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잠을 푹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05시 만나서 08시 춘천에 도착해서 9시 출발 일정인데 잠을 못 자서 달릴 수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컨디션을 위해 전날 밤 10시부터 자려고 취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조용히 하라고 준엄한 엄명을 내리고 누웠는데 왜 그리 눈만 말똥말똥 한지 12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보낼 바에는 코스를 익히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에 유튜브를 보면서 춘천 마라톤 풀코스 안내한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외울 정도가 되어도 잠은 감감무소식이다.
새벽 3시가 되었다.
지금 자면 4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나버렸다.
2022 춘천 마라톤 배 번호
미리 싸 둔 짐을 다시 한번 챙긴다. 특히 지난번 2022 ktx 광명역 마라톤 대회에서는 배 번호를 잃어버려서 다시 발급하는 해프닝이 있었기에 살피고 또 살핀다.
마라톤 복장을 입고 거기에 긴 바지와 점퍼를 덧입고 2022 춘천 마라톤에서 보내온 책자를 다시 꼼꼼하게 익히며 코스와 식수대, 코스 전략 등을 읽고 또 읽는다.
04시 20분에 택시를 타려고 카카오 T를 불렀는데 주변에 택시에 없다고 자꾸 호출 실패 메시지가 뜬다. 이러다가 마라톤 클럽에서 대절한 버스가 05시에 출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조급해진다.
아, 꼭 이럴 때 남편은 시골 갔을까?
택시 호출에 실패해서 광명 마라톤 클럽 멤버들이 모이기로 한 광명 사회체육 센터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지만 새벽이라 캄캄해서 무섭다. 가능한 한 큰 도로로 가는데도 무섭다. 한참 걷다가 다시 카카오 T를 호출하니 5분 안에 도착한단다.
휴~ 다행이다.
5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4시 45분에 도착했다.
광명 마라톤 클럽에서는 풀코스, 하프, 10km 신청하신 분들과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 총 30여 명이 출발했다.
버스에서 자려고 목베개까지 챙겼건만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온몸이 나도 모르게 긴장하나 보다.
잠깐이라도 눈이 붙이려고 안대를 써보지만 역시 자는 건 안 돼.
왜 그럴까?
잘해보려는 욕심 때문일까?
건강 위해, 훈련한 만큼, 즐기면서 달리자고 하는데도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남춘천 IC를 지나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내려서 식당을 둘러봤더니 없다.
어디서 뭘 먹는다는 거지?
남춘천 IC 지난 공터
버스 짐 칸에서 밥이 나오고 국이 나온다.
평상시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는 물 한 컵 마시고 우유에 미숫가루를 먹고 달리면 든든하다. 밥을 먹으면 2~3시간이 지나야 소화되기 때문에 먹으면 더부룩해서 달릴 수가 없다.
돗자리를 깔고 뜨끈한 밥과 시래깃국, 김치, 김, 떡을 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혼자 뜨거워진다.
세상에~ 05시에 출발하는데 언제 준비하셨을까?
부담 없는 밥과 국이라 많이 먹지 않고 반 그릇만 먹었는데 너무도 달고 달았다. 준비해 주신 임원과 자원봉사해 주신 분들에게 벌써 감동을 받았다. 완주하면 어떻게 하려고 벌써 감동하나? 수없이 감동받을 날의 첫 번째 예고였다. 사서 온 것도 아니고 직접 신 00님이 밥, 국을 안 00님이 김치를 담그신 거라 완주 아니면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300회 풀코스 도전하시는 김 00님이 내 앞에 앉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무지 마음이 든든했다. 초조하고 긴장한 내 맘과 달리 그분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고 그분의 마인드 컨트롤을 닮아보려고 잠깐 빙의해 보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몸에 맡기면서 달리라고 버스에서 조언을 해주셨다.
