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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보스턴 마라톤 도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독서 후기이자 마라톤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읽고 싶은 마음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우러나는 책'

-작가 소개 중에서-


마라톤을 하기 전에 사서 읽은 책이다. 그때는 왜 그리 힘든 마라톤을 하지? 하는 생각으로 읽었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하루키의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선뜻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2019년부터 하게 되면서 풀코스 2회 완주해서 다시 읽어보니 공감이 많이 되었고 특히 2021년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는 더 공감하며 읽게 되었다.


몇 번이나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달리기나 삶, 글쓰기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마라톤 러너라면 머리맡에 두고 읽지 않았을까?


풀코스와 울트라마라톤 100km를 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에 대한 회고록을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라면 자신이 하는 일, 특히 쉽지 않은 마라톤에 대한 감상이 남다를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나조차도 주 3~4회 달리기를 하면서 후기를 쓰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하고 풀코스 완주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2번 풀코스를 완주했지만 여전히 두렵기에 계속 도전하는 것 같다. 쉬운 일이라면 '도전'이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멋진 일이라고 표현한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5p-


작가다운 달리기 묘사다.

나라면 달리기를 어떻게 표현할까?


오직 나를 만나는 일.

나의 현재와 나의 한계를

직접 대면한다.

달리는 길은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성장의 길이다.

-김민들레-


몇 년이 흐르면 또 다르게 생각하며 다르게 표현하지 않을까? 짧은 마라톤 경험으로는 이게 최선의 표현이다. 이렇게 마라톤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왜 힘든 마라톤을 하느냐고 한다. 힘들지 않으냐고?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그러나 고통을 일부러 선택하는 마라토너들이다. 그 고통을 통해서 성취감, 자신감, 생동감, 활력, 건강, 한계, 도전,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다.


하루키는 서문에서 '그만큼 풀 마라톤이라는 것은 가혹한 경기인 것이다. 만트라라도 부르짖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 그중에 한 사람의 만트라를 소개했는데 'Pain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를 머릿속에서 되뇐다고 한다. 만트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좇아주고 집중력을 길러주는 효과가 있다.


장거리나 풀코스를 뛸 때 힘이 들면 '언제 완주하나?'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한 발자국만 더, 하나, 하나, 하나......"속으로 말하며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완주하게 된다. 정말 힘들 때는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고 오직 호흡에 집중한다.


요즘 11월 jtbc 첫 풀코스를 도전하는 남편은 훈련하면서 힘들 때마다 '첫 풀코스 대회에 덜 고생하려면 달리자'라고 한다.


모두 자기만의 힘들 때 말하는 만트라가 있다.


" 할 수 있다, 언젠가 끝난다, 가자, 다 왔다, 잘하고 있어, 내가 영웅이다, keep going... 등등"


하루키는 20대에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30대 전업 작가로 나서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 루틴은 주 1회 쉬고 나머지는 매일 10km 달리기를 한다. 마치 달리기를 소설을 쓰는 것과 같이 조절을 하면서 달린다. 기분 좋은 상태로 달리기를 끝내고 내일 다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소설 쓰기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리듬을 단절하지 않고 장기적이 작업을 하는 데에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달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삶에, 나의 철학에, 나의 생활에 어떻게 접목하고 성찰하는지가 더 돋보였다.


모든 사람에게 달리기를 하자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에 맞고 승부를 짓는 경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달리기가 맞고 작가라는 직업도 이기고 지는 게 없는 일이 달리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달리기 목표를 통해 성장하면서 자신의 성장도 같이 도모하기 우해 노력하는 평범한 주자라고 하지만 겸손한 표현이다. 풀코스 마라톤과 울트라 100km, 트라이애슬론까지 하는 작가다.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초반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달리다 보면 힘들어서 생각도 하지 못할뿐더러 생각할 힘도 없다. 잡념도 생각할 여유나 시간이 있는 사람이 가능하다. 남편도 달리기를 하는 이유가 회사일로 스트레스와 잡념이 생기는데 달리다 보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좋다고 한다.


