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라톤에 도전하다
영하 5도
쌀쌀하지만 월, 수, 토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나선다
월은 혼자 달리고 수, 토는 광명 마라톤클럽 정기훈련이므로 멤버들과 달리기로 했다.
2~3월은 온라인으로 저녁 9시에 줌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기훈련에 합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녁에 6시에 달리기를 한 후 8시에 인사만 하고 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 마라톤클럽에 합류했으니 멤버들과 교류도 필요하고 달리기 연습을 위해서라도 캠프에 들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얇은 목티와 반팔 셔츠를 입고 얇은 점퍼 위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나섰는데도 냉기와 찬바람이 만나니 얼얼하다.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얼굴까지 가릴 두건 마스크를 갖고 나온다. 귀가 너무 차갑거나 얼굴을 차갑게 하는 것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평소 기모 장갑은 달리다 보면 땀이 나서 면장갑을 끼는데 날씨가 날씨인 만큼 기모 장갑을 껴도 손이 시리다.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했다.
날씨가 춥고 저녁 6시가 되어서인지 인적이 드물다. 춥기는 추운가 보다.
달리기 연습하는 사람도 자전거 타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너무 추운 날 달리기 연습하러 나왔나???'
이왕 달리기 연습하기로 했으니 주 3일은 해야 풀 마라톤 도전이라도 할 수 있겠지.
달리기를 할 마음이 있을 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슬슬 달리기 시작하니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해서 춥지는 않다.
그래도 평상시와는 달리 땀이 날 새도 없이 냉기가 온기를 가져가 버린다.
2~3km 달리면 얇은 점퍼를 벗는데 오늘은 뛰면서도 지퍼를 최대한 올리게 된다.
두건 마스크를 눈만 보이게 하고 귀를 숨기고 달린다. 귀에서는 바람소리가 윙윙 들린다.
정모 훈련에서도 12km를 달린다고 하니 나도 12km는 달려야겠다.
조금 지나니 두건 마스크 입 주위가 딱딱하다.
세상에나, 입김이 있기 때문에 습기가 있어서 바로 얼어버린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달리기, 이런 상황을 맞이하네. 풀 마라톤 도전 잘했구먼. 이런 진귀한 현상도 보고.
이런 추운 날 달리기를 평상 시라면 하지 않았다.
풀 마라톤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광명 마라톤 클럽 가입을 해서 멤버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컴퓨터를 오래 하다 보니 어깨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여 운동이 필요하겠다 싶어 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하지 않게 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다. 생각날 때 바로, 가입한 후 바로, 내일이 아닌 지금 이 시간 목표와 관련된 작은 실행을 해야 좋은 시작,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다. 이민규 작가의 '하루 1%'라는 책에서 이런 방법이 나왔고 실행하려고 목표를 세우면 미루지 않고 그와 관련된 신청, 가입, 연락, 가입비 입금 등을 바로 해버린다.
바람이 차가워서인지 두건 마스크를 벗지 않고 호흡을 한다.
호흡 때문에 찬바람을 계속 마시면 나중에 목이 아프기 때문에 가능하면 찬바람을 마시지 않고 두건 마스크를 쓴 채 호흡하려고 했다.
5km가 지나자 코스 길이 어두컴컴하여 더 달리지 않고 반환점을 미리 돌았다.
1km 8' 51''
2km 7'45''
3km 7'49''
4km 7'50''
5km 7'58''
6km 7'45''
핸드폰으로 달리기 앱을 켜고 들어 보니 2~6km까지 어떻게 거의 같은 7분 50초 전후로 비슷하게 달리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달리기에 몸이 최적화되고 있는 건가? 이 추운 날씨에. 이 추운 날씨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무리하지 않고 제 속도로, 제 컨디션으로 달리자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유튜브에서 책을 추천하는 남자 '책추남'의 '어포메이션'이라는 책 낭독을 들으면서 달린다.
