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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느낌

근하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그사이

한 해 동안 전해주신 따뜻한 마음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가내 모두 무탈하시고,
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5년 을사년 새해.
그사이 올림.


섣달 그믐날에 내린 눈으로 집 앞의 산이 하얗게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마치 예전에 선생님께 보내던 연하장의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연하장은 먹으로 그린듯한 눈 내린 산 옆으로 멋진 글씨체로 근하신년(謹賀新年) 이라고 씌어있는 것을 골랐다.


손글씨를 써서 카드를 보내는 일이 일 년 중 마지막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연말연시엔 평소보다 배달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국내는 최소한 열흘 전에 보내고,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3주 전에는 보내어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원하는 날짜에 도착하도록 신경을 썼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카드를 고르는 일도 아주 신중했다.

써야 할 문구를 고민하여 노트에 글씨체를 연습하고, 본 카드에 옮겨 적을 때면 긴장이 되기도 했다.

주로 친구들에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어른들께는 신년인사 카드를 보내었다.

오래 된 수첩을 뒤적여 주소를 찾아 조금 굵게 써지는 펜으로 봉투에 적고, 일찌감치 구입해 두었던 크리스마스 씰을 우표옆에 예쁘게 붙여 마무리를 한다.


우리 집에선 지인들로 부터 오는 카드들을 거실 탁자의 한 코너를 비우고 12월과 1월 동안 전시회처럼 두었다. 허전하던 탁자가 가득 들어차는 설이 지나면 깨끗한 상자에 담아 정성스러운 마음을 보관했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카드는 사랑하는 나의 첫 조카로부터 받은 고운 한복모양의 카드였고, 고이고이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


내가 보낸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연말이 다가 오면 카드를 보내려다가 혹시 봉투안에 글 말고 다른 것을 기대할까 아니면 부담을 느낄까 여러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가 그만둔다.

손에서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카드를 주고받는 일은 흔지않는 일이 되었다.

어느 날, 온라인으로 카드를 보내기 시작하더니 그나마도 카톡의 이모티콘으로 세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 분 한 분과의 인연과 지나온 한 해 동안의 일을 생각한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수첩에는 누적된 된 인연들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함께 적어두었다.

줄을 그어 지우고 갱신한 흔적이 많은 만큼 관계도 깊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그간에 바뀐 주소를 몰라 소중한 분께 닿지 못하고 반송되어 온 카드를 받아들게 되면 나의 무심했던 마음을 탓하기도 했다.

연말연시에 카드를 보내고 받는 모든 과정은 정성이며 진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하얗게 눈 덮인 산을 보며 이젠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적 마음의 표현이 그리워진다.





근하신년 (謹賀新年)

명사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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