 3km 지점은 항상 힘이 듭니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의 문제도 한몫합니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힘을 내려놓기에 그렇지 않을까요.
훈련부장님도 몸의 리듬을 찾아라고 알려주셨는데 저도 요즘 많이 적용해 보는 중입니다. 몸의 리듬을 찾으면 호흡도, 다리 움직임도 저절로 맞춰지게 되고 덜 힘들게 느껴집니다. 스피드도 일정하게 되고요.
마지막 100m에서 스퍼트를 같이 했습니다. 스퍼트를 하고 나면 몸이 아주 개운합니다. 더 쓸 에너지도 없을 것 같은데 스퍼트 할 때 어떻게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비한 몸입니다.
5.13km + 12.34km = 17.48km를 달렸습니다.
훈련부장님 덕분에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달리면서 출발점과 반환점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반환점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올 수밖에 없는 환경설정을 하는 게 편안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역행자가 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