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기온은 아직 27~9도를 오르내리지만 아침·저녁으로 긴팔 옷을 걸쳐야 할 만큼 서늘하다.
8월 한낮의 무더위를 이기고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을 맨 처음 느낀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반갑고 좋으면서도 가슴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저 작은 손짓에도 가슴이 시려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과 함께 감정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은 가슴속으로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쓸쓸함, 허전함, 외로움, 고독함 등등. 그것이 참으로 희한하다. 그저 작게 살랑거렸음에도 사람을 뒤흔들어놓으니 어떤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가을을 타기 시작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대학 때부터인 것 같다. 학과에는 관심 없고, 학생운동 하느라 밖으로만 나돌던 그 시절, 인생의 갈 길을 몰라 헤맸다. ‘나는 어디로? 여긴 어디? 삶은 무엇?’
삶은 달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수많은 물음에 답할 수 없던 그 시절 울긋불긋 물들던 교정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상념과 고민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때 처음으로 ‘외롭구나’라고 느낀 것 같다. 이전에는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가을이 되면 종종 우울한 감상에 젖곤 했다.
우리 몸은 환경의 변화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아지거나 적어지는 호르몬이 있다. 호르몬 중에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기분이 좋아지면 많이 분비되고 우울해지면 적게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인지, 기분, 불안 등에 관여하는 일명 ‘행복’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은 정열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과 불안하고 우울한 부정적인 반응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다.
세로토닌은 감정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지지만 날씨에 따라서도 분비량이 달라진다. 날씨가 추워지면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져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을을 타는 것은 당연하다.
세로토닌 분비량이 적어졌는데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신병?
요즘처럼 급격한 기온 차이와 계절의 변화가 심한 환절기에 우리 몸의 반응과 감정의 변화는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 다 세로토닌 때문이야’
해마다 가을이 되면 열병처럼 앓게 되는 우울감은 모두 다 세로토닌 때문이라고 탓을 해본다.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소용없다. 몸이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반응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올해만큼은 너 가을바람에 지지 않으리라. 휘둘리지 않으리라.’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올가을은 우울한 이유를 찾고, 쓸쓸함에 허덕이고, 고독으로 젖어들며, 외로움으로 삶이 너덜너덜해지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삶이 피폐해지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어서도 아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서 허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 세로토닌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로토닌을 어떻게 하면 가을을 조금은달리 보낼 수 있겠다싶다.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몸의 반응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세로토닌이 아니라 거스르고 역행하련다. 가을을 뒤집겠다는 다짐이다.가을 뒤집기 한판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