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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프다, 여행 중에 제일 우려한 일이다

함안 한 달 살기 : 함안문화예술회관 공연



아들 약봉지



우웩~

경남 함안 한 달 살기 17일째다.

숙소에서 오전 10시 ~12시 '필사로 독서하기(갈매기의 꿈)' 줌 진행을 하고 있는데 11시쯤에 갑자기 아들이 등 뒤에서 우웩~ 한다. 수업 시작할 때만 해도 별다른 기색이 없었는데 수업 시작하니 자꾸 화장실에 들락날락한다. 등 뒤에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날 때까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들도 엄마가 줌 수업을 할 때는 특별히 조용히 하기 때문에 전혀 눈치 채지를 못했다.


수업 중이라 양해를 구하고 잠깐 살펴봤더니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이미 화장실도 2~3번 다녀왔는데 설사도 했다. 12시 수업 끝나면 병원 가자고 이야기하고 따뜻한 전기장판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줌 진행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이 생겼다. 마저 진행을 해야 할지 병원에 가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아이가 아플 때는 항상 고민을 한다. 병원을 가도 미열이나 복통은 별 해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집에서 1~2시간 지켜보곤 하는데 세 아이를 둔 엄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방법이다.


아들이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을 한다. 평상시 가끔 배가 아프면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따뜻한 매트 위에 누워 있으면 진정되곤 했는데 스스로 병원 가자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많이 아픈가 보다. 여행 와서 가장 우려한 일이 터진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아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 왔다. 혹시 내가 아플까 봐 컨디션 조절을 하고 무리한 일정을 짜진 않았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어두우면 숙소에 돌아와서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생활했다.


12시 보다 30분 일찍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마친 후 병원에 서둘러 갔다. 지나가는 길에 미리 병원을 봐 두었기 때문에 200m 근처 가야 시장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택시를 타기도 애매한 거리라서 걸어가기로 했다. 배가 아파서인지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걸었다. 걸어가면서도 몇 번 우웩 했지만 이미 몇 번이나 토한 상태라 침만 나올 뿐이다.


아들을 부축하고 가면서도 가벼운 복통이기를 바랐다. 빨리 걷지 못하고 가다 쉬고, 가다 쉬고, 천천히 걷자고 할 만큼 진이 빠지고 많이 아픈가 보다.


아들은 된장찌개, 나는 김치찌개


병원에 가보았더니 장염이었다.

누룽지는 먹기 싫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서 식당으로 갔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된장찌개가 있는 식당으로 향했지만 찾으려고 하면 없는 된장찌개, 겨우 분식집으로 향했다. 밥은 거의 먹지 않고 국물만 조금 먹는다.


문제는 알약 먹기다.

초등 6학년인데 초등 2학년 정도 병원에 가보고는 건강해서 병원에 예방주사 맞으러 간 것 말고는 가본 지가 한참 되었다. 간혹 열이 있으면 시럽을 먹었기 때문에 알약이 복병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왕 받아왔으니 먹어보자며 처음 알약 먹기를 시도했다. 물 삼킬 때 꿀꺽 같이 삼키라고 했는데도 물만 넘기고 알약은 넘기지 못한다. 그나마 작은 약 3알은 페트병 물 500ml를 다 마시고서야 삼킨다. 결국 2알은 삼키지 못하고 숙소로 향했다. 큰딸도 중학교 되어서야 겨우 알약을 삼켰다. 몇 번이나 가르쳐줬는데도 못 삼키더니 어느 날 혼자서 꿀꺽 삼키고는 이제야 감을 찾았다며 웃은 적이 있다. 식성이 좋은 둘째 딸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약도 잘 먹는다. 며칠 약을 먹으려면 서로 고생하겠구나.


숙소에 돌아와서 약을 가루처럼 빻아서 겨우 먹였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꽃 차 체험에서 받은 유리병 쇠뚜껑으로 겨우 빻았다. 약을 먹고 아들은 곤히 잔다.


