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무릎을 껴안고 앉아

제라늄 꽃을 본다.

by 그사이


오랜만에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는다. 역시 오늘도 글이 써지진 않는다.

의자 위로 두 발을 올리자 함께 올라온 두 무릎을 가만히 껴안는다.

사실 무릎도 뻑뻑하고, 큰 몸을 가장 작게 만드는 자세가 잘 안 되고 힘들다. 다리를 힘차게 껴안는다. 몸이 훈훈해지니 심장까지 데우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상옆 나의 작은 정원은 제라늄의 분홍 꽃잔치가 한창이다. 참 예쁘기도 하다.

제라늄의 개화과정은 신기하여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방금 내가 무엇을 소망했는지 몸을 왜 작게 만들었는지 잊고야 만다.


제라늄이 꽃봉오리를 처음에 만들어 냈을땐 꼬불거리는 것이 잎인지 뭔지 분간이 안된다. 그러다 좁쌀만 한 동그라미가 되면 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좁쌀들이 조금씩 커지면 어릴 때 먹던 주전부리인 살구씨 캔디 처럼 연한 분홍빛이 드리운다.

건드리면 똑 떨어질 것처럼 대롱대롱 달려있던 봉오리가 더더더 커지면 드디어 줄기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점점 분홍이 짙어지며 가장 크고 무거워졌을 때를 놓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꽃줄기를 번쩍 들어 올린다.

그리고 꽃이 개화한다. 활짝.

하나, 둘 들어 올린 꽃 봉오리가 여나무개쯤 피어나면 커다란 한송이 같은 꽃을 만나게 된다. 줄기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느새 줄기가 굵직하고 단단해졌음에 놀란다.

”아이고, 내 새끼 용하다! “

옛날에 외할머니는 증손주인 내 아이가 처음 일어섰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다.

‘용하다’라는 말의 정의는 그렇게 내게 새겨졌다. 요즘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식물을 키우다 보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간혹 그런 말을 쓰면 내가 할머니가 된 기분이 되어 우스운 생각이 든다.


꽃이 피어야만 "여기 식물이 있었네."라고 깨닫는 우리 집 남자는 개화 과정을 모른 채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해서야 "우와, 우리 집에 이런 꽃이 있었어? 꽃 진짜 크다."라고 감탄하며 몇 일정도 봐준다. 그는 꽃을 피운후에야 알아채고 예쁘다. 대단하다고 한다. 사실 정말 대단한 것은 고온다습한 여름과 일조량 적은 겨울을 지나며 생사의 기로를 무사히 넘겼다는 것인데..

어느 땐 여름장마에 줄기가 물러 죽어가고 있을 때 "여기 식물이 있었네."라고도 한다.

식물 곁에서 애태우며 지켜보는 나는 안타깝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더라도 식물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지켜본다. 용한 식물을.


가만히 꽃을 보고 있으니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두 무릎을 껴안고 앉아 몸을 데우고 있자니 어느새 마음에 꽃분홍물이 든다.

‘누가 알아채지 못하면 어때.’

언젠가 나의 꽃봉오리를 번쩍 들어 올리고,

누군가 하나의 마음에 분홍물을 들일 수도 있으리라 꿈을 꾼다.

제라늄처럼.

좁쌀만한 시작
대롱대롱 겨우 달린 연하디 연한
분홍이 역력해지면
힘차게 들어올려 개화한다.
오늘의 분홍 동그라미


오늘도 동그래졌기를..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