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쓰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63p
글을 쓰는 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알게 되는 문장이에요. 처음에는 쓰는 것조차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면서 제대로 쓰는 게 맞나 의심이 가기도 하죠. 그러나 쓰면 쓸수록 내면이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쓰기가 되어버렸어요.
풀코스 마라톤을 5시간 뛰고 겨우 한 페이지 글을 쓸 때는 정말 피로 쓴다는 생각이 들었죠. 겨우 한 페이지 쓰기 위해 그 힘든 훈련을 1년 이상 하고 대회를 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힘든 과정을 한 페이지 압축해서 쓴 글이야말로 피로 쓴, 체험을 통한 글이 아닐까 해요. 곧 저의 정신이기도 한 것 같고요.
직접 체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어렵다고 니체도 말합니다. 간접 경험을 통해서 통찰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니체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이 밉다고 했나 봐요.
작가를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반복 독서를 하고, 작가가 걸었던 길을 거닐기도 하고, 빙의하여 필사도 하고, 독서토론을 하면서 다양하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작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겉으로만 느끼고 공감하게 되지만 온몸으로 작가와 같은 배움은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특히 쓰기는 내적 활동으로 자신만의 정서, 고통, 감정을 표현하는 창의적 작업이고 능동적 행동인데요. 반대로 읽기는 수동적 행위로 다른 사람의 지식을 수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들 하지요. 수용만 하지 않고 능동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 하나라도 실천하는 실천 독서를 저도 하고 있어요. 그만큼 읽기와 쓰기는 다르기 때문에 읽지만 말고 쓰라고 그렇게 모든 작가와 사람들이 주장하고 설득하고 때론 강요하죠.
제 경험으로도 쓰기는 읽기에 비해 5배 정도 어렵지만 성장은 10배가 되는 것 같아요. 뭐든지 어려워야 성장이 되는 이치는 쓰기에서도 해당돼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삶을 비관하기보다 기꺼이 발휘하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초인의 힘을 강조해요. 니체도 삶은 감당키 어렵다고 말하는 걸 보니 힘든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하죠.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긍정적인 존재로 정의하네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삶이 힘드시죠?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기운이 올라올 때 원래 삶은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책이에요. 역시 책에서 다시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일이 뜻대로, 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것을 또 감당해 내고 새로운 길을 찾게 하는 니체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