#2 2022 춘천 마라톤 대회장 도착
광명 마라톤 클럽의 자랑 300 풀코스 완주하시는 김 00님
도착하자마자 캠프를 차리고 김 00님의 풀코스 300회 완주 현수막을 건다.
와~ 멋지다.
오늘 김 00님은 300회, 나는 1회째 풀코스 완주 목표다.
대비되는 기록이지만 나야말로 영광스러운 자리다.
같이 코스를 뛰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는다.
더군다나 출발 전 악수를 하시면서 손을 꼭 잡아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좋은 에너지를 다 받았으니 달릴 일만 남았다.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는데 평상시와 다른 일정을 보내고 있어서 큰일을 보지 못했다. 04시부터 깨어나서 08시까지 버스로 왔으니 화장실을 갈 일이 없었다. 가장 큰일을 해결해야 5시간을 달릴 수 있는데......
몇 달간 이 훈련도 했기에 몸이 기억하겠지.
신호가 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화장실을 이렇게 기쁘게 달려가기는 처음이다.
출발 전까지는 몸 컨디션은 완벽하다.
잠을 못 잔 것 빼고는.
출발 전 광명 마라톤 클럽 참가 멤버와 가족들
스트레칭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마음을 다하며 구석구석 몸을 바라본다.
#3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풀 코스 출발
2022 춘천 마라톤 출발 -유튜브 캡처
출발 대기 중 - 유튜브 캡처
상공에서 본 출발 대기 중 모습이다. 엘리스 선수들 8시 출발, 마스터스는 9시에 출발, 기록이 좋은 분들부터 A~E 조로 나뉘어서 출발했고 F조는 미등록 대기자로 나처럼 처음인 사람이 달린다. 맨 마지막에 달리게 되었다.
2022 춘천마라톤 출발
배동성 사회와 가수 션, 음악 소리가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내 몸은 달리기 준비를 이미 마치고 기다리고만 있다가 뛰어나갔다. 8천 명과 함께 달리기는 처음이라 달릴 맛이 났다.
95세 김중주 할아버님
와~95세라니. 나는 청춘 중에 청춘이로세.
역시 춘천 마라톤이다.
2022 춘천 마라톤 조선일보 유튜브 생중계 캡처
코로나 이전 다른 해는 몇 만 명씩 참여해서 출발선에서는 몸이 서로 부딪힐 정도라고 했다.
7분 20초/km로 달리는데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천천히 달린다는 기분이 들었고 같이 페이스메이커를 해주시는 송 훈련부장님도 천천히 이 속도로 가자고 하신다.
2~3km 송암 레포츠 타운 근처 언덕도 그리 높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 달렸고 6km 지점도 생각보다 경사가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르막만 생각하면 2022 ktx 평화 마라톤 대회에서 고전해서 걷던 기억이 났다. 이번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는 다른 곳은 몰라도 언덕만큼은 천천히 뛰어도 걷지 않으리라. 그렇게 언덕 훈련을 하고 기초체력 운동으로 플랭크, 스쾃, 런지, 윗몸일으키기를 했는데 걸을 수는 없다.
2022 춘천 마라톤 신연 대교 전- 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신연 대교까지 내리막이라 수월하게 내려갔다. 지나자마자 의암 호수가 오른쪽으로 쫙 펼쳐진다. 단풍이 들긴 했지만 조금 이르긴 하다. 아마 일주일 후가 피크가 될 것 같지만 먼 산을 보면 알록달록 예쁘다. 더 힘들어져서 눈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 덜 힘들 때 눈에 담아보려고 의암 호수와 산자락을 몇 번이나 고운 눈길로 눈에 꼭꼭 담아두었다.
식수대가 나오면 두 모금씩 마시면서 목을 축였다. 10km에서는 에너지 지젤과 물을 마시고 15km까지도 힘든 줄을 모르고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7분 20초대로 잘 가고 있었다.
