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어 '소년이 온다'북클럽을 진행했습니다.
10월은 한강의 작품 5권을 읽느라 거의 대부분을 보냈는데요, 그 아픈 한강의 작품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으나 북클럽을 하지 않으면, 특히 2024년 노벨상을 받은 그 시점에 하지 않으면 후회될 것 같아서 11월 도서로 두 권을 선정했습니다.
'소년이 온다' 북클럽 하기 전에 미리 마인드맵으로 어떤 내용을 나눌까 작성했습니다. 미리 소감과 질문 1~2개를 만들고 오라고 공지를 한 상태였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계기
한강 작가가 12~13살 무렵에 아버지 소설가 한승원이 가져온 광주 민주 항쟁 사진을 보고 두고두고 숙제처럼 의문이 생겼고 이걸 정면으로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픈 소설을 쓰셨다 합니다.
한쪽에서는 총으로 죽이고, 한쪽에서는 헌혈하기 위해서 줄을 서는 인간의 이중적인 마음에 의문이 갔답니다.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누구는 쓰러진 사람을 돕거나 정의를 위해 달려드는 반면에 누구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명령 하나로 살해하는 부류가 있으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시대적 공간적 배경 이해하기
작가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1979 부마항쟁, 1980.10.26 사태부터 1980. 6월 광주 민주 항쟁까지 쭈욱 연결이 됩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면 소설의 흐름도 알게 되죠.
왜 광주였는지? , 광주항쟁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마인드맵에 정리해두었어요.
*제목, 표지 의견 나누기
재*님은 의견 : 책 표지에 안개꽃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개꽃을 좋아합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한 다발을 이루니 작은 꽃이 민중을 뜻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님의 의견 : 표지에서 추모하는 듯한 사진입니다. 캐나다 표지는 한국의 정서와 사뭇 다릅니다. 제목도 HUMAN ACT이고 소년의 얼굴 중 눈을 가리고 있는 사진입니다.
한국의 정서와 많이 다릅니다. 같이 모임 하는 분들 모두 다른 정서, 다른 표지에 놀라곤 했습니다. 한국의 표지는 추모의 이미지라면 캐나다 표지는 뭔가 숨겨진 이야기를 까발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목도 인간의 행동에 더 포커스를 맞춰진 듯하고 한국의 제목 '소년이 온다'는 좀 더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이거든요.
신*님은 어린 목숨들을 표현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개꽃의 꽃말을 찾아봤습니다. 죽음, 슬픔, 약속, 깨끗한 마음, 영원한 사랑, 죽을 만큼 사랑해 등등이 있습니다. 하얀색 안개꽃이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 기억하자는 약속, 사랑에 대한 스토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의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제목은 앞으로 1년 뒤, 5년 뒤 점점 우리 곁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다고 합니다. 지난번 '작별하지 않는다'와 이번 '소년이 온다' 모두 현재 진행형으로 제목을 쓴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로 우리 곁에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체적 소감>
영*님: 미리 각 장마다 다른 화자의 시점에 대해 블로그 쓴 내용을 보내드려서 참고하며 읽었습니다. (리더가 먼저 화자에 대해 쓴 블로그를 미리 보내드렸습니다. )
2장 실종된 사람 입장에서, 화자가 쓴 내용이 창의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호흡, 문체, 틀이 파격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힘들게 쓴 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아픈 소설이지만 잘 읽고 배우게 된 소설입니다.
재*님 : 1장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은 책입니다. 혼자 읽는 것과 모임에서 읽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모임에서 읽으니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혼자 살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원래대로 못 돌아가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재독, 삼독하면서 각 상징들이 더 눈에 들어왔고 다른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 ' 소설을 같이 읽으니 더 이해가 잘 되었고 중복되는 말과 장면들이 들어왔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비'가 올 것 같아 하면서 시작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눈으로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1장 '작은 새'제목에서도 새는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연약한 존재로 표현되는데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주인공 인선이 친구 경하에서 제주 집에 남겨진 새를 구하기 위해 눈 오는 날 자신의 집으로 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냥 새가 아니라 4.3사건의 한복판에 있는 중산간 지역, 인선의 집으로 서울에 사는 경하가 내려가달라고 하는 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경하(일반인들)에게 4.3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검은 나무로 등신대를 만들어 혼을 위로하려 했었는데요. 검은 나무는 죽은 사람들을 뜻하기도 하죠. '소년이 온다'에서는 2장 '검은 숨'으로 표현했는데요. 검은 숨은 죽은 사람의 숨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망자의 입장에서, 혼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도 하는데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눈 속에서 헤맬 때 살아서 하는 이야기인지, 사후의 이야기인지 흐릿하게 표현하여 삶과 죽음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하지만 결론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성냥불로 불꽃을 만들어내듯 희망을 이야기하고, '소년이 온다'에서도 촛불의 불꽃이 애도와 함께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 인상적인 문장
재*님이 고른 문장입니다.
