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 작가 님의 <<일단 떠나라>> PART 1 : 보다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인류 문명 최초의 발상지 이집트를 여행했고 PART 2에서는 매력적인 남동유럽 조지아, 아르메니아, 체크,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을 여행했어요. 지난 블로그에는 PART1~2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기록했어요.
이번에는 PART 3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PART 3에서는 프랑스에서 김별 작가님이 석박사 과정을 했던 곳과 이베리아반도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십 대 학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거닐었던 거리, 묵었던 숙소, 음식, 가론느강 등을 이야기하며 프랑스적인 것을 체험하고 싶으면 툴루즈를 추천하는군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이유가 인구가 적당, 공원과 쉴 곳이 많고 도시 전체적 중세풍이라는 건데요. 가고 싶은 이유를 읽어 보니 더 가고 싶어요. 중세풍의 분위기와 적당히 한산한 곳, 그리고 여유를 누리며 여행하고 싶거든요.
포르투갈을 소개하면서 포르투갈의 대표 문양인 아줄레주도 알게 되었어요. 볼사 궁전은 아랍 특유의 스타일과 부를 과시하는 듯한 건물이라고 했는데요.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문화와 아랍의 문화가 혼합된 마누엘 양식이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소개합니다
이베리아반도(포르투갈, 스페인)를 500~600년간 과거 아랍인이 지배를 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문화, 건축물들이 많은데도 남편은 유럽 중심의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아랍이 지배했었다는 것을 유럽은 꺼린다고 하더군요. 유럽의 정체성을 아랍과 섞고 싶지 않은 까닭일까요.
최초의 노예 무역도 포르투갈이고 그 뒤를 이어서 네덜란드, 영국으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이 흘러가죠.
포르투갈의 모험심이 있는 활약으로 바닷길이 열린다고 책에서 소개했고 남편과 저는 카페에 앉아서 이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남편은 모험심과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유럽은 동양의 해상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이루었고 그 부로 식량, 향신료, 도자기, 문화, 건축물, 사치, 체제 유지하는 데에 사용했어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섞였을 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생기고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는 남편의 말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다가 왜 김별 작가님은 계획 없이 떠났다면서 이집트와 지중해를 여행하고 있을까 남편과 제가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우리 부부는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을 몇 년 전에 다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흐름을 기억하고 있고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력과 통찰로 쓴 글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집트를 첫 여행지로 잡은 것은 아마도 최초 문명의 발상지였기 때문에라고 직접 김별 작가님이 쓰신 것처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이집트는 로마 제국 입장에서는 나일강으로 비옥해진 곡창지대로 곡물을 공급받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어요.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고 저는 왕의 무덤이고 내세를 위해서 권위를 위한 건축물이라고 했는데요. 남편은 그 시대 왕의 위엄을 보이고 왕의 명령을 따르게 하기 위해 엄청난 공사로 집중하게 만든 정책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스페인 하면, 로마군 본토를 공격하는 카르타고 총사령관 한니발 부대가 코끼리를 이끌고 스페인을 떠나 험준한 알프스를 겨울에 넘는 패기를 보여줬어요. 절반 이상 병력을 잃을 만큼 험난한 원정이었어요.
2차 포에니 전쟁의 수훈으로 한니발이 카르타고의 명장임을 알렸죠. 포에니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입니다. 로마에 카이사르가 있었다면 카르타고에는 한니발 장군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우는 아이를 나무랄 때 자꾸 울면 한니발 아저씨가 잡아간다고 했었답니다. 로마인들도 쩔쩔매는 한니발이었나 봅니다. 한니발은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스페인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한니발은 칸나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로마에 타격을 주었지만 본국에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패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본토 기습작전이 무리한 전술이라고도 하고, 대단한 전술이라고도 하는데 로마인을 위협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옆집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듯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모릅니다.
김별 작가님의 포르투갈, 스페인 가우디 소개를 보다가 남편과 로마인 이야기 내용에 빠져들어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중에 중심에 있는 로마가 있었고 지중해 대부분을 차지했던 로마였기에 유럽 이야기를 하다 보면 로마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스페인 여행에서는 가우디 건축물 6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답니다. 아이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도 가우디에 대한 소개를 본 적이 있어요.
가우디가 노숙자 취급을 받은 일화는 안타깝더군요. 전차에 부딪혔으나 노숙자처럼 보여서 택시 운전사도, 병원도 팽개치고 가버리거나 진료 거부해서 결국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 가우디의 말은 "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205P)며 빈민 병원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에 대한 장인 정신을 스페인 사람들의 인성이 따라가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2026년에 완공할 계획이랍니다. 1882년에 시작되었고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100년 이상 짓는 건물이 있을까요? 그것을 기다려줄 관공서나 국민은 있을까요?
저부터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