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세 번째 해를 시작하며
"그거 있잖아. 내가 전에 준다고 했던 거. 그거 보내줄게."
이틀 후 작은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 뽁뽁이와 테이프로 감싸진 그것이 나타났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기에 살금살금 조심히 포장을 뜯는다. 뚜껑을 열면 점점 작아지며 계속 나오는 러시안 인형처럼 포장을 뜯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 30분쯤 걸렸다. 드디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봄이면 꽃이 핀다는 키우던 다육이와 곧 뿌리와 싹이 나올 것 같은 아보카도 씨앗, 고운 흙 한 줌 그리고 조카가 보내준 요즘 유행하는 시장가방이 들어있다. 수만 겹인 포장에서 언니의 애정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날이 추운데 얼었으면 어쩌나."
시계를 보니 소음을 내기엔 늦은 시간이다. 일단 안전을 확인했으니 다음날 분갈이를 해주기로 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잔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조심히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식물은 실처럼 가는가 많은 잔뿌리가 뭉쳐 굵은 뿌리를 보호한다. 수많은 작은 일개미처럼. 땅속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고 잎과 꽃이 되는 기적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잔뿌리의 힘이다. 다육 뿌리와 함께 기억 속 여린 잔뿌리도 드러난다.
언니.
엄밀히 말하면 이종 사촌언니.
내가 울 때 언제나 달려와준 언니.
네 살 위 친오빠, 세 살 위 사촌언니, 동갑의 사촌까지 함께 우린 한 초등학교에 다녔다. 나는 잘 울었고 잘 체하기도 했다. 울면서 양호실에 누워있으면 선생님은 친오빠가 아닌 사촌언니를 호출했다. 나이가 더 많지만 활동적이며 노는 게 좋은 개구쟁이 남학생의 학교생활은 늘 바빴다. 오빠의 담임 선생님은 종만 울리면 오빠가 문이 아닌 창문을 넘어 나간다고 했다. 그러니 선생님은 내 보호자로 정적이고 온화한 언니를 점찍은 거다. 언니를 보면 나는 이내 진정이 되었다.
부를 때마다 기꺼이 와서 손을 잡아준 것이 단지 성향이 다르거나 성별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동생과 사촌동생까지 신경 써야 했던 언니의 어린 시절이 고달팠을 것 같다.
한없이 착하고 따뜻한 성정을 가진 언니가 중학교에 진학한 봄은 매우 춥게 느껴졌다.
그 봄 이후 점점 거리가 멀어지다가 삶의 중간에는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지냈다.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준 엄마와 이모가 모두 돌아가신 후 흰머리가 성성해진 우리는 추억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며 서로 애틋해지고 있다.
못 닿을 이억만 리 거리는 아니지만 여전히 도시의 양 끝에 사니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쯤 만나 아주 기분 좋은 데이트를 한다. 언니는 언제나 맛있는 밥을 사주고, 좋은 구경도 시켜준다. 지난가을엔 광화문에서 만나 서점에서 만났다.
"우리 이거 찍자. 서점에 나올 때 한 번씩 찍으면 재밌어."
한 장을 찍고 뒷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장을 더 찍었다.
“너 하나, 나 하나. 이게 네가 더 예쁘게 나왔다."
멀리 살아 자주 못 보아도 어디가 아픈지 잘 아는 언니를 만나고 나면 체한 속이 편해지던 양호실에 다녀온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지난가을이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남았다.
흙속에 누워있던 다육이를 뿌리가 다칠세라 유물 발굴하듯 파내어 다시 심고 한 줌의 흙으로 덮어주었다. 아보카도 씨앗은 좀 더 물에서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씨앗에 이쑤시개 세 개를 꽂아 물꽂이를 했다. 그리고 순하게 안정기를 보낼 자리를 잡아주었다.
화분에 안착한 다육이 사진 찍고 보니 어찌나 귀여운지 얼른 언니에게 사진을 보냈다.
