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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을 떠나며 다시 가는 박물관

함안 한 달 살기


함안 24박 25일 한 달 살기 마지막 날 토요일이다.

어제 다행히 마라톤 10km를 뛰면서 함안을 둘러봤기 때문에 아쉬움이 덜하다.


금요일 밤에 남편이 경기도에서 함안까지 차를 갖고 왔다. 내려온 큰 이유는 함안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달 살이 한 큰 공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느낌으로 한 달을 살았는지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얼마나

세상이 넓은지 잊어버린다


-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읽고 있는 '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린다'라고 했는데 나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얼마나 세상이 편한지 잊어버린다'라고 바꾸고 싶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한 곳에 머무르다 보면 익숙해져서 계속 오가던 길만 가다 보니 다른 넓은 세상을 놓치게 된다. 또 편하게만 살고 싶은 게 사람인지라 불편하고 낯선 곳을 가기 싫어한다. 그래서 함안에 왔는지도 모른다. 편안함과 행복한 집이 있음을, 일상에 행복이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남편은 박물관이 보고 싶다고 하고 나도 같이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해서 다시 찾는다. 몇 번이나 찾은 곳인데도 다시 가도 새롭다.


아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 와~ 걸어서 가지 않고 아빠 차 타니까 너무 좋다.

아빠보다 자동차가 너무 반갑다 반가워"


그 감탄사의 의미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진짜 좋다. 이렇게 편하게 자동차를 타고 박물관에 다시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에나, 세상에..


이렇게 차가 반가울 수가. 너무 편하다. 너무 좋다.

우리가 차가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알아요, 차가 없어서 고생한 걸 말로 하자면 열흘 밤도 모자라..."

쉴 새 없이 아이가 엄마에게 이르듯이 남편에게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낸다.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남편이 고맙다.


함안 박물관

한 달간 걸어만 다니다가  자동차를 타고 오니 박물관보다 더 귀한 자동차다.  오늘은 박물관보다 더 찍고 싶은 자동차다. 


함안 박물관 아라가야 말갖춤(말 갑옷)


해설사에게 들은 이야기, KBS 역사 스페셜에서 함안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를 방영해서 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달한다. 특히 말의 갑옷을 발견한 마갑총에서 나온 유물을 복원해서 직접 말에게 입히는 장면은 '트렌드 코리아 2022' 트렌드 중 하나인 '실재감 테크'를 여실히 보여준다. 말의 갑옷을 하나하나 엮은 후 말에게 씌워보고 말에게 걷게 하니 말의 움직임이 수월하게 만들었다는 평가였다. 공영방송국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장면이 아닐까 해서 TV로 보면서도 흥미롭고 감탄하면서 봤다.


그 말이 있는 함안 승마공원을 오후에 찾을 예정이다.

함안 박물관  말이산고분군 13호분 사진


왕묘로서의 말이산고분군 13호 분도 나에게 아주 의미가 있다. 덮개석 별자리가 있는 고분이라서 시를 짓기도 했다. 고분의 자리가 흙이 아니라 암벽을 파서 만들었다는 새로운 정보도 이제야 얻는다. 고분을 둘러보면서도 바닥의 암벽이나 바위를 밟아보곤 했다.

몇 번을 가보아도 모든 정보를 다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서 여러 번 가도 새롭다.


함안 박물관 중국계 연꽃무늬 그릇


특별 전시되고 있는 '중국계 연꽃무늬 그릇' 도 다시 본다. 5세기 중국과의 교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마치 내가 유물을 조심스레 파내서 직접 소개하는 사람 같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특별 영상(약 10분)을 보고 고분군을 향한다. 특별 영상도 실재감 테크를 구현한 것이다. 직접 가야 시대의 상황과 왕, 장군, 서민들과 화려한 무늬와 음악은 매번 나를 사로잡았다. 오직 남편과 나 둘이서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귀하고 웅장한 영상이다. 역시 초6 아들은 관심이 없다며 밖에서 기다린단다.


아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하지 않으련다. 박물관 앞에서 박물관 구경만 한 것으로, 아라가야의 향기를 맡은 것으로 족하다.


향수 가게에 가면 향수 향이, 서점에 가면 책의 향기를 묻히고 오듯이 박물관에서 아라가야의 향기만 맡아도 어딘가.


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들에게 사진을 부탁하지 않아서 좋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찍히는 고충으로 아들과의 신경전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수없이 찍어준다. 인생 사진을 남겨주겠다며 여유를 부려주는 남편이 고맙다.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있음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아들은 1~2번 찍으면 귀찮아서 그만 찍으라고 하는데 이렇게 맘껏 찍어서 좋다. 사진 잘 찍는 방법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많이 찍은 후 그중 하나 건지는 것이다. 그것을 여러 차례 알려주어도 아들이 알 리가 없다. 이렇게 멋진 풍광이었는지 다시 보게 된다.


함안말이산고분군


6구간 걷기 챌린지 코스이기도 해서 걷기 챌린지 중 헤맸던 길과 멋진 광경을 본 추억담을 또 재잘재잘 말해본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가려고 먼 산자락까지 눈길을 보낸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참 기억날 만한 산책길이구나.