한복 입은 마라토너
달리다 보니 이렇게 이쁜 한복을 입고 달리는 처자들이 어찌나 이쁜지? 나도 이런 옷 입고 달리고 싶다. 하프 이후에도 만났는데 대단하다. 하프 이후에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더 보태면 무거운 법이거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훈련한 것만큼, 아니면 더 많이 하신 분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페이스대로만 달려야겠다.
2022 춘천 마라톤 자욱한 안개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서 해가 늦게 나려니 했는데 안개가 사라지면서 해가 나온다. 햇빛이 나면 참 달리기가 힘들어서 늦게 나오너라 하면서 속으로 부탁했다. 그다지 생각보다 강하진 않지만 따갑긴 한다. 검정 싱글 넷이라 등이 따습다 못해 뜨겁기 시작한다.
20km 가기 전 강원 애니고 언덕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길지 않다. 언덕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훈련했던 광명 현충사 탑보다도 길이가 짧고 길이가 한눈에 보이니 한 발 한발 천천히 내딛는다.
출발 전 안 00님이 언덕 오를 때 힘을 빼고 오르라는 조언에 명심하며 올랐더니 덜 힘들었다. 앞으로 언덕에서는 무조건 힘 빼자.
하프까지는 박 00 님과 부회장님과 박 00님, 권 00님이 같이 동반 주해 주셔서 식수대에서 직접 물도 가져다주셔서 호강하면서 달렸다. 이렇게 해주시는데 완주 못하면 민망하기 그지없겠다. 막내를 위해서 힘 하나라도 덜어주시려고 하는 마음에 감사하고 감사했다.
#4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하프 지점(21.097km 통과)
하프가 지나고 해는 뜨거워지니 11시 30분이 지난다. 슬슬 힘이 든다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자주 달리던 광명촌 코스를 생각해 본다. 6km 왕복을 2회 24km 한 셈인데 지칠 만도 하다. 24~36km 3회째가 가장 힘들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
오~ 안 돼. 배 아프기 시작하면 못 달려.
훈련할 때 배 아파서 그만둔 날 유튜브와 책에서 배가 아픈 이유를 찾아봤더니 호흡과 페이스 오버 문제가 많았다. 이럴 때는 속도를 줄이고 크게 마시고 내쉬면 좋아진다고 했다. 그래도 아프니 송 훈련부장님에게 걸어야겠다고 하고 걸으면서 팔을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목이 마르다.
25km 식수대를 찾아서 다시 달린다. 이제 눈앞 목표는 식수대다. 10km, 20km에 준비해 간 에너지 겔을 2개 다 먹었다. 30km 자원봉사하시는 클럽 멤버들에게 2개를 더 맡겨두었다.
25km 식수대에서는 주최 측에서 에너지 젤을 주기로 되어 있는데 나처럼 5시간 목표인 사람들은 후반에 오기 때문에 이미 떨어졌다는 것이다.
인원수대로 준비하지 않았냐고, 더군다나 이번 대회 참가비가 높다고 한 마디씩 하는데.
앞서간 사람들이 한 개씩 집지 않고 2~3개 가져가 버리면 후발 주자들이 못 먹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이런. 이건 마라톤 매너가 아니지.
그러나 난 다시 달리기에 집중. 다른 것에 에너지 쏟지 않으리라.
물을 마시고 가장 힘들다던 사상 대교를 향해서 달린다. 조금 달리자마다 햇빛과 에너지 다운으로 다시 걷는다.
그나마 중앙 분리대 그늘로 가자고 훈련부장님이 앞서 달린다. 머리도 못 가리는데 별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다리 부분만 그늘이라도 달릴만하다. 아주 작은 그늘이라도 몸이 느낀다. 천천히 다시 달린다. 오래 걸으면 다시 달리기 힘들다.
2022 춘천 마라톤 1위 엘리트 선수 사상대교 -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사상 대교에서 다시 목이 마르다. 지치니까 자꾸 목이 마르는 거다. 목이 자주 마르면 완주 힘들다는 설도 있다는데 25km에서 다시 5km 가기도 전에 목이 말라서 큰일이다.