사진 아래에 "이모네 집에 오느라 고생했네."라고 썼다. 대화가 이어지다가
"어머! 너 오늘 생일이잖아. 미역국은 먹었니? 참, 그것도 모르고."
“제일 좋은 맞춤 선물이 딱 도착했는걸. 뭣이 중헌디~“
"가까이 살면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면 좋으련만."
"언니는 이미 충분히 주고 계십니다요~"
"오늘 무말랭이를 무쳤는데 아주 맛있게 됐어. 난 이럴 때 언니에게 후딱 한 그릇 가져다주고 싶더라."
이런저런 정다운 대화를 나누다가 이모티콘들이 춤을 추고, 마무리 인사를 하던 그때 언니가
너의 글에는 온도가 있어.
따뜻한 온도
뭉클한다. 한동안 댓글을 쓰지 못했다.
온도.. 내가 원하는 글은 따뜻한 온도였지.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한 겨울에도 좀처럼 장갑을 끼지 않을 정도로 나의 손은 엄마를 닮아 뜨끈한 편이다.
나이가 드니 순환 문제인지 간혹 손끝이 차가워지지만 언제나 온기를 전해주는 언니처럼 따뜻한 온도를 전하고 싶다. 뜨끈한 손으로 따뜻한 밥을 짓듯 글을 짓는 것이 쓰는 이유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언니와 나누는 글은 퇴고를 거치는 글이 아니고, 수다와 소통을 위한 글인데 어떻게 그렇게 느꼈는지 신기하다. 형만 한 아우는 없다더니 역시 언니는 영원한 언니다.
무한 내 편의 말인 것을 알면서도 글에 대한 칭찬에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며 좋다. 한 조각의 기쁨을 품고 또 하루를 살고 한 편의 글을 쓴다.
브런치 작가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높디높은 고지였던 브런치에 입성한 지 어느덧 두 해가 흘렀다.
특별한 준비 없이 매해 초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지원을 하여 3년 만에 삼수에 성공했다. 어쩌면 성공 비법은 지원서 작성 기술이 늘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 번째 지원서에 쓴 맛있는 글은 맛이 아니라 온도였다. 누군가 내 글에서 느낄 따스한 온기가 의미인 걸 잊어가고 있었다.
고지에 입성 후 마음속에 출판사에서 보석을 찾듯이 나를 찾아줄 거라고 응큼한 야욕이 생기고 말았다. 무엇이 된 양 밤을 새워 쓰고 매일매일 발행을 하고, 연말의 공모전도 응모를 했으나 결과는 언제나 실망이었다.
'첫 해에 척 붙었어야 하는데 또 늦었네. 탈퇴할까?'
매사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렇지만 대체 쓰는 일에는 뭐가 늦었다는 거지?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 책을 내는 것이.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설마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
아, 마지막건 애당초 글렀다는 건 잘 안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했던 허황된 초등학생의 꿈처럼 말이다. 실상은 광화문서점 글판에 붙을 글귀를 계절마다 응모를 해도 매번 꽝인 처지이고, 여전히 부족한지 크리에이터 연둣빛 배지를 달지 못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연두색인데 브런치에서 연둣빛은 심한 좌절감을 들게 만든다. 반성과 자책을 하더니 글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몰려들어 일기 한 줄이 써지지 않았다. 마음의 소리가 주책없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사이 너. 뭘 뭘 뭘.
뭘 쓰고 있는 거니? 뭘 바라고 쓰는 거니? 계속 쓰면서 뭘 자꾸 묻는 거니?
넌 여전히 쓴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구나. 아무래도 갈 길이 멀고 먼 것 같으니 그만둬라!
무쓸모 생각의 늪에 잠겨있던 그날도 여러 작가님의 많은 글을 읽으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의 문장을 만나게 됐다.
“쟤는 아직도 쓰고 있네.”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내게 작가라고 불리는 호사를 누리도록 해주었다. 그사이라는 필명에 맞게 아직도 그래도 쓰며 사는 이 된 거면 된 거다. 그만두지 않고 오늘도 용기를 내어 쓰고 있으니 브런치 작가가 된 2주년의 의미는 충분하다.