우리가 긍정 확언 문이 어려운 이유는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 효과가 덜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풀 마라톤 완주한 사람이다'라는 긍정 확언을 매일 읽는다고 해도 '난 아직 아닌데.'라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그런데 '어포메이션'에서는 '내가 어떻게 풀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었을까?'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질문이야말로 자아를 만나는 길이다. 이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다. 나처럼 주 3일 꾸준하게 6개월을 연습했다든지, 마라톤 클럽에 가입했다든지, 풀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과 같이 연습했다던지, 근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운동도 병행했다던지, 서서히 km를 늘렸다던지... 와~ 답이 술술 나오네. 풀 마라톤 완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7km 구간에는 8분대가 넘기 시작한다.
마라톤클럽 멤버들은 반환점을 돌고 나서 더 속도를 내고 초반에 힘을 비축하라고 하는데 아직은 잘 되지 않는다. 후반에 더 힘이 들기 마련인데 어떻게 해서 더 속도를 내는지 아직 모르겠다. 10km 달리기에 익 숙어 지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힘든 일이다. 며칠 전 월요일 10km를 아침에 달리고 나서도 오후에 하루 종일 비몽사몽 하여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7km 8'10''
8km 8'17''
9km 8'32''
10km 8'38''
11km 8'23
마지막 1km가 남았다.
스퍼트를 해야 하는데 힘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볼까?
속도를 내어본다. 바람도 차갑고 몸도 무겁고 무릎도 아프기 시작했다.
11km에서 멈출 수는 없다 12km 목표를 세웠으니 어서 핸드폰에서 '12km'라는 말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2km 구간은 신경을 쓴 덕분인지, 빨리 마치고 싶어서인지 7'27''로 오늘 달린 구간 중 최고 기록이다.
'어머나'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최고 기록'이라고? 이건 뭐지?
1~6km에 지금처럼 7분 50초 전후로 뛴다면 7~12km 구간에는 7분 20초 전후로 뛰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최소한 비슷하게?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마라톤 클럽에 가서 풀 마라톤을 달리신 분들에게 질문해야겠다.
12km 완주 알람을 듣고 마무리 회복 스트레칭을 혼자서 해본다.
앉았다가 일어서는 스트레칭은 무척 뻐근하고 아프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프더라도 내일을 위해서 스트레칭을 생각나는 대로 기억해내며 해본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무릎이 무겁고 아프다.
이런 통증이 있어도 달려야 하는 건지 또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캠프에서 겉옷을 챙기러 갔는데 저녁 8시 출발하기 위해 홍 00님이 계셨다.
12km 러닝하고 왔다는 말에 놀라신다.
'이 추운 날씨에, 혼자?'라는 눈빛이다.
대단하다고 하시며 풀 마라톤 달성할 것 같다고 덕담을 해주신다.
그러면서 왜 달리기를 하냐고 물어보신다.
지인들도 궁금해한다. 힘든 달리기를 왜 하는지, 그래서 나도 자문자답해보곤 한다.
셋째 낳고 허리가 아파본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서, 달리기로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 외에도 달리는 이유는 엄청 많다.
글쓰기를 위한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
마라톤 인내심이면 다른 일도 참을 수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명상효과를 위해서,
뛰고 난 후 성취감이 대단해서,
뛰고 난 후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일에 도전하고픈 용기가 생겨서,
다른 일에 활력이 생겨서,
마라톤만큼 힘든 일이 없기에 다른 일은 쉽게 넘어가는 여유가 생겨서,
쉽지 않고 힘드니 도전할만한 가치를 느껴서,
수많은 자아를 만나는 일이 매번 반복되어서,
달리기 연습하는 기록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
나를 이기는 게임을 하고 싶어서이다.
살아가는 이유도 가지가지이듯이 달리는 이유도 매번 다르다.
입김에 두건 마스크도 얼어버린 영하 5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달리러 온 이유는 풀 마라톤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