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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안 한 달 살이

함안 한 달 살이

엄마와 함안 한 달 살이


함안에 가기 전에 학교, 학원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학원 진도 때문에 늦어질까 봐 걱정했고 학교에서 6학년 다른 반과 피구 경기가 있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갈 때는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학교와 학원을 안 가도 되는 생각에 기뻤다.


기억에 남는 장소는 낙화 체험, 수곡 도예, 승마 체험이다. 

낙화 체험은 낙화봉을 만들어서 소원을 쓰고 태운다. 만들기는 쉬웠다.

낙화봉을 태울 때 처음에는 조금씩 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꽃이 많이 떨어지는 게 예뻐서 기억에 남는다.


도자기 체험은 수곡 도예에 가서 만들고 싶은 것을 골랐다. 만들기는 조금 어려웠다. 수곡 도예 선생님이 친절하게 알려 주셔서 좋았다. 완성된 작품을 2주 동안 기다려야 하는 게 아쉬웠다.


승마체험은 처음엔 떨어질 것 같이 왼쪽으로 덜컹거려서 떨렸다. 타다 보니 익숙해져서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더 오래 타보고 싶다.


함안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고 더 있고 싶었다.

학교, 학원 갈 생각에 걱정도 되었다.  

초등학생 때의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안 해봤던 걷기 챌린지, 낙화 체험, 도자기 체험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행하면서 엄마랑도 싸운 적도 있었지만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아들에게 함안 다녀온 이야기 써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써서 주더군요~^^.)





초6 아들과  함안 한 달 살이


함안 한 달 살이는 혼자 가고 싶었다.

혼자 가서 글을 쓰고, 고독한 시간에 자신과 대면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아들은 초6학년이라 처음에는 엄마가 없어도 충분히 잘 지내리라는 생각을 했다.

평상시에도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 알아서 학원을 가거나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어서 엄마가 없어도 그리 걱정이 되는 아들은 아니었다.

시골 초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같이 가볼까 했던 것이 결국 동행하게 되었다. 


아들과 언제 이렇게 여행할 수 있을까?

딸 둘하고는 카페도 가고 대화도 통하는데 아들은 크면 클수록 대화 기회가 줄어들 것 같았다.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았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6학년 11월 한 달, 이 시기가 가장 아들과 여행하기 좋은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추진했다. 


셋째이자 막내라 어리광도 부리고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지만 목소리도 변성기로 접어들었고 키도 한 뼘씩 자라서 금방 나의 키를 넘어설 것 같다.


#1 쇼미니더머니 랩


39살 나이차는 어쩌지 못한다. 

집에는 tv가 없기 때문에 조용하게 생활했는데 함안 숙소에서는 가는 곳마다 tv가 있어서 '쇼미더머니10' 랩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하지도 못하는 랩을  어찌나 신나게 따라 하는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그 변성기 굵은 목소리를 듣는 것은 고역이었다. 봤던 내용을 보고 또 보고 무한 반복이었다. 어느새 랩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랩 좋아하는 것을 집에서는 몰랐는데 함안에서 알게 되었다. 특히 소코도모의 힙합곡 '회전목마'는 나도 외울 지경이다. 


   

내가 슬플 때마다 이 노래가 찾아와

세상이 둥근 것처럼 우린 동글동글

인생은 회전목마 

 
우린 매일 달려가 언제쯤 끝나 난 잘 몰라

어머, 벌써 정신없이 달려왔어

Speed up 어제로 돌아가는 시곌 보다가

어려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Uh huh

On the road, 24 시간이 아까워 Uh huh

Big noise, Everything brand new

어렸을 때처럼 바뀌지 않는 걸

찾아 나섰단 말야 왜냐면 그때가 더 좋았어 난

So let me go back 타임머신 타고 I'll go back


   -회전목마 가사 중 일부-


아들아, 너도 지금이 좋은 때란 걸 알게 될 거야, 이 노래 계속 듣기 바란다.

너도 이제 노래로 위안을 받아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2 사진 찍히기도 싫고, 찍는 것도 싫어요.

아들 카톡 프로필 사진(아들이 찍은 함안 악양 둑방 사진)

가장 갈등이 깊었던 이유는 사진 찍기였다.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는 하겠는데 엄마가 사진 찍는 것마저 싫어하니 해볼 도리가 없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함안을 소개하러 온 사람인데 사진을 찍지 말라니, 찍어도 1~2장만 찍으라니 어이가 없었다. 몇 번이나 이유를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다행히 열흘쯤 지났을 때 포기하겠다며 엄마가 원하는 대로 찍으라며 허락 아닌 허락을 해줬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서이지 않을까.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더 무서운 법이다. 아들아.

