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제품 중 하나다. 사용법도 쉽고 단순해서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그래서 계산기의 기능과 형태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안으로 옮겨왔어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평소에는 필요한 계산이 끝나면 곧바로 앱을 닫고 다른 동작을 실행해서 주의 깊게 볼 일이 없었으나, 문득 아이폰 계산기 앱을 담당한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디자인을 했을지 궁금했다.
이것저것 눌러보며 관찰한 결과, 아이폰 계산기만의 독특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아이폰은 부호 키(+.-)를 입력하면 입력창에 표시되지 않는다.
대다수 계산기 앱은 부호 키를 입력했을 때 입력창에 표시가 된다. 사용자가 입력한 부호를 즉시 보여주는 것은 계산기 인터페이스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폰 앱은 부호를 표시하지 않고 오직 연산과정의 결과값만 보여준다. 이는 아날로그 계산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헷갈릴 수 있다. 대신 버튼이 눌러지는 듯한 VI(visual interaction) 효과를 제공해서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오직 부호 키가 눌려지는 순간에만 연속적인 움직임을 준다. 그 외엔 어떠한 인터렉션 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인터페이스 전체에 비슷한 효과가 적용되어 있었다면, 지금처럼 버튼이 선명하게 주목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필요한 곳에서만 효과를 넣는 절제미가 돋보인다.
두 번째는 GUI design(graphic user interface)의 세심함이다.
0은 다른 숫자에 비해 사용빈도가 높다. 담당자는 이러한 사용성을 고려해서 제일 하단 모서리 두 칸에 '0'버튼을 배치한듯 보인다. 패널을 두르고 있는 경계선은 2px(내부 구분선은 1px)을 사용해 패널 전체의 가시성을 높였다. 자주 쓰는 부호에는 채도가 높은 색을 사용해 가시성을 높였고(디터람스가 디자인한 계산기에서 색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숫자와 부호의 조형성을 고려해서 크기를 조절하고 정렬했다. 그 외엔 어떤 부수적인 효과나 스타일도 적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구성으로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는 디자인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이폰 계산기는 구성을 최소화해서 기존 기능을 대체하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했다.
구글과 삼성 계산기를 보면 Delete 버튼이 화면 우측 중앙에 놓여있는데 아이폰은 없다. 대신 상단에 입력된 숫자를 좌우로 드래그하면 뒷자리 숫자부터 하나씩 지워지도록 설계했다. 이는 자칫하면 사람들이 삭제 버튼을 찾는데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이 기능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부연설명 없이 사람의 동작에 기능을 부여한 과감함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봤을 때, 아이폰 계산기는 아날로그 시대의 단순성과 디지털 시대의 편의성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애플은 아날로그 시대의 인터페이스 방식을 좋아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급격하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복잡하고 낯선 기계들에 지쳐갔다. 애플은 아날로그 시대의 단순한 감수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정서적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에 자사의 제품이 차갑고 어려운 기계가 아닌, 누구에게나 쉽고 편리한 손발이 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사람을 향한 디자인'을 주창하던 잡스의 외침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에는 '예술적'이라고 부르는 활동들이 있다.
예술과 비예술 사이에 정량화된 기준이 없듯이 사소한 행동에도 예술의 요소가 들어있고 고상한 목표에도 개인적인 관심사가 반영된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더 적게’ 말하는 작품이므로 아이폰 계산기에 담긴 '단순함'은 어느 예술작품보다 더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