앞에 달리는 남자분을 보니 생수병을 들고 달린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로 인해 식수대에서 물 컵 대신 생수병을 놓았다. 작은 생수병이지만 한두 모금 마시고 버려서 물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떤 분들은 무겁게 들고 다니는 분도 있었다. 5km마다 식수대가 있는데 왜 굳이 들고 다니지 하고 의아해했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 물 한 모금 마셔도 될까요?"
" 네, 드세요, 포도당이 들어있는 알약도 있는데 드시면 힘이 나요. 이것도 드세요."
귀인은 물병도 아예 가지라고 주시고, 알 약 두 알을 주셔서 훈련부장님과 하나씩 나눠먹었다.
자꾸 목이 마르니 훈련부장님이 물병을 들고뛰어주셨다. 내가 먹을 물인데 민망해서 다시 내가 들고뛰었다.
훈련부장님은 왜 목이 안 마르지?
그렇지 않아도 몇 달 번부터 계속 물을 하루 2리터씩 마시려고 시도 때도 없이 물을 마셨다. 특히 일주일 전은 더 자주 물을 마시면서 대회 준비를 했건만 역시 목이 마르다.
이상하게도 물 덕분인지, 알약 덕분인지 힘이 다시 난다. 다음 목표는 30km 지점에 있는 광명 마라톤 클럽 자원봉사하시는 분을 만나기 위해 달린다.
춘천댐 바로 직전도 낮은 경사지만 걷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천천히 달리면서 올라갔다. 춘천댐 위에서는 조금 걸어야겠다고 말하고 걸었다.
춘천댐까지 왔으니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덕은 다 넘어왔으나 30km 이상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기 때문에 믿지 않았고 각오를 더 다졌다.
춘천댐을 지나고 뒤를 돌아봤다.
절경이다. 다시 사방의 경치를 눈에 담는다.
달리기만 하면 무슨 재미인교?
#5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30km 지점 통과
내리막길 짧은 오르막길 2개를 넘으니 멀리서 반가운 자원봉사팀이 보인다.
두 팔을 흔들었는데 딴 곳만 보신다.
나중에 물어보니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하셨다. 기록상으로는 빠른 기록이 아닌데 첫 풀코스라 늦게 올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페이스 메이커 해 주신 송 훈련부장님 - 30km 지점 자원봉사팀 사진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듯 반갑다. 가장 힘든 지점에서 한참이나 기다리셨을 텐데 감사했다. 안 00님, 이 00님, 000님이 30 km 지점에서 광명 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음료 주시고, 맡겨 둔 에너지 젤도 주시고, 사진도 멋지게 찍어 주시고 응원까지 주셔서 힘이 난다.
2022 춘천 마라톤 생중계 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완주 후 집에 돌아와서 오늘 생중계된 동영상을 보니 1위 엘리트 선수들이 30km 지점 지날 때 광명 마라톤 자원봉사 세 분이 옆에서 박수를 치고 계셨다. 거기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리시고 마지막 내 사진까지 찍어주시다니. 정말 귀한 사진 감사드려요. ㅠㅠ 다시 코끝이 찡하다. ㅠㅠ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해서 오다가 주최 측 인라인 타면서 파스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는 분들에게 뿌려달라고 했고 광명 팀에서도 준비해 오셔서 다시 뿌린다. 잠깐잠깐 나도 모르게 감사함이 울컥 올라온다
다시 달린다.
36km까지는 훈련했으니 거기까지는 가보자.
자꾸 쥐가 나려고 느낌이 싸하다. 몇 번이고 송 훈련부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가드레일을 붙잡고 다리 한쪽씩 뒤로 뻗는다.
