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어항처럼 고요했고, 그들 앞에 펼쳐진 모든 기항지의 비행장들은 '하늘 맑음, 바람 없음'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 야간 비행, 16p
어린 왕자를 쓴 생떽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소개합니다. 조종사답게 생떽쥐페리는 시선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하늘이 어항처럼 고요했다는 표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아마도 비행기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봤기 때문에, 바다를 위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 소설은 파비앵이란 조종사와 그의 상사인 리비에르을 중심으로 하루 만에 생긴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편을 배달하는 비행기는 야간에 운행해야만 다른 교통수단보다 빠르게 전달하게 되죠. 날씨로 인해 실종되는 파비앵의 비행기입니다. 땅에서, 하늘에서,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시선의 글이 때로는 평범하고 때로는 깨달은 자들의 말인 것 같습니다.
배테랑 리비에르는 아주 냉철하려고 하고 이성적이고 경험이 많아서 그의 시선이 곧 생떽쥐페리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제 그는 한밤중의 야경꾼처럼 밤이 보여 주는 인간의 모습들, 그 부름들, 그 불빛들, 그 초조함 같은 것들을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저 소박한 별 하나는 외딴집 한 채다. 불빛이 꺼지면 집은 자신의
사랑 속에 갇힌다. 또는 근심 속에 갇힌다. 식탁의 등불 앞에 앉은 저 농부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한다.
저 농부들은 자신들의 등불이 초라한 식탁을 비출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80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그것이 마치 누군가가 무인도에서 바다를 향해 절망적으로 흔들어 대는 등불처럼 보여 그 불빛의 부름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 20~21p
조종사가 보는 대지 위 농부의 초라한 식탁 등불. 어쩌면 조종사에게는 희망의 불빛일 수도 있고 행복의 불빛일 수도 있겠어요. 야간 비행을 하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조종해야 하는 그들이 바라보는 대지는 힘들지만 그나마 안전한 곳이니까요. 감사하게 되는 문장이었어요. 그들의 시선에는 대지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고대의 지도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을 갖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엄청난
연민을 가졌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죽음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바다가 쓸어 버리는 모래와도 같은 인간 종족에 대한 연민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막이 파묻혀 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라도 세워 놓으려고
백성을 산으로 이끌었던 것이리라
- 98p
고대의 지도자들은 개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 종족에 대한 죽음이 두려워 내세까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돌기둥을 세우고 신전을 세우고 무덤을 저리고 크게 만들었을까요?
마침 8월의 북클럽 도서가 '공간 인간'(유현준)이라서 매일 조금씩 한 챕터씩 읽고 읽는데요.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 신전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읽었어요. 건축으로, 공간으로 인류사를 보는 건축가의 시선인데요, 인류 역사이기도 하고 건축사의 역사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을 고대인들의 염원을 담은 신전이나 무덤들이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모닥불에서 고인돌, 괴베클리 테페 등 종교적인 신전 건축이 세워집니다. 그 후 정치적인 권력 무덤, 왕궁까지 세워진 후 그리스 시대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콜로세움까지 세워지고 교회, 도서관, 스마트 시티, 우주 가상공간까지 소개하는 책입니다.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는 사람은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산다고 했는데요, 고대인들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야간 비행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선을 읽을 수 있었어요. 죽음이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상의 작은 일들, 주변의 사람들, 가족에게 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우리가 헤어질지,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찰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알게 하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대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산다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