4시간 50분 소요되는 기차를 타고 다시 올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들과 함께.

가슴이 먹먹한 이유가 뭘까? 

도대체 뭘까?


함안 전통 한우국밥 대구식당


그 먹먹함도 배고픔을 이기진 못 한다.

함안군청 블로그 기자님이 소개해 주신 함안 '한우국밥 대구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함안인데 이름이 '대구식당'이다. 차가 없어서 맛집을 찾아 나서기는커녕 지나가다가 그냥 먹는 게 일상이었다. 그게 여행의 묘미라고 위안하면서.


자동차가 있어서 맛집도 찾아간다며 좋아라 들떠 있다.

맛집은 이렇게 좀 오래돼 보이고 낡아야 맛있다.


함안 한우국밥 대구식당


점심시간이라 금방 사람들이 줄을 선다. 줄을 선다는 것은 일단 맛이 보장된다는 일차적인 신호라서 다행이다.


함안 한우국밥 대구식당


이런 정겨운 부엌도 좋다. 들어서는 입구에 예전 오래된 부엌을 자랑스럽게 보이는 모습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이 보인다.

함안 한우국밥 대구식당


이 밥상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이런 밥상을 떡 하니 내놓는 곳이라니.

물건은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가 중요하다.

이 식당에서는 이렇게도 놓아도 어울리고 오래된 흔적으로 멋스러워 보이는데 다른 곳에 놓이면 궁상맞다고 하지 않을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어느 자리,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아니나 다를까 남편, 아들, 나 모두 만족스러운 국밥이었다. 국밥이 별게 있으리오마는 국물의 맛이 깊었다.

다시 가고 싶은 국밥집이다.


함안군 승마공원


점심을 먹고 함안에서의 마지막 코스인 함안 승마공원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주말에만 운영하기 때문에 일정 짜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날이라도 승마체험을 꼭 하고 싶었다. 함안 박물관에서 마갑총을 보고 승마를 타지 않을 수 없다.


함안군 승마공원


일단 무서우니 남편 먼저 타보라고 한다.

남편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장난을 치는 아들이 한 마디 한다.


" 오~ 아빠 장군 같은데~"


그 말에 아빠는 좋아서 웃는다.

울타리 주위를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다.


함안군 승마공원


다음으로 아들에게 타보라고 한다.

약하게 보이기 싫어하는 사춘기라서 인지 시크하게 올라간다. 옛날이었으면 초원을 달리고 있을 나이지 않을까.


함안군 승마공원


전장으로 아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고 뚱딴지같은 상상도 해본다. 무서워서 안 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 말 없이 탄다.


함안군 승마공원


남편과 아들에 이어 나도 타본다.

무섭기는 하지만 체험하지 않고 어찌 가리오.

체험하지 않고 어떻게 이야기 하리오.

생각보다 말이 크고 높이도 높다.


함안군 승마공원


도와주는 기수 분이 함안 한 달 살이가 어떠냐고 자상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가이드 역할을 아주 잘하셨다.

그냥 말만 몰고 가기만 해도 되겠지만 이런 자잘한 대화들이 아직까지도 좋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이런 분들이 함안을 지키고 홍보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한 바퀴 돌아서 올 때는 좀 달려보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조금 빠르게 말이 걷도록 했는데 재미있었다.

말이 뛰는데 나도 같이 뛰는 거처럼 숨이 차고 상체가 들썩였다. 와~ 이런 기분이구나.

말과 하나가 되어 뛰어야 가능하다.

말만 뛰고 나는 편안히 얹혀서 가는 줄 알았는데 같이 호흡을 맞추고 뛴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초원을 힘껏 말갈기가 휘날리듯 달리고 싶다.


상상해본다.

함안 박물관에서 본 말의 갑옷을 입고 말근육이 탄탄한 말을 타고  달린다. 열댓 명의 무리들이 달리는 상상을 한다. 중간에 달리는 말 위에서  뒤돌아 활시위를 당겨보면 끝내 주는데....


함안군 승마공원


발판이 없다면 어떻게 말 등에 올라타지?

몸이 가볍지 않으면 타기도 힘들겠는걸.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말의 힘이 대단하다.

말 근육이 거저 나온 말이 아니다.


함안군 승마공원


초원을 달리지 못하는 대신 승마공원 입구에 있는 가짜 말, 가차 마차라도 타서 영화 '벤허'처럼 말고삐를 쥐고 달리는 흉내를 낸다. 이랴~ 이랴 ㅎㅎ


함안을 떠나는 고속도로 위


말 대신 자동차를 타고 함안을 떠난다.

이젠 정말 함안 굿바이다. 며칠간 이별 연습을 했다. 함안 주변 10km 달리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진도 보면서 연습했건만 소용이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24박 25박 날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어색하고 낯설던 모습, 길을 헤매던 모습, 좋은 경치에 감탄하고, 사람들에게 감동받고,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내 집 주변처럼 산책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별은 아프다. 아프다. 


때론 여행자처럼, 때론 함안군민처럼 잘 살고 떠난다.


건강하게 아들과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함안군아~ 기회가 된다면 또 올게~



이 글은 함안군의 지원을 받아 여행하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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