무리하지 말고 내 몸에 집중하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길에서는 쥐가 나서 스프레이를 뿌리고 서로 풀어주는 사람,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을 5~6명 이상 봤다. 쥐가 나면 쉽게 풀리지 않고 통증이 대단하다. 다시 달리기도 힘들다. 이날 클럽에서는 나중에 들어보니 회장님과 총무님이 쥐가 났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비를 넘기고 잘 완주하셨다.
지금도 천천히 달리고 있고 힘든데 쥐까지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꾸 스트레칭을 한다. 무릎도 무리가 갔는지 점점 더 고통스럽다. 내 몸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겠다.
30kn에서 자원봉사하신 클럽 팀 세 분이 짐을 들고 합류하셨다. 마지막 12km를 네 분이 같이 달려주시니 든든하다. 12km 지만 가방을 메고 달리기엔 쉽지 않다. 훈련해 보면 5km든 10km든 힘들다.
다 왔다고 구르기만 해도 완주라는 구라를 치신다.
두 바퀴 구르고 끝내고 싶다.
선배님들이고 고수님들이라 꼬박꼬박 대답했더니 이 00님이 대답하지 말고 달리라고 하신다. 옆에서 하는 말에 대답할 힘은 없었지만 다 들리고 힘이 되었다. 그 말씀도 감사했다. 왜 이렇게 감사한 일 투성이인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6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처음 지나는 37km 지점 통과
35km가 지나니 한계가 온다. 36km까지 달려봤으니 이제 난생처음 37km, 나의 한계를 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한계의 순간이 아니라 고통의 한계 순간이었다.
왼쪽 무릎이 아프지만 멈출 수 없다. 모두가 완벽한 조건에서 완주하는 사람이 몇 명 있으랴.
몸의 심각한 부상이 아니니 달려야 한다. 아프다고 멈추는 순간 걸어야 한다. 점점 걷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청년들도 많이 걷는다. 그만큼 페이스 조절, 훈련, 몸의 상태가 좋아야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나는 최적의 상황이다.
평상시 어깨가 아프지만 달릴 만하고 클럽에서 이렇게 훈련하고 도와주시는데 못 달릴 이유가 없다.
소양 2교를 지난다. 비가 왔었나 보다. 아스팔트가 젖어 있어서 해가 비치니 눈이 부셔서 바닥만 보는 내겐 거슬린다. 7월 사전 답사하면서 마지막 7km를 달려본 경험이 있어서 익숙한 거리다.
모르는 길인 경우에 더 힘들게 달린다. 아는 길인 경우는 가늠할 수가 있어서 각오를 하고 에너지 분배를 하기 때문에 덜 힘들다. 사전답사 한 코스라서 머릿속에 코스가 그려져 있어서 덜 두렵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고 시간도 안 가는 느낌이다.
옆에서는 하나 둘하나 둘 안 00님이 외쳐 주셔서 발을 맞추고 집중한다.
#7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처음 지나는 40km 지점 통과
"몇 km 남았어요? "
"2km 남았어요."
안 00님이 알려 주신다.
2km 가늠도 못한 내가 이젠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짐작이 간다. 속도를 내어 보지만 다시 제자리인 느낌이다.
욕심 내지 말고 이대로만 달리자.
왼쪽 무릎이 내디딜 때마다 아프다.
통증과 괴로움이라는 경계선에서 어른은 아이와 구분된다.
-마라토너 자토펙-
이 말을 되새기며 또 달린다.
2차 광명 마라톤 클럼 멤버 합류
마지막 1km 지점에 항상 마지막 스퍼트에 소 몰듯이 몰아치는 이 00님이 풀코스 완주하고 마중 나와 주셨다. 황 00님, 이 00님, 전태수 님도 같이 오셨다. 막내를 응원 에너지로 등을 밀어주신다.
내가 뭐가 두렵겠는가?
든든한 광명 마라톤클럽이 있는데.
쓰러져도 들고 finish line까지 둘러업고 가실 분들이다.
이 00님의 으쌰 으쌰 목소리가 도로 가득 퍼진다. 평상 시라면 시끄러울 목소리가 이리도 힘이 난다. 도로에 있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쳐다본다.
