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는가?
- 최진석 교수
이 질문은 최진석 교수님이 함평에서 운영하는 새말 새몸짓 철학 강좌 2024년 1기 커리큘럼 중 3강 제목입니다. 수강하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글쓰기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12가지의 질문에 혼자 답하고 있습니다.
1기
1강 :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2강 : 수준 높은 삶이란 따로 있는가?
3강 : 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는가?
4강 : 철학이 밥이 되는가?
5강 : 부모는 어쩌다가 교육으로 자식을 망치는가?
6강 : 당신은 텃밭과 정원 사이 어디쯤인가?
2기
1강 : 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가?
2강 : 황당해도 되는가? 황당해야만 하는가?
3강 : 당신의 쾌락은 예능과 예술 사이 어디쯤인가?
4강 : 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
5강 : 왜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이 탁월함의 기초인가?
6강 : 지식인이 왜 쉽게 부패하고 진부해지는가?
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굳이 지적이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오히려 역질문을 하고 싶어졌어요. 지적이지 않아서 배우지 않아서 지식이 짧아서 생기는 많은 폐해, 고통, 사기, 손해로 상처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보통 조금 더 아는 사람(지적이지는 않지만)이 무지한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법이니까요.
무지가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도 있다.
오히려 무지가 생명을 앗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네루다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우편배달부 영화에서는 시와 청년과 시인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지만 청년은 네루다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결국 정치적 사건에 휘말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네루다 시인을 향한 마음 하나로 희생하게 되고 그의 가족은 힘든 삶을 살았겠죠.
지식으로 삶의 이치를 안다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지적이라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삶의 이치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책과 삶에서 지적인 사람들은 좀 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지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 내적 성장을 하면서 지적인 사람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책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멘토가 되어주고 있고 제대로 읽고 실행만 한다면 지적인 것을 넘어서 탁월한 삶을 살아가겠죠. 하는 일과 관계에서도 문제 해결을 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많은 영역에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 지적 능력
지적 능력이 살아가면서 지혜를 발휘해 문제해결력을 키워줍니다. 정보가 적고 지식이 적으면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방법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이 많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총동원해서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을 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선택지가 적으면 갈등을 하게 되고 포기하거나 실패를 했을 경우 막막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지가 많다면 대안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오히려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면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데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최선이 아니면 최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되어버리는 거죠.
아이를 키우는 과정, 일의 성과를 내는 과정, 관계를 좋게 하는 과정 등 모든 게 지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지적 능력이 좋아서 이런 이론과 경험을 지식으로 쌓고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고 반대로 그에 대한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면 그들의 삶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요? 갈등과 문제들, 악순환의 연속이 되겠죠.
꼭 지적이라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지적인 사람이 꼭 행복하지는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오만과 편견이 가득할 수도 있고 배려하지 않거나 편향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에 스스로 파멸되기도 하고 더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얻는 자, 배우는 자는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계속 질문해야 많은 희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적인 사람의 횡포를 경계하다
무지한 사람의 잘못으로 몇몇이 희생할 수 있으나, 지적인 사람의 횡포, 폭력에는 수많은 사람, 다른 나라 국가, 지구적인 희생을 크게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도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책임감과 사명, 경계를 지적인 사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무지한 사람보다 지적인 사람인 경우가 많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따르는 경향이 많습니다. 민중이 가진 지식보다 더 많다고 생각해서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치인들을 선거에서 뽑지만 오히려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람들로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적 능력이 꼭 지혜는 아니다
지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지식이 없어도 지혜롭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얼마나 잘 표현하거나 응용하면서 문제나 삶에 적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배움이 없는 할머니도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하고, 지식이 많은 분들도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삶에 잘 적용할지가 지식의 활용, 지혜의 탄생입니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지식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 많은 지식 탓이라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만 삶에 잘 활용, 적용해서 아주 성장할 텐데 적용은 하지 않고 계속 지식만 갈구하고, 너무 지식만 입력한다고 하는 데서 오는 비판입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방법은 행동하고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적음을 탓할 게 아니라 지식을 행동하지 못함을 탓하고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저부터요.
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을까요? 에 대한 대답에는 Ye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