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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준 Jan 19. 2016

나는 왜 디자인을 하는가


어떤 모임에서든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이다.

그리고 답변에 따라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을지,  외면 받을지가 결정된다. 낯선 사람의 호의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내 명함에 적힌 나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명함을 가지고 싶었다.

TV에 나오는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삶을 보면서 '나도 앞으로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라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한 일념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하루빨리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좋아 보이는 것들을 무작정 좇아갔다. 내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

돈이 없을 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여행도 다니고 사고 싶었던 것들도 샀다. 부모님께 괜찮은 선물도 사드렸다. 순식간에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보며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진 돈은 걱정거리가 되고, 소비에 따른 심리적 보상은 적어지며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충분히 성공하지 못해서, 돈을 더 벌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만 믿고 조금만 더 성공하면 이 모든 게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거나 전국의 소문난 음식점들을 돌아다녀 봐도 금세 흥미가 시들해졌다. 오히려 모든 일에서 물질적인 보상만을, 갈수록 더 큰 보상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런 회의감에 사로잡혀 방황하다가 결국 처음 내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나는 왜 디자인을 하는가.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직업이 있는데 난 왜 하필 디자인을 선택한 것일까.

단지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어쩌다 보니 배운 게 디자인이라서? 디자이너의 삶을 동경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돌이켜보면 나는 디자인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고민이 어색하고 골치 아플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삶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문제를 등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술 마실 때였을까, 소모임 공연 준비를 위해 전날까지 들뜬 마음에 합주하던 시간이었을까.


지난날의 추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결국 친구들과 디자인을 하며 웃고 떠들던 그 모든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허름한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노트북을 붙들고 밤새도록 과제와 씨름하며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작업이 느슨해지면 카페로 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해주던 나날들이 있었다. 당시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의 연속이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현재의 즐거움은 없었던 것이다.

행복은 언제나 내 뒤에만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다 지나가버리고 나서야 뒤늦게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미 디터 람스나 하라 켄야보다 많은 툴을 다룰 수 있고 그들보다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들을 배웠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디자인을 얼마나 많이, 다양하게 배웠는가 보다는 내 삶에서 디자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미래가 가져다줄 것에 대해 너무 자주 우려한다. 현재를 즐기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은 현재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번번이 우리는 현재를 과거나 미래에 예속시킨다.


제레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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