이 글을 쓰다 말고 현재 구독자가 몇 분이신가 확인한다. 481 팔로워.
(구독자라는 단어가 언제 팔로워가 되었을까?)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작년 말쯤 숫자를 확인했을 때 487이었다. 2주년 안에 500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게으름 부리던 사이에 500은커녕 곧 470번대로 내려가게 생겼다. 사실 지인 두 명 포함이니 이미 내려간 것과 다름없다.
두 명. 첫 발행을 하고 내겐 두 명이면 충분하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첫 마음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라이킷 10을 돌파했다"는 도파민 터지는 짜릿한 말은 나를 앞만 보고 달리는 말이 되게 했다. 매일 글을 쓰고, 어느 날은 하루에 여러 개의 글을 썼다. 여기저기 공모전을 기웃거리고 미완성의 글들을 허공으로 날렸다. 급기야 글이 고갈됐다고 생각했다. 지난 생활을 돌아보니 1년 차에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목표도 모른 채 도달하려고만 했고, 2년 차도 마찬가지였다. 불현듯 나타난 거대한 우주를 만나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있는 별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3년 차를 시작한다. 미친 듯 달리다 진이 빠져 천천히 걷기로 한다.
'걷는 말은 필요 없어진 걸까?' 갑자기 눈 옆의 가림막이 거둬진다.
가림막이 없어지니 허전하지만 주변이 넓고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 천천히 걷다 보니 작은 들풀이 어제보다 조금 자라고, 머리에 빵부스러기를 이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가 보인다.
노트북 너머 창문을 너머에 놓인 4차선 도로의 건너편 인도에 저 남자는 어디로 바삐 뛰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의 목적이 나쁜 일은 아니면 좋겠다.
4차선 도로 보다 더 멀리 8차선 도로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1톤 트럭과 검은 차, 흰 차들은 어디로 무엇을 싣고 달려가는 건가?
8차선 도로 보다 더 먼 도시고속도로는 곧 아주 긴 터널이 나타나고 차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 터널을 지날 때 속도를 늦추고 조심해야 하는 걸 알면서 나는 속력을 높이게 된다.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서.
앗! 갑자기 창문 앞으로 까마귀가 날아간다. 새가 이렇게 높이도 나는구나. 날개의 깃털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까마귀와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창문에 부딪치지 않은 건 다행이야.
시시각각 똑같은 적이 없던 일이 시원해진 시야에 펼쳐진다.
가림막으로 눈을 가려 옆을 보지 못했을 뿐 글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멀리서 온 언니의 하트가 도착해서인가 어린 나로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넓은 세상을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올해는 병오년 말의 해라 한다. 나는 천천히 걷는 말이 되기로 한다. 놀멍 쉬멍 걸으멍.
마침 읽고 있는 책에서도 깜깜한 밤길을 비춰주는 하얀 달빛 같은 희망을 본다.
부드럽게 사뿐히 수면에 내려앉은 라인처럼, 은유하자면 네 박자 리듬의 글쓰기이고 그건 어쩔 수 없는 희망이다. 같은 밀도의 이야기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과장하지 않고 진솔할 수 있기를. 그저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p.180 -
모양이 변해 조금 더 동그래졌기를 바라지만
마음만은 그저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브런치 생활 세 번째 해를 맞이하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P.S.1
저기... 여섯 분은 어디로 가셨나요?
어린 날에 따뜻한 언니가 있어 안심이 되었듯이..
"제가 여러분의 무한 내편인 사촌언니가 되어드릴 테니 돌아오셔요. 제발.."
언니란 호칭을 어느 지방에서는 남자끼리도 사용하더군요. 꼭 여자끼리만 하는 호칭은 아니니 섭섭해 마시고요..
P.S. 2
브런치 작가님, 글에서 큰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성함이.... 죄송합니다. 꼭 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