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제한시간이라 공지했지만 4시간 58분에 풀코스를 완주를 하려 보니 벌써 다 철수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허망할 데가...
5시간까지라도 그냥 놓아두면 좋겠구먼. 내 뒤에도 20명은 족히 풀코스와 긴 사투를 벌이고 있건만.
아무래도 긴 마라톤의 특성상 스텝과 아르바이트생들과 약속된 시간이 있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겠지 하고 이해하련다.
남편은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었고 광명마라톤클럽 김 선배님은 끝까지 페이스메이커를 해주셔서 완주했다. 메달과 간식을 받고 한산하기 그지없는 곳을 빠져나왔다.
남편이 찍은 마지막 동영상을 보니 " 아이고 힘들어, 헉헉헉"
다음부터는 조금 더 긍정적인 말을 해봐야겠다. " 완주했다" 또는 " 앗싸, 신난다" 등등.
중2 아들은 10km, 남편은 하프(21.097km)를 신청했는데 아쉽게도 남편은 회사 일정상 달리지 못하고 끝날 즈음에만 만났다.
절뚝거리며 계단을 혼자 오르지 못해 아들이 부축해서 간신히 귀가했다. 아들은 10km여서인지 쌩쌩하고 3시간 30분 이상 혼자 기다려야 해서 벤치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여기서까지 수학문제를? 어제부터 혼자서 어찌 3시간 이상을 엄마 기다리냐며 혼자 귀가할까, 어쩔까 고민하던 차에 수학문제집을 들고 왔다. 학원 숙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해놓고 친구들과 놀러 가려는 계획이다. 뚝섬 유원지 주변을 둘러보고 시간을 보내라고 했건만 너만의 시간을 네가 보내는 방법을 찾았구나.
큰 딸은 " 왜 힘들게 그렇게 뛰어요, 조금만 뛰세요."
작은 딸은 " 엄마 수고하셨어요. 기록은요?"
막내아들은 " 엄마, 대단해요. 10km도 힘들던데."
남편 " 나도 풀코스 완주하고 싶다."
09시 마라톤 출발이지만 07시 40분 도착해서 준비하던 차에 광명 마라톤 클럽 김 선배님이 전화를 주셔서 만났다. 김 선배님은 2022년 춘천 마라톤 대회가 풀코스 300회 완주였고 나는 첫 풀코스 대회여서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때도 격려와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존경스러운 마음이다.
이번 대회는 소속 클럽에서 단체로 나가지 않고 개인 참가라 풀코스는 2명만 신청했다.
몸을 풀고 09시 정각에 출발~
"저는 제 페이스 대로 뛸 테니 선배님은 선배님 페이스 대로 뛰세요"
라고 말했지만 같이 뛰겠다고 하셨다.
대회 때는 항상 초반 오버페이스를 조심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너무 가볍다. 신발도 1개월 전 사서 발에 길들이느라 계속 신고 다녔는데 참 편하다.
20km까지는 6분 40초 페이스대로 달리다가 나중에는 6분 30초 페이스로 달리려고 계획을 했는데 초반에 너무 몸이 빨리 나간다. 6분 20초 내외로 달렸다. 6분대가 나오면 천천히 달리며 조절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20km 평균 페이시가 6분 20초였다. 빨랐다.
옆에 든든한 김 선배님이 계셔서 마음이 참 편안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지혜롭게 이겨나가실 것 같은 안정감이 있는 모습에서 호흡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이번 코스는 같은 코스를 왕복 2회 하는 대회라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1회 왕복이 하프라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달리기 싫고 그냥 finish line으로 통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시 같은 길을 1회 더 하려고 하니 심적 부담이 더 컸다. 더 멀게만 느껴졌다.
하프를 돌고 나서 25~27km 지점에 다다르니 2022년 춘천 마라톤 사상대교 근처에서 힘들었던 생각이 났다. 30km 이후가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라더니 슬슬 지쳐나갔다. 간간이 하던 대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나만의 고독과 침묵 그리고 호흡만 들린다.
퍼시 세러티는 " 32킬로미터는 누구나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어떤 생리학자등은 20마일(32km)에 이르면 몸속에 축적된 포도당이 모두 소진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달리기와 존재하기(조지 쉬언) 316p-
비도 오다 말다 3~4차례나 옷이 젖었다가 말렸다가 반복이다. 더워서 고생할까 걱정했는데 비라서 다행이다. 햇빛이라면 더 힘들다. 물웅덩이가 있어서 2회 반환할 때는 피하느라 불편하긴 했다.
5km마다 있는 급수대가 이 대회에서는 2.5km마다 있었는데 무지 반가웠다. 물을 마신다기보다 발걸음을 멈춰서 물을 마시면서 쉴 수 있어서 기쁜 장소다. 다른 러너들은 뛰면서 컵을 낚아채고 마시면서 달리건만 그 수준은 아니다.
그다지 큰 대회가 아니여서인지 여자 풀코스 참가자는 10명 내외인 것 같다.
김 선배님은 3등만 하자고 하시는데 완주도 힘든데 3등이라니.
결국 5위로 했다. 여성 참가자가 적다는 이유로.
마지막 깔딱 고개 3개가 남아있었는데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한다. 필라테스 주 5일 하면서 고관절 운동도 열심히 하고 어깨도 많이 풀고 코어 운동도 했는데 왜 아프지? 그렇게나마 했으니 이렇게라도 뛸 수 있는 건가?
어깨는 1년 6개월째 통증으로 위로 올리기가 어려웠는데 달리기와 필라테스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10km, 하프 뛸 때는 모르는데 30km 이상 뛸 때는 어깨의 통증이 밀려온다. 발가락도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뒤꿈치도 아프고 고개 아프고 어디 하나 안 아픈 데가 없다.
아~ 걷고 싶다. 다리가 너무 무겁다.
3~4차례 걸었다.
김 선배님은 천천히 뛰더라도 걷지는 말자고 하나, 둘 외쳐 주신다.
걸으면 다시 뛰기가 더 힘들다고. 옆에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하니 죄송스럽다.
옆에서 계속 같이 뛰어주셔서 다시 힘을 내고 또 내어본다.
이렇게 300회 이상 풀코스를 완주하셨다니 존경스럽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고 여쭸더니 없다고 하신다. 이제 마라톤으로 다 몸이 다져져서 최적화가 되신 겐가.
마음 같아서는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자꾸 속도가 늦춰진다.
마지막 1km 남았다.
평상시라면 마지막 1km 힘내서 질주하는데 달릴 수가 없다. 에너지를 다 썼나 보다.
김 선배님이 다 왔다며 5시간 안에 달려보다고 "할 수 있다"를 계속 말해주시면서 시계를 자꾸 보신다. 나는 이미 시간 개념도 없고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한 발자국씩 겨우 떼었다. 나중에 보니 5시간 이전에 완주하게 하려고 계속 시계를 보셨다. 작년 풀코스가 5시간 34분인데 4시간 58분에 완주했다. 완전한 김 선배님 덕분이다.
마지막 100m 있는 힘껏 질주했다. 쓰러져도 좋다는 각오로. 고통이 끝난다는 기쁨으로.
완주했다는 기쁨보다도 왜 이렇게 힘들까?
다시는 풀코스 달리기 싫다.
11월 jtbc마라톤도 신청했는데 취소해야 될까 보다
이 힘든 풀코스를 내가 왜 또 달릴까?
왜 훈련한 만큼 잘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만족하기보다 아쉬움만 커져갔다.
혼자서 페이스를 조절하며 완주하려 했건만 다행히 김 선배님이 페이스 메이커를 해주신 덕분에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