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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Nov 05. 2021

밤 9시 46분

거리두기를 통한 일상의 미니멀리즘

해가 3년이 바뀐 뒤에야 오랜만에 혼자 밤외출을 나섰다.

오늘의 장소는 집 근처 피맥집. 맛있는 피자와 향긋한 내음이 올라오는 페일에일.


이 순간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입버릇처럼 출산하면 맛있는 피자에 맥주를 먹겠노라 장담했는데 그것이 3년이나 걸렸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중에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고 나니 순간이동 한 듯 시간이 지나버렸다. 


나는 일찍 퇴근한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 나갔다. 



해.방.감

이 시간에 나 혼자, 그것도 술을 마시러 가다니!

알게모르게 피어오르는 이 짜릿함.    

  

오늘의 피맥 메이트는 회사 동료였다가 다른 곳으로 이직한 지인이다.

나보다 나이는 3살 어리지만, 품성이 밝고 긍정적인 이 친구는 허물없이,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운 동생이다. 평생 깃털처럼, 가볍고 슬릿하게 살아갈 거 같은 멋쟁이 동생이었는대 결혼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함께 전했다.

나는 그녀에게 광화문 집시가 결혼한다며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다.

언제나 홀연히 떠났다가, 뒤돌아보면 나타난 그녀였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소식에 반가운 마음만큼 놀라움도 컸다.     

문득, 우리가 함께했던 어느 밤이 생각났다.

서촌 어느 술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쏘다녔던 그 날 밤.

모르는 이들과도 친구가 되어 웃고 떠들고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다음날 숙취로 아침잠을 깼던 그 주말밤을 기억한다.

즐거움이 있는 저녁 자리에 그녀가 등장했었는데, 어느덧 인생의 단짝을 만나 행복하다는 소회를 전하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 친구와 나는 출산 전 마지막 만남 뒤,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인 오늘에 다시 만난 날이었다. 

우리는 그간의 소식을 다 전하며 살진 못했지만, 각자의 궤도를 따라 스스로 충만한 시간을 살아왔다는 것을 안다.반갑고 고마웠던 동생과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46분.


집에 있으면 벌써 아이들을 재우다 잠이 들었을 시간인데, 3년 만에 밖에서 바라본 밤 풍경은 너무나도 이국적이었다. 술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진 사람들이 한 대모여 술을 마시고 떠들고, 고깃집 아주머니는 길가 옆에서 철판과 솥을 닦고 계신다. 생경함이 느껴진다.     

이런 밤 품경을 마주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저마다 사람들은 테이블을 채우고 둘러앉아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를 나눈다.          

11월부터 위드코로나를 시행한다더니, 다들 어딘가 감금되어 있다가 풀려나온 사람들처럼 속박 없음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나는 그간 코로나 시대에서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일상의 불균형이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들과 우리 가족들만이 보내는 시간, 멀리 외출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하고 놀이터를 가는 일상, 가끔 차를 타고 집에서 멀지않은 마트를 가는 일상.

회식이 사라져서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는 신랑 덕에 아이들은 아빠에게 매달려 아빠냄새를 실컷 맡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거리 두기 4단계를 적극적으로 선호했던 것 같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로 만나지 않아도 되고, 모든 일상이 간결하게 압축되어 꼭 필요한 것만을 영위하는 지금이 편하다.

이미 시작된 뉴노멀의 시대가 어쩌면 나에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단절되었지만 랜선을 통해 연결된 일상, 사람들과 만나지만 나에게 필수 불가결한 사람들과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형성해 나가는 인간군상, 나를 위한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익숙하다.


오히려 거리 두기를 통해 관계도, 삶도, 이제야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실천하는 듯 하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환경에 나도, 주변의 사람들도 어느새 적응을 마친 듯 하다.     

나는 일상의 균열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가고 사람들은 적응하는 것을 보니, 일상의 연속성을 위협받을 일은 없겠다 생각했다.     


다만 바라는 것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동트기전 새벽과 오전 어느 중간즈음 푸르스름한 시간에 이슬이 맺힌 풀 내음을 맡으며 걷고 싶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경외감, 따뜻한 라떼를 손에 든 코지함을 느끼고 싶다.

우리 아이들에겐 봄에는 벚꽃 향을, 여름엔 달큰한 아카시아 향을, 가을엔 서늘한 바람 냄새를, 겨울엔 차갑지만 포근한 눈 내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다시 시계를 보니 10시 3분이다.

어서 집으로 가서 잠든 아이들 이불을 덮어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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