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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세요?

추석, 고향 앞으로

by 하민영

"고향이 어디세요?"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고향을 물어온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더 자주 그렇다.

말투에서 묻어나는 미묘한 차이를 사람들이 알아채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디인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나에게는 고향이 세 개나 있다.

첫 번째 고향은 나고 자라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마을이다. 마을 곳곳이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서려있다. 언제든 가기만 하면 힐링이 된다. 눈을 감으면 초록 벌판이 넘실대고, 복숭아꽃 활짝 피고 진달래가 온 산을 분홍빛 꽃물을 들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겨울이면 비료포대를 놓고 미끄럼을 타고, 꽝꽝 언 논에서 썰매와 팽이에 지칠 줄도 모르고 놀았다. 요즘처럼 가을이 무리 익어가는 계절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이 손짓을 한다. 살랑바람이라도 일렁일 때면 가슴속에서 잔물결이 인다. 지금도 고향 골목에 서면 동네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집은 뉘 집이고 저 집은 뉘 집이며, 누구네 엄마는 음식솜씨가 어떤지, 누구네 아버지는 부지런한지 게으른지 다 아는 작은 동네다. 누구네와 누구네는 친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다. 어느 친구 언니는 우리 몇 째 오빠와 동창이고, 또 누구의 형은 우리네 형제나 자매와 동무이기도 하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그물처럼 엮인 곳이다.



두 번째 고향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를 다녔던 작은 소도시다. 이.삼십 대 청춘과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꿈 많았던 학창 시절과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대학교와 첫 직장에서 함께 보냈던 친구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시부모님과 형제들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타지에 갔다가도 톨게이트만 보고도 마음이 안정되는 곳이다. 비빔밥과 종이로 유명하고 한옥마을로 유명한 곳, 전주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전주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낮에도 가고 밤에도 한옥마을을 탐방했다. 한옥마을 주변으로 술집과 먹자골목이 즐비하게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전주가 이렇게 북적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조용했던 작은 도시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옥마을 주변에 있는 *경기전(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과 *전주사고(조선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전주 전동성당(일제강점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주교 성당)과 *풍남문(옛 전주읍성의 남문)은 아름다웠다. 경기전과 전주사고는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로 핫풀이다. 전동성당은 예전에는 내부가 공개되어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통제하고 있다. 풍남문은 전동성당에서 서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옛 전주읍성의 남문이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유적지는 이외에도 오목대, 한벽루, 전주천 등등 여러 곳이 있는데 이곳은 다음에 방문하기로 했다.


야시장이 열린다는 남부시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 하려고 했는데 주말은 열리지 않는다고 하여 아쉬웠다. 병원 다닐 때 밤근무 끝나고 나면 콩나물 국밥이나 순대국밥으로 피로를 풀곤 했던 곳이다. 남부시장을 지나 전라감영 건너편 전주완산경찰서 벽면에 그려진 벽화 '전주의 봄(18세기 전주지도)' 앞에서 사진을 찰칵 찍었다.

새로 건축한 *전라감영(전라도.제주도 관할 관아)은 마감시간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보아도 예뻤다. 주홍빛 불빛을 받은 나무기둥과 검은 기와가 어우러진 한옥이다. 추석 보름달이 전주의 밤을 빛내고 있었다.


전라감영을 지나 옛날에 나그네들의 휴식터 *풍패지관(건국자의 본향이라는 뜻의 관사, 구 전주객사) 앞에 이르렀다. 단청도 곱게 칠했고, 재건한 건축물도 있었다. 기억에는 건물이 두 개였던 것 같은데, 현재는 4개(주관, 서익헌, 동익헌, 수직사)가 남아 있다. 예전에는 풍패지관을 '객사'라고 불렀으며, 객사에 앉아서 친구들을 기다리곤 했던 장소다. 그때를 추억하며 감상에 젖는다.


전주는 한옥과 잘 어울리는 도시다. 아직도 곳곳에 한옥이 남아 있다.

여기는 영화의 거리, 여기는 옛날 헌트사거리, 여기는 집회가 있을 때 모였던 사거리다. 여기는 친구와 몇 날 몇 시에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던 민중서림 앞, 이 골목으로 가면 함흥냉면집, 저 골목으로 가면 포장마차가 많다. 또 저리로 가면 서점과 헌책방집이 있고, 비빔밥, 한정식, 콩나물 국밥이 맛있는 집 등등...