저녁도 먹지 않고 퇴근하자마자 달리는 날은 잊어버리고 싶은 스트레스가 많은 날인가 보다 하고 여긴다.


마라톤 풀코스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35킬로를 지나면서부터 다가온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다.

-69p-


장거리 연습을 할 때 36km 중 35km는 힘은 들었지만 특별히 고통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첫 풀코스 춘천 마라톤에서는 왼쪽 무릎 장경 인대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 고통이라 이것이 풀코스를 뛰기 위해 참아야 하는 고통인지, 몸의 이상이 있어서 오는 고통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그냥 뛰었는데 완주 후 절뚝거리게 되었다. 일주일 후 고통은 사라졌으나 3개월간 달릴 수는 없어서 치료하고 휴식기를 보냈다.


누구에게는 35km의 고통은 있다. 쥐가 난 사람도 많이 봤고 포기하고 걷는 사람도 봤다.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포기하거나 겨우 완주한다. 고통도 잊고 그냥 기계처럼 달리기를 한 기억이 있다. 두 번째 풀코스 35km 지점은 평상시 훈련에도 아프지 않았던 고관절이 아파서 조그만 언덕에서 고관절이 굽혀지기라도 하면 통증이 있어서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완주 후 하루 이틀이 지나니 사라졌다.


달리고 싶지 않을 때 하루키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너는 일단 소설가로서 생활하고 있고,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달리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야.

-76p-


하하하.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했군. 누구나 다 달리기 싫을 때가 있다. 세계를 제패한 러너들도 다 똑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위안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 운동화 신기까지가 가장 힘들고, 안방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일단, 운동화부터 신자, 생각 외로 달리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 생각만큼 나쁘거나 힘들지 않아" 하면서 나는 달리러 나간다.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라는 안도감뿐이다.

-103p-


나도 하루키처럼 결승점이 성취감으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되고, 숨을 맘껏 쉬고, 물을 맘껏 먹고, 뛰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주 공감 가는 문장이다. 마지막 스퍼트도 기록 단축보다는 하루키처럼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컸다.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하고 있다.

30킬로까지는 '이번에는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를 지나면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완주하고 나서는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107p


하루키도 똑같이 반복한다니 위안이 된다. 위안이 되면서도 실망도 된다.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두 번이나 30km 이상에서 실망스러운 페이스라서 언젠가는 맘에 드는 페이스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은가 보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115~116p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달릴 때마다 묻는 질문이다. 답이 매번 다르고 답을 할 수 없음에도 또 달린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 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 나간다.

-185p -


2020년부터 '읽기'에서 '쓰기 위한 읽기'로 바꿨다. 읽기는 수동적인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쓰기 위한 읽기는 능동적인 생산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읽기보다 쓰기 위한 읽기가 쓰면서 사고를 한층 더 체화시키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사고를 깊게 형성하고 장기기억으로 가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고력을 한층 더 깊게 만드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생각하는 데에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기에 쓴다면 더 큰 효과를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다. 글쓰기로 생산자가 되든 마케팅 글쓰기가 되든 홍보, 공지글을 쓰던 어디에든 글쓰기의 영향력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187p


마라톤을 나는 즐기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요즘 하게 된다. 기록에, 자신과의 한계에 너무 나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하루키의 글로 다시 한번 사색하게 되고 방향을 잡게 된다. 시간과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것인가? 얼마만큼 나 자신과 즐길 수 있는가?

작은 성장과 현재에 감사하는 마라톤만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mattbotsford, 출처 Unsplash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259p


무라카미 하루키가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글이다. 나는 어떤 묘비명을 쓰고 싶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가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캬~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의 묘비명답다.


김민들레 묘비명

작가 마라토너

20**년까지

김 씨, 이 씨 가문에 최초의 작가

최초의 여성 마라토너


나의 묘비명도 만들어봤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묘비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덕분에 나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라톤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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