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페이스메이커와 실제 곁에서 뛰면서 도움을 주는 페이스 메이커는 차이가 컸다. 페이스에 맞는 사람들끼리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가면서 완주하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마라톤은 혼자 달리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풀코스 완주나 기록을 도전하는 사람이면 혼자서는 해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풀코스를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작년 2월에 마라톤 클럽에 가입했고 10월에 춘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페이스메이커가 없었더라면,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프와 달리 풀코스는 훈련도 많이 필요했고 특히 춘천 마라톤 대회는 언덕훈련을 하지 않고 갔더라면 언덕이 있을 때마다 걸었을 것 같다.
마라톤클럽 입회하자마자 하프 페이스페이커를 두 분이 같이 해주셔서 2회째 하프 완주를 했다.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오셨던 고수님들이라 내 페이스인 7분 30초 전후로 같이 뛰었는데 어쩌면 하프 내내 구간기록이 일정하게 나오지 하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일정한 페이스 덕분에 호흡이 힘들지 않았고 15~18km 힘든 구간을 잘 넘겨 완주했다. 완전히 내 페이스에 맞추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연습할 때마다, 장거리 훈련할 때마다 초보라 거의 같이 뛰어 주셨고, 같이 뛰다가 힘들어서 걷거나 옆구리가 아파서 실패했을 때는 나중에 개인 훈련을 해서라도 완주하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페이스메이커 하시는 분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내가 뛰다가 걷기를 하면 같이 걸을 수밖에 없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풀코스 2회 완주도 페이스메이커 해주신 덕분에 완주했다. 페이스 메이커가 없었다면 finish line을 걸어서 들어오지 않았을까. 많은 책에서도 멘토, 코치, 스승을 두는 이유는 성공, 실패, 마인드 공유로 시간과 노력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이 페이스메이커 도움만 받던 나에게 도움을 드릴 기회가 우연치 않게 왔다.
지난 일요일 하프를 속도 내어 뛰었더니 이번 주 내내 정강이가 아파서 3일째 쉬고 있다가 클럽 훈련날이라 가볍게 뛰고 오자고 나갔다. 무리해서 아플 때는 며칠 쉬어 주거나 5km 이내로 천천히 달리면 풀리곤 했다. 훈련부장님은 송 00 부장님에게 2개월 차 신입 김 00님 10km를 도와주라고 했고 나도 뒤따라 천천히 달렸다. 광명마라톤 클럽은 훈련이 있을 때마다 3km까지는 같이 달리다가 그 이후는 각자의 페이스로 달린다.
다른 때와 달리 속도를 내지 않고 꼴찌로 달린다. 속도와 거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달려보련다. 5km 정도 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달린 송 부장님이 멈추는 바람에 김 00 님하고 내가 달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바다의 날 마라톤 대회 첫 10km 처음 신청하셔서 수요일 오늘은 10km 완주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요즘 나의 구간 페이스는 6분이기 때문에 7분 10초대는 그리 빠른 페이스는 아니어서 10km 끝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훈련하겠다는 데에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없다.
페이스메이커를 해주신 분들을 떠올렸다.
옆에서 내 페이스를 맞춰 주시는 페이스메이커, 말이 많은 페이스메이커, 아무 말 없이 뛰어주는 주는 페이스메이커, 전략을 세워 정확하게 시간을 나눠 완주하는 페이스메이커, 응원과 칭찬을 곁들이는 페이스메이커, 앞서서 달리는 페이스메이커, 뒤따라 오겠다는 페이스메이커 모두 각자만의 페이스메이커 방법들이 달랐다.
나는 이런 페이스메이커가 도움이 되었다.
옆에서 같이 달리면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거기에 맞춰 조언을 해 주신 페이스메이커, 말이 많지 않고 적절하게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주는 페이스메이커, 시간을 전략적으로 계산하여 완주하고 호흡을 안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 페이스메이커다. 힘들어서 대답을 할 수 없는 많은 순간에도 다 들리고 나중에도 기억에 나곤 했다.
이제 나도 이런 페이스메이커를 김 00님에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면서 4~10km를 둘이서 달렸다. 5km 지점까지도 00님의 호흡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고 거칠었다. 같은 페이스를 꾸준하게 유지하면 편해지기 때문에 이 페이스를 유지하자고 했고 호흡하기가 힘들면 조금 속도를 늦추라고 하면서 내가 00님의 페이스에 맞춰서 달리겠으니 무리하지 말자고 했다.
