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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을 만드는 사람들

함안 한 달 살이


24박 25일 함안 한 달 살이 하고 귀가한 후 함안 앓이를 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고 좋아하던 책도 눈이 가지 않았다.


함안에서 귀가할 때 함안을 쭉 둘러보고 마라톤 10km 하면서 헤어짐을 준비하고 왔건만 소용없었다.

집안은 한 달 동안 밀린 청소를 해달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좋아하던 글쓰기에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고 집중할 환경설정도 되지 않았다.


일주일간 집 안 청소를 하면서 우리 집에 적응해야 했다. 과거로 돌아갔다가 이제야 현실로 온 기분이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이 우리 집에 먼저 적응해야 마음도 적응하리라.

말로써 나의 마음을 표현해 본다. 남편에게도 집이 적응이 안 된다고 하고, 함안에서 만난 함안군청 블로그 기자님에게도 카톡으로 함안 앓이를 고백했다. 모두들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셨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2주가 지나서야 낯설었던 집이 편안해졌다.


귀가해서도 2주 동안 함안에 마음이 머무르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함안의 풍경과 가야 역사, 유적, 유물은 당연한 것이고 함안 사람들이 생각나서가 아닐까? 함안은 함안 사람들이 만들고 있었다.



#1. 함안군청 블로그 사진기자님


함안군청 블로그 사진기자님을 우연히 함안 봉성 저수지에서 만났다. 봉성 저수지에서는 '함안을 조각하다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는데 거대한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조각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저만치서 핸드폰 사진이 아닌 카메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나처럼 함안 한 달 살이를 하러 오신 분인 것 같아 말을 먼저 걸었다.


여러 가지 함안 한 달 살이에서 불편함도 하소연하고 어떻게 한 달 살이 하는지 정보교환도 할 요량이었다. 함안군청 블로그 사진기자님이라는 말을 듣고 나를 소개했다. 친절하게도 이런저런 말과 함께 둘러볼 만 곳을 알려주셨고 '수곡 도예'와 '승마공원'을 꼭 가보라고 권하셨다. 버스의 불편함을 이야기했더니 자동차도 없이 여행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했었다.


예전 같으면 명함을 교환했을 텐데 우리는 블로그를 보여주며 서로 이웃하고 헤어졌다. 숙소에 돌아가서 블로그를 보고 인스타를 봤더니 사진이... 사진이.... 예술이었다. 당연히 블로그 기자님이시니 사진을 잘 찍겠거니 했는데 경남도에서 주최하는 '관광사진 공모전'에서 함안 성산산성 나무를 찍은 사진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나무 아래 다소곳이 앉은 한복 입은 모습이 참 이쁘고도 이쁘다.


사진기자님  (함안 성산산성) 인스타 사진출처 @jhsh0070


와~나도 성산산성 가면 이렇게 찍어보리라 마음을 먹고 비슷하게라도 아들에게 겨우 부탁을 하고 찍었는데 주위에서 멋진 사진이라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함안 성산산성


아들에게 이렇게 찍어달라고 하면서 사진기자님 사진을 보여줬는데 아쉽게도 나무가 다 잘렸다. 어두컴컴해지고 주위엔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고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빨리 찍고 하산해야 했다. 2~3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그나마 이 정도 찍은 것이다. 멀리서 찍었기 때문에 아들과 소통하기가 힘들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이미 나간 상태라 서로 전화할 수도 없이 겨우 건진 사진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사진이 비교되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진기자님과는 그 이후 두 번을 만났다. 감사하게도 자동차가 없이 다니는 것을 보시고는 귀한 시간을 내어서 버스로 갈 수 없는 곳을 동행해 주셨다.



함안 악양 둑방


비록 왕복 6.5 km의 약양둑방길 주변의 꽃들이 다 져버렸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고 꽃이 피었을 때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저장되었다. 아쉬운 곳이 3~4개 정도는 남겨둬야 다시 함안을 올 테니까.


함안 악양 생태공원


악양루까지 올라가서 노을 지는 모습을 한참 보다 같이 내려왔다. 이런 노을 지는 풍경을 같이 보게 될 인연이라니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기자님 아니었더라면 놓치고 갈 뻔한 장소였다.