거리의 가게들은 거의 다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반가운 것은 30여 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던 관통약국과 풍년제과(초코파이로 유명한 제과점)가 지금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곳, 할 얘기가 무궁무진한 나의 두 번째 고향 전주다.




*경기전 :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에 세운 전각으로 세종 때 붙인 이름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4년(광해군6)에 중건하였다.

*전주사고 : 조선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120년간 조선실록과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1300여 서적이 보관되어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위험에 처했다. 1952년(선조 25년) 내장산 은봉암에 옮겨 난을 피해 오늘에 이르렀다. 전주사고가 있었기에 조선의 역사를 소상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주 전동성당 : 1914년 일제강점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주교 성당, 서울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하다.

*풍남문 : 옛 전주읍성의 남문,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가 1734년 영조 때 개축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다.

*전라감영 : 조선시대 관원들이 근무하는 관아, 전라남.북도 및 제주도 관할 행정, 사법, 군사 관할, 현재의 도청, 옛터에 2017년 일부 복원 현재 진행 중이다.

*전주풍패지관 : 구 전주객사, 각종 의례(전패와 궐패를 모심)를 행하거나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전주에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 1473년(성종 4)에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재료로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전주 경기전 입구와 전주사고 실록각
전라감영과 한가위 보름달
풍패지관(구 전주객사)
전주 전동성당
전주비빔밥, 전주의 봄(18세기 전주지도)


세 번째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곳 서울이다.

결혼 전에는 한때나마 서울에 살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다. 언니 오빠들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방학 때면 종종 방문했지만 서울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서울에 이사 왔을 때는 무인도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서울이 너무 좋다. 조금만 걸어가면 한강이 있고, 집 근처에는 공원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 내에 북한산, 청계산, 수락산, 아차산, 대모산 등등 손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저렴하고 편리한 교통은 세계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궁궐도 극장도 전시회도 음악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는 것이 가능하다. 시장과 마트, 카페와 책방, 도서관과 학교 등등 먹거리 놀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배울 수 있는 사람과 장소도 넘쳐난다. 이 풍요로운 도시에 사는 것은 큰 행운이다.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도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떻게든 시골을 벗어나고 싶던 그 시절의 꿈은 오직 도시에 상경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고단한 시골살이가 싫어서 떠난 소도시의 삶이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의 삶이 좋았다. 이십여 년을 지내다 보니 친구와 지인들은 많아졌고 적당한 사람들이 그만그만하게 어울려 사는 곳이 좋았다. 지방의 소도시가 다 그렇듯 번잡스럽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으며, 적당한 사람과 알맞은 놀거리가 있어서 살기에 적당했다. 지금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변화가 없다고 혹은 자극이 없다며 지방을 떠나려고 한다. 내가 시골을 떠나려고 했던 것처럼.

전주에서 살 때는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인가 했었다. 큰 물고기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아주 절실한 편은 아니었다. 그저 한 번쯤은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느닷없이 시작한 서울살이는 지방에서 살 때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사람은 많으나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과 오라는 데는 없지만 갈 곳은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요상스럽다. 지방에 살 때는 서울 구경에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서 살게 되니 시골살이가 자꾸 하고 싶어졌다. 지방에서 살던 때가 좋았던 것 같고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 많은 것이 싫고 교통체증으로 정체되는 거리도 불편하며 공기도 탁한 것만 같았다. 서울이 아닌 외곽으로 자꾸 나돌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네 삶은 뒤돌아서면 금방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쑥쑥 자랐고, 어제의 일은 하루만 지나도 추억이 되었다.

과거 속에 사로잡히기보다 현재를 좋은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소중한 일이다. 뒤돌아서면 추억이 되는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이 추억 쌓기 가장 좋은 때이다. 현재 발 딛고 사는 곳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삶의 지혜이리라.

그리 생각하니 서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배우고 익히고, 만나고 듣고 보기 시작했다. 서울 살이에서 누리를 수 있는 혜택을 맘껏 누리게 되었다.


고향은 추억할 것이 많은 곳이라는데 언젠가는 서울을 추억할 때가 오리라. 그때가 되면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요?"라고 물으면 당당히 "서울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서울과 한강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추석, 고향 앞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글을 씁니다.

오늘도 글을 읽어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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