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24p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어요. 311~339p 독서 리뷰입니다. 하루에 30~40P씩 읽으니 부담도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되나요? 무슨 뜻일까요?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324p-
사랑은 은유로 시작되고 은유로 가슴에 새겨지고 그 은유를 생각할 때마다 그녀가 생각나는 것이죠. 그녀는 바구니에 떠내려와서 자신에게 보내졌다는 은유가 생각날 때마다 그녀를 보호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빠집니다. 이 순간 사랑에 빠지고 시작된다는 뜻이에요. 테레자가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은유입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은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은 내가 키워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해요. 새 둥지의 아기 새처럼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책임감은 두터워지고 아이들은 소중해지고 잘 키워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은유의 힘을 배웁니다.
그 누구의 영혼과 양심도 오이디푸스보다 결백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한 일을 보고는 스스로를 벌했어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36p
오이디푸스가 자신도 모르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찌릅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요? 운명의 잘못인가요? 오이디푸스의 잘못인가요? 잘 살피지 않은 욕망의 잘못인가?
이런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스스로 벌해야 할 것인가요? 알고도 잘못을 했음에도 스스로 벌하지 않고 피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요? 왜 스스로를 벌했을까요?
하지만 오이디푸스처럼 굳이 스스로 벌해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고통에 직면한 것도 억울한데 스스로 벌까지 줘야 한다면 너무 가혹합니다. 성찰의 기회로는 삼되 스스로 벌하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책 내용에서처럼 너무 야만적입니다.
왜 스스로를 벌했을까요?
모르고 한 일이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의 권력, 욕망, 지나친 야망에서 비롯된 것을 자아비판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문을 만들어보고 스스로 답해봅니다.
Q 토마시는 오이디푸스 기사를 쓰면서 스스로 잘못한 부분을 공산당 간부들이 성찰하라는 의도로 보인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잘못은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 김민들레
남의 잘못은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과오는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회는 비판하면서 가정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무질서한 모습을 우리들의 본능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 정치 부조리에 비판하면서 나는 정의롭고 도덕적인지 성찰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