이튿날 ' 수곡 도예 '에 가신다길래 같이 동행한 덕분에 물레로 딸들에게 줄 머그잔을 만들 수 있었다. 수곡 도예도 함안에서 가려면 교통편이 불편해서 두 번은 안 갔을 것이다. 사진기자님이 간다면 한 번 더 만들어보고 싶어서 같이 갔다. 물레로 머그잔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수곡 도예 부부를 다시 만나서 더 반가웠고 한 번으로 공방을 체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이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다시 가고픈 수곡 수예 공방이다. 수곡 도예 공방 부부 선생님들도 함안의 아라가야 불꽃무늬 그릇과 여러 유물들을 빚으시면서 함안을 빛내고 계신 분들이다. 동행해 주신 사진기자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안 '레드 인 카페 갤러리' 카페


함안 '레드 인 카페 갤러리' 카페

함안군 여항면 '레드 인 카페 갤러리; 카페


함안군 여항면에 있는 '레드인 카페 갤러리'카페에도 같이 갔다. 뚜벅이로서는 욕심낼만한 위치의 카페가 아니었다. 뻥 뚫린 카페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카페였다. 더군다나 아들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는데 악보가 코드로 되어 있어서 치기 힘들다면서 몇 번이나 피아노 앞을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어설픈 피아노 소리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주인장이신 분이 화가여서인지 디자인도 남다르고 밝은 색 그림들이 걸려 있어서 기분도 좋았다. 고구마 라테의 맛의 기억은 함께 있었던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뮤지컬을 좋아하신다며 간혹 서울에 올라오신다는 말을 듣고 서울에 오면 만나자고 했다. 덕분에 좋아하지만 자주 못 가는 뮤지컬을 같이 보게 될 날을 소망해 본다. 이방인에게 마음과 시간을 내어준 사진 기자님 감사해요.


#2. 정가네 칼국수 사장님




함안 정가네 칼국수


함안 가야읍에 숙소를 정하면서 오며 가며 자주 들렸던 '정가네 칼국수'다. 특히 아들이 들깨칼국수를 자주 먹던 곳이었다. 여자 사장님이 아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기억이 난다. 마치 아는 언니처럼 가야에 가볼 만한 곳도 소개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내년에 펜션을 오픈할 예정이라는 말에 한 달 살이 하면서 불편했었던 부분을 다 이야기해 드렸니 이미 다 갖춰져 있었다. 이런 펜션 사장님을 만나고 그런 펜션에서 머문다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세탁기를 준비하셨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해결하긴 했지만 세탁기가 있다면 한 달 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세탁기가 있는 펜션은 내가 가본 곳 중에는 없었다.


오픈 예정이지만 펜션 이름을 여쭤봤더니 " 해 뜰, 꽃 뜰"이라고 지을 예정인데 딸이 촌스럽다고 해서 고민 중이라고 하신다. 나는 참 맘에 든다. 보나 마나 해가 잘 드는 곳일 테고 칼국숫집 앞에 화분을 가득 놓은 곳을 보면 꽃들도, 정원도 잘 가꾸어놓으실 것 같다. 펜션 이름만 들어봐도 어떻게 구상하셨을지 상상이 간다.


내년에 다시 간다면 통화해서라고 머물고 싶어 진다. 역시 함안을 새롭게 만들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이 자주 나는 분이다.


#3. 함안 승마공원 기수 가이드


함안 승마공원 가이드


마지막 날 들른 함안 승마공원 기수 가이드분이 생각난다. 조용히 말을 끌고 다니면 되지만 마음을 내어 아들에게나 나에게도 말을 건네주신다. 함안 한 달 살이를 한다고 아들에게 들었는데 어땠느냐고 물어봐 주시고 다정하게 이말 저말 건네주셨다.


함안을 다니면서 어찌 친절한 사람만 만났겠는가? 불편한 기색으로 안내하는 사람도 있었고 거칠게 말하는 사람도 만났으나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고 마음에 두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면서 체험하려고 온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해준다는 느낌을 몸으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에게는 매일 하는 일상적인 일이나 아들이나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힘든 결정을 하고, 시간을 내어 함안 한 달 살이 마지막 날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찾아간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장인 정신처럼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이런 분들이 함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4. 함안군청 조정래 공무원 겸 작가님


가야 '충무 서점'에서 책을 사러 갔다가 매대에서 '잊혀간 왕국, 아라가야 6 녹나무관의 비밀'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라가야에 대한 역사 공부를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려고 하다가 6권째라 그냥 두고 인터넷으로 1권부터 사려고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정래 작가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보니 함안군청 가야사 담당관으로 근무하고 계신다는 반가운 글을 사진으로 찍고 돌아왔다. 태백산맥을 쓰신 그 작가분이 아니다.


