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상태를 응시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박유천 사건으로 여자 친구들과 많은 일이 있었다. 5년동안 웃음꽃이 피던 단톡방이 처음으로 살얼음판이 되었고, 2년 전에 내가 했던 발언에 대한 비난도 받았으며, 1년 전 내가 친구에게 건낸 위로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상처가 되는 말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고 사과했다.
"몸 파는 년이 무슨 성폭행이고 ..." 라는 말들. 그것이 평소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던 내 주위 여자 친구들의 입에서 나올 때의 슬픔. 여성 안에 내재된 창녀 혐오 사상은 어떤 설득의 말로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성매매 여성의 취약한 노동환경을 사무직 노동에 대입해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런 말은 사무직 친구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었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나 역시 횡설수설하긴 마찬가지였다. 여성주의 내에서도 성매매는 노동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 부터 갈리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어서 늘 미뤄뒀기 때문이다. 사무직 친구는 내가 과거에 이런 말도 했다고 했다. "성매매 ... 뭐 남자라면 많이들 한다던데 ... 내 남자친구만 안하면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성매매 남성을 싸고 도는 애가 무슨 성매매 여성 인권타령이냐 했다. 나는 더 생각해보겠다 했고 계속 생각하고 찾아봤다. 성 구매 남성만 강력처벌 하는 외국의 법안들이 왜 생겼는지 기사를 보고서야 조금씩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첨부기사) 그 말을 정정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불현듯 내가 작년에 친구에게 엄청난 잘못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1년 전, 친구가 믿었던 남성에게서 성폭행 당할 뻔한 상황을 얘기해주며 괴로워 할 때 , 난 위로랍시고 이런 말을 했었다. "애초에 그 남자앨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했어 ..." 성폭행을 당할 뻔한 순간에도 원인은 결국 피해여성에게 있다는 말을 피해여성인 내 친구에게 했던 것이다. 부부끼리도 억지로 하면 강간이고, 그 공간이 모텔이든 / 자취방이든 / 룸살롱이든, 강제적 성관계는 성폭행이라는 것을, 작년만 해도 나는 머리론 알면서도 마음으론 100%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 '여자가 조신했어야지' 하는 대한민국에서 26년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겟는 분이 있다면 ... 아래 영상을 보고 미개함을 떨쳐 내시길)
다시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땐 정말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했다. '다시 한 번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2차,3차,4차 피해자가 나오니 자연스레 여론이 바뀌었다. 한 친구는 몇일 전 본인이 했던 말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앞으로 그런 말 하지 않겠다고, 이번기회에 다시 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러겠다고, 내 의견만 고집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작년에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올해들어 문제가 되고, 3일전 했던 말에도 괴로워지는, 정말 본격적으로 '안 다는 것이 상처받는' 시대가 왔다.
영화평론가 듀나가 말했듯이 우리는 '사고'와 '언어'에 계속 '긴장감'을 주어야 한다.
혼돈 속에 있는 우리들이 지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