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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Nov 14. 2023

미래를 아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에게 벌어질 일

 과거에 쓴 메모를 우연히 보았다. 

 ‘너무 맛있었다. 슈퍼 파파스 피자.’

 몇 년 전, 배달 어플에서 피자를 시키고 쓴 리뷰였다. 오늘 먹은 짜장면이 맛있어서, 후기를 남기려 들어갔다 발견했는데 짧은 문장에 계속 눈이 갔다. 

 ‘너무 맛있었다. 슈퍼 파파스 피자’ 

 기분이 이상했다. 엄청 맛있었나 보네. 

 이제 나는 피자보다 더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과는 멀어졌는데. 그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딱히 한 단어로 표현 못할 마음이었는데 박준의 산문집에서 본 일화가 생각났다.

 

 '몇 해 전 누나를 사고로 잃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살던 오피스텔을 쫓기듯이 며칠 만에 서둘러 정리했다. 하지만 단 하나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받은 편지였다.'

 운동화 상자 몇 개엔 그녀가 평생 받은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보았다. 한참을 읽다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눈물이 났었는데 여고시절, 그녀가 친구에게 쓴 쪽지였다.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 1998년도 가을의 일이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나는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그것으로 편지 훔쳐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비슷한 일일 수가 없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그리움을 느끼는 걸까. 이게 다 오늘 본 2000년도 인기가요 스트리밍 때문이다. SBS가 유튜브 채널로 2000년도 인기가요를 스트리밍 해주기 시작했는데 동시접속자가 만 명이 넘었다. 힐끗 보니 량현량하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학! 학! 학! 학! 학교를 안 갔어~’ 


 댓글 창엔 ‘여기가 온라인 탑골공원인가요?’부터 ‘와, 트와이스 15년 선배님들이다. 그런데 이거 아동학대 아님?’까지. 그 시절을 추억하는 밀레니얼들이 모여 보고 있었다. 이 얼마나 괴이한 풍경인가. TV는 아무도 안 보면서, 19년 전에 TV에서 했던 프로를 인간들이 실시간으로 보다니. 89년생인 나와 반말하고 지내는 92년생 친구는 이 순간만큼은 극심한 세대차를 느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좋아한다면서 ’Day by Day’를 왜 몰라? 데뷔곡인데. 이소은의 <서방님>도 모른다고?”


 2000년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인생에서 엠넷와 KMTV를 제일 많이 보던 시절이었다. 반면 친구는 2학년. 아직 투니버스를 볼 나이였다. 


 “언니, S#ARP에 저 사람은 누구야?”

 “원년 멤버인… 듯?”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은 아는데… for you? 이 노래는 뭐지?”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근데 왜 따라 불러?”

 “…?”


 몸이 기억하는 그 시절 음악들. 결국 우리는 조성모의 <아시나요>로 타협하고 마저 보는데 클론이 등장했다. 지금과 똑같이 생긴 구준엽과 무대를 날아다니는 강원래였다.

 “헐, 저 사람 사고 나기 전이야.”

 지금은 휠체어에 있는 모습이 더 익숙한 세기말 춤신춤왕 강원래. 영상은 사고 난 시점으로부터 5개월 전, 클론이 <초련>으로 1위 후보를 하며 아시아 첫 한류스타로 발돋움하던 때였다. 


 ‘2000년 11월 9일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던 도중 현재의 신논현역 사거리를 좌회전하는 과정에서 불법 유턴한 차량과 충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 때문에 강원래가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클론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의 하반신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됨과 동시에 댄스 가수 활동 역시 불가능하게 되자 클론은 끝내 해체했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을 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미래를 다 아는 사람이 보는 과거란 이런 느낌일까? 마치 내가 아름답고 참혹한 현장에 나와 있는 기자처럼 느껴졌다. 


 ‘네, <신혼일기> 촬영장에 나와 있는 정성은 리포터, 그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현재 기쁨이 최고조에 있습니다. 사랑 중입니다.’

 

 그리고 몇년 뒤, 그들은 서로의 문자 내역을 폭로하며 헤어졌다.

 아직까지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못한 건, 미래는 모른 체 받아들이는 게 더 나아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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