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전에 괴테 작품을 탐독했다. 독일은 유명한 작가, 음악가, 철학가가 많았는데 괴테 작품에 꽂혀서 열심히 읽었다. 특히 파우스트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책을 읽다 보니 열심히 산 괴테를 본받고 싶어졌다. 독일 여행 목적을 굳이 뽑는다면 괴테를 만나는 것이었다. 연극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여행 10일 차 오후 여행은 괴테 덕후인 엄마 소원풀이 하는 날이다. 헤펜하임은 다른 기대없이 오로지 파우스트 공연 하나 보려고 가는 곳이다.
지도 검색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헤펜하임까지 35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헤펜하임까지 5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가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서 이동을 해보니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다시 기차로 갈아타며 가다 보니 목적지까지 이동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다.
헤펜하임(Heppenheim)은 독일 헤센주에 인구 2만 6천 명으로 작은 시골마을이다. 755년에는 프랑크 왕국의 중심지였다. 가톨릭 베르크슈트라세 성당이 유명하다. 이 성당에는 1700년 제작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구시가지는 1693년 이후 지어진 반목재골조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고 408개의 중세 건축물이 사적지로 보호받고 있다. 시청 건물 앞에는 마리엔 분수대, 마인츠 선제후 행정청사 건물등은 대표적인 중세시대 건축물이다. 와인시장 축제가 매년 6월 말에 열리며 거리 연극공연인 페스트슈필레가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린다.
우리는 헤펜하임 유적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파우스트 공연이 궁금할 뿐이었다. 헤펜하임역은 여느 기차역과 달리 작은 시골역이었다. 사람도 거의 없는 조용한 역이었다. 여행 할때 이곳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마트에서 물을 사고 저녁식사 할 곳을 찾았다. 공연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공연장소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파우스트 공연이 열리는 장소인 성베드로 성당은 역에서 마을을 가로질러 한참을 가야했다. 도로를 걸어가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저녁 6시 정도였는데 상가는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저녁도 못 먹을 분위기였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빵으로 때우려고 빵집을 찾아보아도 문을 연 곳이 없다. 거리에는 마을 축제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축제라면 떠들썩해야 하는데 너무 조용했다. 독일은 5시면 문을 닫는 상가가 많으니 6시가 넘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한국에서 축제라면 저녁에 오히려 사람들로 북적일 텐데 헤펜하임은 거리에 걸린 플래카드만 날렸다.
20여분을 걸어가니 중세풍 목조 건축물이 즐비한 곳에 다다랐다. 사람들도 많고 음식점도 문 연 곳이 많았다. 시장광장(Marktplatz)은 나중에 검색해 보니 중세 목조건축물로 주요 관광지에 해당되었다. 적갈색 기둥에 흰 벽 칠이 조각보를 이은 듯한 중세 건축물이었다. "어머나 예쁘다." 중앙에 분수가 있다는데 갈길이 바빴고, 광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보이지도 않았다.
시장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연장인 성베드로 성당이 있었다. 성베드로 성당에 거의 이르렀을 때는 골목 끝쯤에 뾰족하니 탑이 보였다. 공연장으로 교회를 상상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공연은 어릴 때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리는 미사나 아이들의 공연정도가 전부다. 갑자기 옛날로 간듯한 느낌인데 뭐랄까, 굉장히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교회는 마을의 끄트머리쯤으로 보이는 곳에 있는 아담한 교회였다. 담장은 없었고 작은 공터인 마당이 있고 주변에는 낮은 건물들이 있었다. 주변건물과 분위기가 잘 맞으면서 교회 앞마당인 광장이 아늑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 교회와 건물에 저녁놀이 반사되어 주광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120여 년 전에 지어졌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유럽에서 120여년전 교회는 그리 오래된 교회는 아닌데, 우리는 120여 년 전 교회에서 공연을 본다고 하니 와~더 감격스러웠다. 교회에서 공연을 본다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공연장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배고픔이 밀려왔다. 공연 시작 30분 전이라 음식점에서 식사는 할 수 없어서 교회 광장 간이 푸드 코트에서 맥주와 빵을 샀다. 맥주가 파우스트 맥주다. 파우스트를 보기전파우스트 맥주라. 와! 신박하다. 적갈색빛을 내며 짭조름하고 담백한 빵인 브레첼 도넛도 샀다. 빵을 안주삼아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술술 들어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맥주와 빵을 모아 사진을 찍으니 그것도 작품성이다.