오늘 숙박 퇴실을 하는 날이라서 오전 11시지만 12시로 연기해뒀는데 시간을 오후 4시로 연장해서 추가비 3만 원을 더 냈다. 아들도 화장실에서 담배 남새가 난다고 이 숙소를 떠나고 싶어 해서 며칠 전에 옮기기로 했다. 과연 아들이 괜찮아져서 숙박을 옮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 혼자는 이 짐들을 옮길 수가 없다. 대형 캐리어 1개, 백팩 2개, 손가방 3개가 있다. 대형 캐리어와 백팩이 2개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짐이 늘었다. 숙소에서 사발면이나 간단한 간식을 먹어서인지 짐이 계속 는다. 잠이 깬 후 아들 상황을 보려고 2~3시간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두고 본다.


숙소를 옮기는 중


잠을 푹 자고 나서인지 아들은 괜찮아졌다고 한다. 하루 더 묵을까 했지만 아들이 싫다고 해서 옮기기로 했다. 다 낫지도 않았는데 가방을 메는 게 맞는가 고민을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백팩을 2개 멜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괜찮다며 걸어가는데 좀 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하필이면 아픈 날 숙박을 옮길 줄이야. 여행은 항상 이런 변수가 생기게 마련이지 뭐. 그래도 많이 아프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근처로 숙박을 옮기는 터라 캐리어를 밀고 유목민처럼 다시 걷는다. 숙박이 안정되면 참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달 숙박할 만큼 그다지 맘에 드는 곳을 만나지 못했다. 교통이 너무 불편하거나, 너무 춥거나, 냄새가 나거나 해서 옮기게 되는데 함안 와서 총 4번째 옮겼다. 다른 숙박지를 경험하기 위해서 한 달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총 4번을 계획했는데 장소보다는 안 좋은 이유로 두 번을 옮기게 되었다. 어쨌든 계획처럼 4번 옮기게 되었고 더 이상 옮기는 게 귀찮고 힘들다. 이사하는 심정이다. 다행히 어제 미리 가서 숙소를 둘러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다.


저녁 7시 30분 함안문화예술 회관에서 프리미엄 클래식 공연이 있는데 아픈 아들에게 미처 말하지 않았다. 숙소를 옮기고 아들에게 조심스레 공연을 볼 수 있는지 말해본다.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당일이라 취소가 되지 않는다. 아들은 자고 났더니 괜찮아졌고 엄마가 공연을 좋아하니 가보겠다고 한다.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알약을 가루로 빻아달라고 했는데 이 약은 코팅이 되어 있어서 그냥 삼켜야 한단다. 어쩐지 숙소에서 빻을 때 잘 안 빻아지더라니. 아~ 약과의 전쟁이 계속되겠구나. 결국 저녁에는 1알 먹고, 나머지는 먹지 못했다. 약 먹으려다가 먹은 밥까지 토할 뻔했다.


함안문화예술 회관 가는 중


밥 먹은 후 살살 걸으면서 함안 예술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들은 기분이 좋은지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쳤다. 장난도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가야읍에 숙박을 하고 나서는 교통편이 무지 편해서 좋다. 걷기 챌린지나 축제, 공연장, 박물관이 근처에 있어서 편리하다. 함안 예술 문화회관도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라서 산책하며 가기에 딱 좋았다. 거기다가 9시 정도에 끝나더라도 버스 기다릴 필요 없이 걸어서 숙소에 올 수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함안문화예술 회관


함안문화예술 회관은 아라가야 걷기 챌린지 할 때 7구간으로 함안 공설운동장과 함주공원이 연결되는 부분에 있어서 찾기가 수월했다. 역시 걷기 챌린지를 하고 나서 가야읍 주변의 시설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걷기 챌린지를 여러모로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 팸플릿


'2021 프리미엄 클래식 더 그레이티스트 '공연은 함안공연팀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온 '라퓨즈 챔버오케스트라' 공연팀이었다.


함안문화예술 회관


공연장으로 가는 기분은 참 좋다. 더군다나 누가 이 2021년 가을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함안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던가. 오전 같은 아들의 컨디션이라면 올 수도 없었기에 더 귀하게 여겨진다.