5km 반환점에서 운동화 끈이 풀린 00님에게 운동화 끈을 대회에는 두 번 묶으라고 말도 해줬다. 10km를 달릴 때, 나는 반환점을 돌면서 "Reset, Go~"하고 외친다. 그 이유는 심적 부담감으로 후반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5km를 0km로 리셋한다. 목소리로 외치고 나면 힘이 저절로 나곤 해서 이 방법도 소개했다.
나중에 보니 헤르만 헤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호흡이 7~8km에서는 지친 기력이 아주 티가 났다. 긴 호흡을 2~3회 하면서 호흡을 하라고 알려줬고 아주 낮은 언덕에서도 힘을 빼고 조금 천천히 같이 달렸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하면서 발을 맞췄다. 옆에 뛰면서 서로 엇박자가 되었을 때와 다르게 같이 발걸음을 맞출 때는 에너지가 같이 공명하는 것 같아서 힘이 덜 들었기 때문에 내가 발걸음을 그녀에게 맞추었다.
나는 시간 관리, 목표관리 코치이기도 하고 독서모임 리더, 강사이기도 하고, 학생들, 아이 셋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조를 맞추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자세가 되어 있다. 이런 나의 경험을 말하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주고 지금 나는 말을 해도 될 만큼 호흡이 무척 편안하다고 나만 믿고 끝까지 가보자고 세뇌시켰다. 안정된 호흡을 가진 페이스 메이커가 옆에서 달릴 때 호흡은 거칠었지만 마음은 편안한 기억이 있다.
속도가 조금 늦춰지면 그녀의 페이스에 맞췄고 너무 느려진다고 하면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고, 천천히 뛰더라도 걷지는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페이스메이커는 다정하고 편하게 도움을 주면서도 최소한의 규칙도 단호하게 알려줘야 늘어지지 않는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해주기보다 최소한의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줘야 아이들도 그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그 울타리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며 자신의 일을 한다.
적절하게 "잘한다, 잘하고 있어요, 좋아요~" 말해 준다. 용기를 주는 나도 기분이 좋다. 힘들 텐데도 최선을 다하는 00 님 모습이 몸으로 호흡으로 느껴진다. 첫 페이스메이커 대상이 되어줘서 영광이라고 했다. 이런 기회조차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최선을 다하는 00님이라면 서로에게 기억날 순간이다. 말할 때 대답을 하기에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고 한다. 호흡도 힘든데 대답을 하려면 더 가빠지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말라고 재차 말하는데도 자꾸 대답을 한다.
마지막 1km
첫 10km를 뛰는 00님에게는 무척 힘든 구간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 왔으니 구간 기록 5초만 단축하겠다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한다. 내가 괜찮은 척하면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마지막 100m는 스퍼트 하자고 재차 말해둔다. 자꾸 힘을 내다가 쳐지고, 힘을 내다가 쳐지는 것을 보니 나도 그랬던 생각이 났다. 속도를 내고 싶으나 지쳐서 조금 달리다가 다시 쳐지고 다시 쳐진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말고 이 속도를 유지하자고 했다.
마지막 100m
00 님은 혼자 러닝머신 뛸 때도 단톡방에 공유한 기록이 6분 전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속도로 달려야겠다고 혼자 계획을 세웠다. 마지막 스퍼트도 광명 마라톤 클럽에 와서 배웠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나면 힘들지만 기분이 좋고 후련하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다 써버린 것 같지만 다시 힘이 난다.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되면 다음 훈련까지 기분이 이어진다.
두 여인이 전속력으로 달리니 먼저 10km를 완주하신 회원들이 박수를 쳐주신다. 특히 매일 페이스메이커를 받기만 하던 내가 페이스메이커 역할까지 하냐고 웃으신다. 1년 2개월 만에 누군가를 도와드릴 수 있어서 뿌듯하다. 00님은 얼굴이 벌겋게 올랐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한 후 캠프에서 물 한 잔을 드렸다. 1시간 10분 첫 10km인데 좋은 기록이다.
" 덕분에 완주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좋은 경험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페이스페이커 도움을 받을 때마다 수없이 했던 말을 역으로 들으니 무척 기분이 좋다.
나의 작은 재능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은 행복감을 준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많이 베풀고 살라는 말이 아닌가?
아마도 1년 후 00님은 나보다 더 잘 달릴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2.9km 달렸는데 00님은 처음 와서 8km를 달려서 기본 체력이 있는 분이고 훈련에 따라 금방 성장하실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