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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리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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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거대한 이성이다" 이성은 왠지 정신과 어울릴 것 같은데 몸은 거대한 이성이라고 말하는 니체입니다. 왜 몸이 거대한 이성이라고 했을까요?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챕터 부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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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몸에 속하는 어떤 부분을 표현하는 것에 그칠 뿐이라고 말합니다. 작은 이성도 모두 몸의 도구이기 때문에 몸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네요. 몸이 커다란 이성이나 나머지 정신, 영혼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는 뜻이에요


과연 우리는 이 커다란 이성인 몸을 잘 활용하고 계시나요? 정신과 영혼을 잘 다스리려면 몸을 먼저 다스려야겠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입니다. 저도 매일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몸과 영혼, 정신과 조화로움을 위해서 하는데 이런 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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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보다도 큰 이유는 자아를 행동하게 만드는 게 몸이기 때문이군요. 자아가 아무리 강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나'라고 하는 부분이 한정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아를 행동하게 만드는 게 이성일까? 이성이 움직여야 자아를 행동하게 만들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 저냐 하고 비슷한 것 같지만 행동하는 자아가 자신을 더 만들어내지 않을까 합니다. 이성만으로, 생각만으로 행동하게 하는 데에는 저의 경험상에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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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의지의 도구로 정신을 창조했다는 글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있는 모습 그대로 보면서 행동하면 될 것을 스스로 존경과 경멸을 구분하고, 쾌락과 고통을 구분 짓죠. 그 구분 짓는 자체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주까지 읽었던 '건너가는 자'에서 반야심경의 지혜를 소개했는데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면서 우리가 보는 세상에는 고정된 게 없고 관계에 따라 변할 뿐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서로 이것이다, 저것이나 구분하고 생각하고 관념을 짓죠. 존경과 경멸을 나누고, 쾌락과 고통을 구분하죠. 이 자체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죠.


자신을 넘어 창조하는 것이 자기가 가장 원하는 일이며, 자기의 최고의 열정이라고(53 p) 말합니다.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 '건너가는 자(최진석)에서도 최고의 깨달음이라고 했거든요. 건너가는 것 자체, 도전하는 자체가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죠. 계속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니까요.


생각과 의지가 행동으로 나타난 게 삶이며 의지가 행동을 이끌고 의지가 몸을 이끄는 도구입니다. 몸은 그 모든 것을 품는 거대한 이성이며 그 안에 감정, 쾌락, 존경 등의 모든 것을 담고 있죠. 과연 우리는 이제부터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이성과 정신을 담고 있는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이 책을 읽고 실천하려고 오늘도 러닝 하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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