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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한 달 살이에서  내가 달라진 것

함안 한 달 살이

#1 새로운 길이 두렵지 않다


오늘은 이 길로 가 볼까?


새로운 길이 더 끌린다.

걸어서 도서관을 가는 길에도 안 가본 길을 선택해서 씩씩하게 내딛는다.

예전 같으면 가던 길, 편한 길, 익숙한 길로만 다녔는데 함안에서 걷기 챌린지로 길을 많이 잃어보고 찾기를 반복하다 보니 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길을 잃는다 해도 어차피 길은 서로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아는 길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길 잃는 즐거움에 빠진 것 같다.

새로운 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낯섦을 느긋하게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불리는 아비투스,  나의 아비투스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어려운 상황을 직면했을 때 쿨하지 못하고 당황하기가 싫어서, 자신감이 없어서 자꾸만 하던 일만 하는 나의 삶의 자세를 알게 되었다. 이제 호기심을 갖고 여유를 갖게 되는 자세를 길을 잃어본 후, 잦은 실수를 한 후에 찾을 수 있었다. 길을 잃는 게 잃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한 셈이 되었다. 안 해본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 더 강해졌다. 새로운 일에 생각 없이 그냥 도전하고픈 열정이 겼고 발길이 새로운 길을 향해 먼저 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2 거꾸로 가는 길도 있다


함안 걷기 챌린지 5코스는 나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서지게 하는 경험이었다. 왜 걷기 챌린지는 출발에서 도착점을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도착점에서 출발점으로 거꾸로 가는 길도 있는데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나의 유연성 없음을 깨닫고 헛웃음이 나왔던 적이 있다. 기록을 위한 챌린지도 아니고 중간중간 사진 인증을 하면 되는 챌린지인데 굳이 차례차례 가야 한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물론 그 사고도 나쁘진 않지만 결코 유연하다고 할 수 없다. 시집 필사를 운영하면서도 항상 시작할 때 유연한 사고를 갖고 싶어서 시집 필사를 한다고 목적을 쓰면서도 그렇지 못했다.


도착점에서 출발점으로 거꾸로 가는 길은 확실히 한번 더 생각해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표지도 순차적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방향이어서 거꾸로 가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거꾸로 생각하는 가역적 사고가 가능해야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데 순차적인 사고로도 헤매는 길이었기에 거꾸로 가는 길은 더 헤맬 수밖에 없었다.


삶은 어떨까?

차례차례 순차적으로 수순을 밟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대학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론 공부를  먼저 한 후 현장 근무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현장 근무를  한 후 이론이 필요하여 공부를  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상황을 이해하고 즐기면서 배우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순서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하기도 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더 힘겹게 느낀다. 절실한 배움이 있을 때 열정이 치솟아 오르기 때문에 순서에 얽매이지 말자. 다른 사람보다 늦게 배우는 것, 더디다는 것에 좀 더 초연해지자. 길은 순서가 없기에. 어느 길로 가든 길이기에. 어 삶이든 소중한 삶이기에.



# 3 나의 일상이 함안에서의 일상이었다


지인들은 내가 함안에 가서 특별한 일상을 한다고 생각한다. 장소가 다르기에 특별한 일상이긴 하지만 일상의 루틴이 함안에서도 반복이 되었다. 4시 새벽 기상을 하고, 글쓰기와 독서를 한다. 06시에 낭독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독서록을 정리하고 시집 필사를 한 후 카페에 올리면 10시가 된다. 10시부터는 필사 독서를 줌으로 진행하거나 서평, 인문학 독서모임 수강하는 부분을 줌으로 참석한다. 여기까지는 집에서 하는 일과 똑같다. 오후 일정만 달라진 것이다.


오후에는 말이산고분군 산책을 하거나 가야 읍내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걷기 챌린지, 10km 마라톤을 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집 근처 안양천, 한강 주변에서 산책을 하듯이 10km 달리기를 했다. 항상 해오던 루틴대로 생활하니 함안 가는 첫날부터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산책 장소가 다르거나 글을 쓰는 소재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고 글을 쓰기가 수월해진 것 같다. 일정을 무리하게 짤 필요도 없었고 그냥 오후에 1군데만 정하고 산책하듯 둘러보고 오면 그만이었다.


여행지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짜거나 평상시에 다른 패턴은 오히려 피곤해질 수 있다. 집에서와 별다를 게 없는 루틴이어서인지 글을 쓰기에 편했다. 왜 루틴이 목표 달성이 되고 창의성의 근원이 되는지 깨달았다. 루틴이 되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단축되고 집중할 수가 있다. 집중하니 원하는 목표 달성이 이루어질 게 뻔하잖은가. 잘 키워 놓은 루틴이 함안에서도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 4 집안일 하는 시간이 어마어마한 시간이었다


함안에서 귀가하고 나서도 가장 힘든 부분이 집안일이었다. 다녀오니 집안 곳곳에서는 청소를 해야 할 만큼 먼가 쌓여있었고 정리가 필요했다. 일주일간 구석구석 청소만 했다.  일주일 청소를 하지 않고 함안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으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 상상해본다. 숙소에서 아침에 토스트를 주기도 했고 주지 않는 곳에서는 간단하게 누룽지나 빵을 먹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집에서는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시간만 해도 하루에 몇 시간을 잡아먹는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함안에서 지낼 때와 달라진 패턴으로 집에서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청소, 밥, 빨래하는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더군다나 집안일은 하나를 하면 또 하나가 보여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3~4시간 집중할 수 있는 함안과는 달리 집에서는 가족들이 자꾸 말을 건네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1~2시간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가족 모두 한 달간 잘 지내고  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감사하게 귀가 후 음식을 만들었다. 글쓰기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다. 둘 다 나에겐 중요한 일이기에 지혜로운 시간 배분이 항상 중요한 과제다.


#5 결국, 사람이었다


함안에서는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하는 게 목표였다.

하루 이틀 만에 수다를 떨 사람이 그리워졌다. 다행히 온라인 줌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시집필사팀을 운영하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멀리 함안 가서도 독서모임을 한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외딴 함안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처럼 나노 사회의 특징이 혼자 개인적 시간을 갖고 싶어 하지만 고립감이 싫어 같은 취향의 사람끼리 만나는 선택적 연결을 원한다. 나도 혼자 조용히 글 쓰고 산책하는 시간을 원했지만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항상 온라인 위에 존재하였기에 덜 힘들었다. 브런치도 나의 글을 들어준 귀한 존재가 되었다.


거기에 함안 이방인에게 마음과 시간을 내어준 함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듯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시키곤 했다. 그들에겐 작은 일이었지만 이방인으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함안군청 블로그 기자님이 그랬고, 함안 한 달 살이에서 만난 블로거 00 맘이 그랬고, 00 숙소 사장님이 그랬고, 걷기 챌린지 담당자들이 그랬다.


다녀와서도 지인들과 온라인에서 맺은 인연들(인스타, 블로그, 단톡방)이 안부를 묻거나 챙겨주심에 함안 한 달 살이에서 내 집 한 달 살이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함안 한 달 살이 보다 내 집 한 달 살이 적응이 더 힘들었다. 이 분들 덕분에 조금씩 함안을 덜어내고 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내 집 한 달 살이도 오늘 딱 한 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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