누나한테 가자. 하지만 누나가 어디 있을까...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자. 하지만 그들이 어디 있을까
- 81P
2장 정대의 혼이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으러 가려고, 누나를 찾으러 가려고 하는 말입니다. 혼이 찾으러 간다니요? 너무나도 아픈 설정입니다. 혼까지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지 마. 죽지 말아요.
- 232P
5장 밤의 눈동자에서는 고문하는 시간을 시시각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5장 마지막 문장인 죽지 마, 죽지 말아요가 아주 간절하게 들립니다.
영*님이 고른 문장 : 1장 동호의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면서 만난 장면입니다.
아무 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 58P
얼마나 참혹한 장면들이 1장에서 다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시체들, 악취, 수습하는 사람들, 계속 들어오는 시체들,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람들, 가족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 막는 사람들...
제가 고른 문장입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 28P
놀란 아기 새 같은 영혼들을 어찌할까요? 한강 작가만의 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된다는 상상력에 감탄합니다. 혼도 놀랄만한 이 5.18의 이야기를 어찌할까요?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175P
과연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요? 악한 존재일까요? 존엄한 존재일까요? 한강 작가처럼 저도 의문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상황에 맞게 배운 대로, 경험한 대로, 익힌 대로, 자신의 생존과 가치에 맞게 행동할 따름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씩 악한 존재가 나타나기도 하고, 선한 존재가 나타나기도 하나, 평범한 인간은 상황에 휩쓸리거나, 상사의 명령에 따르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기도 합니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더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 123~124P
군중의 도덕성은 근본적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발현되면 특별히 숭고함이 나타나고, 근원적 야만이 군중의 힘을 만나면 야만이 극대화되는 것이라는 뜻이군요.
근원적 숭고함, 근원적 야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또 어떻게 길러질까요? 개인의 경험과 배움, 가치, 철학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민중은 무리를 지으면 대담한 행동으로 나오고 개인일 때는 겁쟁이가 된다
- 마키아벨리 어록 242P
지난달에 읽은 마키아벨리 어록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민중은 무리를 지으면 대담한 행동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담한 행동이 나온다는 것은 내면의 야만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반대로 숭고함이 내재해도 정의로운 행동으로 극대화될 것이고요.
역사와 예술이(특히 문학) 만나면?
역사와 예술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재*님은 역사를 직접 말해주는 듯한 느낌, 역사의식이 분명해지게 됩니다.
영*님은 고대 문명은 허구를 믿는 사람만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허구, 스토리, 국가를 믿는 사람만이 문명이 발달해온 것이죠. 언어와 문자를 뛰어넘은 그림이 벽화로 존재했고 이야기로 정체성을 심어주며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신화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죠. 과거의 신화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니까요. 각 나라의 사명, 신념이 담겨있는 게 건국신화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신화가 중요합니다.
역사와 문학, 그림, 음악이 만나면 전달력이 달라집니다. 말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데요. 글로 표현하면 적나라하게 예술적인 표현한다면 극대화가 되고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되면 정서적으로 깊이 와닿게 되겠죠. 과거를 현실로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예술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유한할까? 무한할까?
모임하는 셋, 저까지 넷 다 유한하지만 무한을 꿈꾸고 도전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의미에서 생각나는 단어를 이야기했습니다. 때론 단어만으로도 정리가 되니까요.
합동분향소, 시취, 촛불, 용서, 삽시간, 고통, 역사, 인간의 본질, 불꽃
이상으로 독서모임 후기였습니다. 혼자라면 이렇게 많은 내용과 다양한 분야의 사고를 하지 못했겠죠. 독서모임을 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였습니다.
'5.18민주 항쟁을 정면으로 마주한 한강 작가는 희생자와 유족, 인간의 본질 앞으로 전 세계인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 같이 고통을 느끼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