보나 마나 함안군청에서 가야사 담당관으로 근무하다가 책까지 쓰게 되는 열정을 지니지 않으셨을까 추측을 하고 어떻게든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함안군청으로 전화를 했다. 가야 역사에도 관심 있고 말이산고분군에도 관심 있지만 가야 역사를 잇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난 더 궁금하다.


함안 한 달 살이 담당하시는 주무관님에게 물어봤더니 같이 근무하고 계신단다. 앗싸~ 책을 보고 만나고 싶다고, 가야 역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고 하면서 메모를 남겼다.

몇 번이나 서로의 스케줄상 시간 조율이 되지 않았다.


함안을 떠나기 전날 가야를 둘러보며 마라톤 10Km를 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다른 전화라면 받지 않았을 텐데 주무관님 전화라 얼른 받았다. 하필 마라톤을 하는 도중이라 당장 갈 수도 없었다. 다행히 마라톤이 3시에 끝나니 4시에 가능하냐고 물으시길래 무조건 가능하다고 했다. 설사 시간이 부족해 마라톤 후 씻고 가지는 못할지언정 만나고 싶다. 어떻게든 만날 생각으로 어젯밤에 서점에 가서 6권째라도 책을 사두었고 앞부분을 읽기도 했다. 캄캄해서 혼자 가기는 무서워서 아들을 살살 달래어 서점에 같이 갔다 온 것이다. 아무래도 만나기 전에 다 읽고 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읽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마라톤 10km 완주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점심도 못했기에 김밥 2줄을 사서 숙소에 가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30분의 시간이 남았으니 외출 준비하고 김밥을 후딱 먹어치우자면서.

5분 전에 숙소 앞에 준비하고 나왔더니 주무관님과 조정래 작가님이 황송하게도 자동차로 태우러 와주셨다.


함안군청 조정래 작가님, 인도 오디시 무용가와 함께


함안 사진기자님과 가볼까 했던 '카페 1946'에서 만났다. 가야 할 곳은 어떻게든 가는구나.

함안 살이를 하고 계신 인도 오디시 무용하신 분도 함께 만났다. 함안 고분군 앞에서 인도 오디시 무용이라니 참 멋지다. 다양한 콘셉트의 함안 살이를 하고 계신 분들을 선정한 함안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조정래 작가님이 6권째 출간한 책은 가야 역사에 관한 추리소설 형식의 책이라고 알려주셨고 가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원래는 마라톤도 즐겨하셨는데 책을 집필하고 있어서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더 좋은 책을 오래 쓰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꼭 하셨으면 좋겠다. 나도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건강과 글쓰기의 지속력, 집중력을 위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에 대한 지식과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까지 꿰뚫고 계셨는데 그래야만 전방위적으로 아라가야에 대한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아' ->' 아라 '의 뜻이 강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다. 아라가야는 강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아리수'로 유명한 생수 이름도 있지만 원래 '아리수'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에 표기된 '한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라가야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헤어진 기억이 있다.


바쁘신데도 시간을 내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만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진정한 작가가 되고 싶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분이셨다.


# 5. 함안 박물관 해설사 000님


함안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열정적으로 해설을 해주신 해설사 000 님도 함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방문한 곳이어서인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봤는데 참 자세히 알려주셨고, 일부러 되돌아가서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함안 박물관 해설사님이 나눠주신 쪽지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별자리 덮개석에 대한 내용을 '작은 별'이라는 노래에 맞춰 부를 수 있게 가사를 적어서 모두에게 나눠주셨다. 한 번씩 노트에 붙여 놓은 이 가사를 보면서 동요를 부르곤 한다.


함안군 말이산고분군 13호 분 앞 별자리 덮개석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13호 분을 잊을 수가 없고 궁수자리는 남두육성, 전갈자리는 안타레스라는 것을 잘 기억할 수 있다.


함안 박물관 상징인 아라가야 그릇에도 왜 불꽃무늬가 있는지 질문 했는데 그릇을 구울 때 깨질 수가 있기 때문에 불꽃무늬로 구멍을 낸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박물관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나친다. 초6 우리 아들을 비롯해서 방문한 사람들이 설명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해서 무지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하신 덕분에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아라가야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함안은 함안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폼페이 아라가야'는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함안군청에서 애쓰고 있는데 등재를 기원한다.


함안 앓이는 이제 함안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함안을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오래  기억 되겠지.





함안군청에서 함안 한 달 살이 선정되어 지원받아 작성한 글이나 실제 체험 위주로 솔직하게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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