도로에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식수대마다 학생들의 응원 목소리가 그리도 예뻐 보였다. 교통 통제로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 교통경찰관들... 나를 완주하라고 모두 애써주시니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20km까지 클럽 들어오기 전에 혼자 뛰어봤으니까 그 막막함과 지루함과 외로움과 불편함을 아니 더 감사하게 된다.
도착점에선 어디까지 왔냐고 자원봉사팀과 전화로 워키토키 한다. 목 빠지게 기다리실 생각에 빨리 달리고 싶다. 사진 몇 컷 찍기 위해 우리 클럽인가 하고 눈에 레이다를 켜고 기다리실 텐데.
도착점이 멀리서 보인다.
#7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마지막 200m 지점
200m 지점 슬슬 속도를 높인다. 빨리 끝내고 싶다.
무릎 통증도 잊고 내달린다.
소몰이 스퍼트 하시는 이 00님이 외치시는데 다 들리고 몸도 그에 맞게 맞춘다.
"보폭 넓게~"
"팔 더 힘차게~"
마지막 도착 전 스퍼터 같이 해주시는 가방 멘 클럽 전사들
보폭을 더 넓게 하고 힘차게 앞뒤로 팔 치기 한다.
끝이 보인다. 고통의 끝이, 완주의 끝이, 1년간 목표인 풀코스 완주의 끝이 보인다.
#7 2022 춘천 마라톤 대회 마지막 42.195 완주
5시간 34분 24초
완주 지점
헉헉대며 도착했다. 미리 도착하신 송 훈련부장님이 수고했다며 악수를 해주셨다. 여기저기서 감사하게도 사진을 찍어주셨다. 사진 찍어주신 나 00님, 정 00님 감사드려요.
큰절이라도 하며 페이스 메이크를 해주신 송 훈련부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너무 목이 마르고 무릎이 아프다.
완주 후 기진맥진
완주하고 나니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절뚝설 뚝 왼쪽,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포토 월에서 찍은 완주 후 사진
목마르다고 하니 이 00님이 물을 가져다주셨고 메달 받으러 같이 가주시고 포토월에서 사진도 찍어주셨다.
멀리서 보니 캠프는 이미 철수했고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모두 수고하셨다며 박수를 쳐주셨다.
300회 완주하신 김 00 님도, 완주하신 분들과 자원봉사하신 분들 모두 악수하며 축하해 주셨다.
고통의 순간을 지나니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완주 후 모여 사진을 찍으러 이동한다.
광명 마라톤 클럽 단체 사진
못 걸으니 멀리 가지 말자고 하면서 근처에서 찍었다.
버스 계단이 이리 높을 줄이야. 버스 벽을 잡고 겨우 오른다. 이걸 바로 영광의 상처라고 부르겠지. 가는 내내 무릎을 접을 수도 펼 수도 없다.
완주 후 축하
완주 후 춘천 닭갈비 식당에서 300회 완주하신 김 00님의 축하와 완주하신 분들, 봉사해 주신 분들의 감사의 시간이 있었다. 막내라고 꽃다발 드릴 영광을 주셨다.
300:1 = 풀코스 300회 완주 : 1회 완주
풀코스 300회 완주하신 김 00님이 첫 풀코스 완주한 저에게 영광스러운 축하의 맥주를 주신다.
저도 축하주를 영광스럽게 드리며 축하의 말씀을 전했다.
조직적으로 도움으로 주신 광명 마라톤 클럽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어디서나 큰 격려, 응원, 조언, 자원봉사 덕분에 제가 그 어려운 2022 춘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풀코스 혼자 달렸으면 쉽게 잊힌다. 그러나 같이 달렸으면 평생 기억날 것이다.
에이스인 김 00님, 홍 00님, 저와 같이 풀코스 처음 달리신 서 00님 같이 참여하신 분들, 자원봉사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