사춘기는 그래도 센 척하면서도 부모들 눈치를 보는 편이지만 갱년기는 여차하면 누구의 눈치도 안 본단다. 그래도 이런 갈등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서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상담심리를 공부할 때 교수님이 아이들과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이렇게 생각하라고 알려주셨다. '관계를 좋게 만들 절호의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하라 하셨다. 이런 마음의 여유도 나이,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나마 엄마가 30~40대가 아니라서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들이 첫째이고 엄마가 40대였다면 무척 힘들었겠지. 상상도 하기 싫다. 


귀가 한 지 한 달이 되었는데 함안에서 찍은 악양 둑방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에 계속 올리는 아들의 마음은 또 뭐지? 



#3 무서울 땐 아들이 내 보호자다.


내가 아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는데 밤의 외딴 길에서는 아들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걷기 챌린지 할 때 어두운 함안 성산산성을 내려올 때 어찌나 무서웠던지 빠른 걸음으로 내려와 보니 등에 땀이 흥건했었다. 아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무서워서 혼났을 게다. 

숙소에서 첫날 잠을 잘 때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낯설기도 하고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뒷날 독서모임도 걱정되었는데 아들이 곤히 자는 것을 보고 내 맘도 편안해졌단다. 따듯한 온기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아들은 모를 거다. 내가 무서워하거나 힘든 표시를 내면 금방 전염될 것임을 알기에 더 씩씩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가로등도 없는 길에 핸드폰 라이트 하나를 비추고 걸었던 펜션 앞 골목길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거다.  조용한 겨울 시골 밤은 참 까맣기도 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나도 무서웠는데 같이 걷는다는 것은 참 위안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가야읍으로 숙소를 바꾸면서 낮에는 잘 찾아가는데 밤에는 불빛 때문에  숙소에 들어가는 길이 자꾸 헷갈렸다. 계속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찾지 못했다. 급기야는 아들이 엄마를 믿어서는 안 되겠다며 숙소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치킨집을 기억해뒀고 헤맬 때마다 곧잘 찾아내곤 했다. 서로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도 거들어야 자신이  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았겠지.


# 4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


함안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기에 식당에 갔는데 둘의 키가 비슷해서인지 초6인데 어른인 줄 알았다고 하면서 듬직해서 좋겠다고 덕담을 하신다. 함안 가기 전 1~2개월 사이에 키가 쑤~욱 커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뒷모습을 보면 연인이나, 부부인 줄 알고 착각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들이 이제 겉모습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고 싶어서 1주일에 1번씩 옮기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혼자는 짐을 들기가 힘들다. 딸하고 시장을 보거나 외출할 때는 딸들이 짐을 들어주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아들은 꼭 짐을 들어주려고 한다. 무거운 짐을 더 많이 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이젠 어린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3~4살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서 뭉클해지기도 했다. 멋진 매너남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5. 감사함을 배운 함안 여행


이번 함안 한 달 살이를 통해서 아들이 일상의 감사함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에 아들은 책 한 권 가져가지 않았고 쉬는 시간엔 핸드폰 게임을 했고, 함안을 걸어 다니거나 체험을 하는 게 전부였다. 일상의 감사함에 대해서는 느꼈을지는 모르나 표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감사함은 내가 처절하게 느꼈다. 일주일이 지나자 라면이라도 끓여 먹기 위해 필요한 냄비 하나, 숟가락, 젓가락도 필요한 곳이 많았고 빨래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불편할 때도 많았다. 매일 사 먹기만 해서인지 만들어서 먹고 싶은 적도 많았다. 먹고 싶던 요리도 양념이 없으니 제대로 할 수 없음에 싫어하는 요리가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부엌이 있고, 양념들이 있는 싱크대가 그리웠다. 귀가해서도 2주간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게 했는지 모른다.


매일 늘어져 있는 캐리어백을 보면 정리하고 싶어졌다.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야 하는데 필요한 거 한 두 개만 꺼내도 금방 헝클어지고 찾으려면 다 뒤져야 하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이었으면 느끼지 못할 불편함들이 한 달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일상의 감사함,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들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고 나나 잘 하자!



초6 아들과 함께 한 함안 한 달 살이는 평생 추억으로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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