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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따로 또는 같이 걷는 것이다

함안 한 달 살기 : 함안말이산고분군


아들은 점심을 먹더니만 숙소로 간다고 하고 나는 산책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여행이나 한 달 살이 중에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사색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주 산책하는 말이산고분군을 다시 찾는다.

잘 살기 위해서, 사색하기 위해서 무덤만큼, 고분만큼 좋은 곳이 없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환경이야말로 최고의 사색지다.


함안말이산고분군


아들과 같이 갈 때는 멀리 가지 못하고 고분군 근처에만 맴돌았는데 멀리까지 갈 수 있어서 좋다. 그만 가자, 다리 아프다는 말을 듣지 않고 오롯이 내가 가고 싶은 만큼, 생각하고 싶은 만큼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없어서 더 좋다. 이런 멋지고 근사한 나무를 혼자 보다니 아쉽기는 하지만 내 복인 걸, 어쩌리오.


또 나무에게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


너 몇 살이니?

아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함안말이산고분군 13호분


덮개석 별자리가 있는 13호 분을 드디어 지나게 되는구나. 살아서도 지켜보던 별자리, 죽어서도 지켜보고 싶은 염원을 담은 별자리 덮개석이다.


함안말이산고분군 13호분


박물관에서만 보고 고분 근처에서는 처음 봤는데 새롭다. 역시 실제 고분 옆에서 보는 느낌은 다르다. 아마 고분이 큰 것으로 봐서 왕릉이 아닐까 한다.


이 자리에서 여름밤 별자리를 보기 위해 행사를 한다고 하던데 궁금하다. 지난번 문화재 야행 축제 행사 때 밤하늘을 보니 참 아름다웠다. 지나가다가도 밤에 하늘을 보면 별이 보여서 멈추어 서서 하늘을 보곤 했다.


함안말이산고분군


불꽃무늬 토기나 유물을 보니 살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거기에 곡식을 넣거나 음식을 넣어서 먹기도 했을 테지, 그릇을 씻기도 했을 테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을까?


함안말이산고분군


마을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고분군이 있는 이유는 뭘까?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기 위해서일까? 안전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죽은 자들만 사는 곳일까? 신성한 지역으로 통제되었을까?


함안말이산고분군


1.9km 쭉 이어진 고분들을 바라보며 왕족의 죽음들로만 기억되는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다. 민중들의 삶은 한낱 먹다 남은 그릇으로만 기억되기도 한다. 왕이 아니면 덮개석 별자리를 그릴 수도 없었을 테니까. 덮개석조차 없었을 테니까.


함안말이산고분군


그런 왕족들의 고분을 몇 번이나 보러 오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여기를 자주 오는 것인가?


함안말이산고분군


일개의 산책코스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다. 산책코스는 집 근처 안양천으로도 충분하다. 가야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면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함안말이산고분군에서 바라본 성산산성


주위에 있는 고분과 나무와 산, 자연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닐까? 성실하게 무던하게 자라온 나무처럼, 하나하나 쌓아온 돌로 된 성처럼 계속 살아가기를 여기서 배우는 건 아닐까? 마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 노인처럼.


함안말이산고분군


5세기의 하늘이나 지금의 하늘은 달라진 게 있을까? 내려다보면서 뭐라고 할까?


함안말이산고분군


몇 분만 더 내려가면 산 자의 집들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곳이 말이산고분군이다. 뒷동산처럼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다. 울타리도 없고 담장도 없어서 좋다. 어차피 삶과 죽음에도 울타리나 담장은 없으니까. 죽음은 삶의 근처에 항상 있으니까.


함안말이산고분군


되돌아가는 길마저 꼬부랑길이다. 직선이 없구나, 삶처럼. 아니면 직선이었는데도 꼬부랑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꼬이거나, 미성숙해서.


함안말이산고분군


파란 하늘만큼 몸이 가볍다. 지나쳐온 아주 작은 일반 무덤들이 신경이 쓰이긴 했다. 과연 누구의 무덤일까? 가야의 무덤일까? 현대인의 무덤일까? 크기가 너무 비교된다. 나의 삶은 어떨까? 나의 죽음은 어떨까? 나는 죽은 후 뭘 남기게 될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라지는 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아들이 전화 온다. 배고프다고.......

먹고사는 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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