함안문화예술 회관


'팬텀 싱어'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거기에 출연했던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 손태진 씨도 나온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특히 손태진, 김현수 씨가 불렀던 '꽃이 핀다'는 몇 천 번이나 들었던가? 곡(김도훈 작곡)도 아름답고 시리지만 가사(김이나 작사)는 또 얼마나 에리던가? 이런 멋진 글을 쓰고 싶다. 

두 분의 노래야말로 꿀 조합이다.


https://youtu.be/9ECyqGi8E5Y


바람꽃이 날리고 해가 길어져 가고

이젠 이 길을 밤새 걸어도 걸어도

손 끝이 시리지가 않아

무거운 너의 이름이 바람에 날아오르다

또 다시 내 발끝에 떨궈져

아직 너도 날 떠나지 않는 걸까

*아주 가끔은 널 잊고 하루가 지나고

아주 가끔은 너 아닌 다른 사람을 꿈꿔도

나의 마음에선 너란 꽃이 자꾸 핀다

가슴에 no no no no

아픈 니가 핀다


아무도 모를 만큼만 그리워하며 살았어

소리 내 울었다면 난 지금

너를 조금 더 잊을 수 있었을까


*아주 가끔은 널 잊고 하루가 지나고

아주 가끔은 너 아닌 다른 사람을 꿈꿔도

나의 마음에선 너란 꽃이 자꾸 핀다

가슴에no no no no

아픈 니가 핀다



공연 리허설 전


리허설 모습만 봐도 좋다. 큰딸과 작은딸이 00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플루트와 바이올린 연주를 했기 때문에 딸들이 더 생각난다. 아마 딸들로 인해 클래식을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장에서는 한 번 들으면 끝이지만 공연이 있는 달이면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일주일 2~3번 2~3시간씩 연습하던 딸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더 귀하게 감사하게 보려고 한다.

그레이티스트 함안 공연 프로그램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해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잘 짜신 것 같다. 라퓨즈 챔버오케스트라 공연 연주도 하고 오페라 곡과 우리나라 가곡도 골고루 넣었다. 성악가 네 분의 파트도 다 달라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손태진 씨의 노래는 TV에서 듣는 그대로 잘 부르고 귀에 착 감기는 목소리였다. 이런 귀 호강을 하다니... 지휘자께서 중간 딱딱하지 않도록 청중과 소통하시는 모습에 웃음 짓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청중과 교감하려는 지휘자가 많으신 것 같다.


공연장 벽도 밋밋하지 않고 조명 덕분인지 참 멋있게 보였다. 아라가야 다운 멋스러움이 있는 공연장이다.



아라길에 있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숙소로 돌아오면서 가을 밤하늘에 아들과 산책하면서 여유로워 좋았다. 아들도 공연 내내 푹 자서인지 ~^^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엄마는 오늘 공연 진짜 보려고 했는지 물어본다. 오전 같으면 당연히 취소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반응이 궁금한가 보다. 아픈데도 엄마가 공연 보러 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공연보다 아들을 선택한다고 하니 웃는다. 저녁 공연이라서 상황을 본 것이고 당일 취소가 안되니 그냥 놔둔 것이다.


공연 관람 후 귀가 발걸음


아들이 어떻게 예약했냐고 묻는다. 티켓에는 경남도민만 가능하다고 쓰여있었다면서.


경남도민만 쓰여있더라도 일단 전화로 문의해 봤다. 역시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함안군청에서 '함안 한 달 살이' 신청해서 선정된 사람이니 한 달간 함안 사람'이라고 말했고 그 뒷날 가능한지 의논한 후 답변을 해주셨다.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2차까지 다 맞아야 하고, 맞은 후 14일이 지나야 하며, 앱에서 백신 맞은 증명서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크도 KF94를 꼭 써야 한다고 했다. 오~ 예상외로 복잡하지만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요청한 것은 다 제출하고 보게 되었다고 하니 엄마의 공연을 보려고 하는 집념에 놀랐단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못 간다고 하면 실망할까 봐 간 거라고 한다. 고맙다 아들아~ 빨리 회복해서 고맙고, 공연장도 같이 가줘서 고맙고, 엄마가 공연 관람을 좋아하는 걸 알아주니 더 고맙구나.



오늘의 통찰 : 미리 앞서 가지 마라. 상황을 보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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