동네 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교회 마당으로 오기 시작했다.
"독일 할머니들 잘 안 꾸미는데 오늘 다들 예쁘게 입고 오셨네."
딸 말에 의하면 독일사람들은 차려입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교회나 공연을 보러 갈 때만 차려입고 평상시에는 화장도 안 하고 편하게 입고 다닌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깔끔하게 차려입었을 뿐 우리나라처럼 정장도 아니고 화려한 옷도 아니다. 소박하고 깔끔하게 옷을 입었지만 면바지를 잘 다리고 색깔옷을 바쳐 입은 정도다. 할머니는 붉은색 옷을 입었고, 분칠은 가볍게 했다. 평소에는 립스틱 한번 바르지 않던 사람이 빨간 립스틱을 곱게 바른 것 같다. 시골할머니들의 멋 내기라고 해야겠다. 그 모습이 처음 야외 나들이 가는 수수하고 순순한 소녀 같다. 근데 그 모습이 어쩐지 멋스럽다.
우리 테이블 옆자리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았다. 독일 노인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88 서울올림픽 때 서울 가서 경기를 봤다고 했다. 오 반가워라! 할아버지는 교회에 벽면에 새겨진 숫자 의미를 알려주셨다. 교회 높이와 교회가 건축된 해를 의미한다고 했다. 교회벽돌 색이 다른 이유는 지어진 연도가 달라서라고 알려주었다.
성베드로(St. Peter in Heppenheim) 교회는 베르그스트라세(Dom der Bergstrase) 성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73년에 지었으나 1900년에 철거되었다가 1904년 새로지 었다. 교회의 기원은 755년 건물로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크 족의 피난처 성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 타워의 지하 2층은 1100년경에 지어졌고 로마네스크 시대 양식이다. 1693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건축에 사용된 노란색 사암은 부분적으로 이전 건물에서 나왔고 붉은 사암도 과거 팔츠 신성로마제국의 것을 추정되는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길이는 50.85미터, 돔의 높이는 60.40미터다.
광장에 앉아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의 건물들이 노을이 들어와 주홍빛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물들기 시작하는 광장과 교회, 주변 건물들은 다사로웠다. 10일간 독일 여행 중 가장 충만한 장소로 여겨질 만큼 곱게 물들었다. 작은 광장은 주로 노인들이 쌍을 이루어서 속속 도착했고, 맥주나 와인 한잔씩을 들었다. 서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다웠다.
입장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 입장했다. 제단 앞에 검은 막이 있고 무대가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하얀무대가 되었다. 음향을 담당하는 사람이 교회 중간 오른쪽에 있었다. 관람객이 속속들이 입장했는데 대부분은 70~80대 노인들이었다. 동양인이나 이방인은 우리밖에 없었고, 젊은 사람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관람객은 100여 명쯤 되어 보였다.
불이 꺼지고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고 노인으로 분장한 배우가 객석 뒤에서 말을 하며 걸어 나왔다. 파우스트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파우스트의 고뇌와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거래 장면이 있었다. 독일어로 진행된 연극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책 내용을 알고 있어서 무슨 내용이겠거니 짐작을 했을 뿐이었다. 가끔 눈을 감고 느꼈다. 남편은 가끔 졸기도 했다. 뒷자리에 앉은 딸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라면 음악도 넣고 조명이나 무대장치도 화려하게 재밌게 할 텐데, 이 공연은 정말 무대에 배우 두 명이 대화를 계속 나누는 형태다. 배우가 대본을 외우기도 힘들었겠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없고 심심한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모습을 살폈다. 노인들의 뒷모습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진지하게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분들은 언제부터 파우스트 공연을 봤을까. 아주 어릴 때부터였으리라. 저기 앞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처럼 이 노인들도 해마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 교회에서 파우스트를 봤으리라. 처음에는 딴짓도 하로 지루해하며 해찰도 했으리라. 멋모르고 보다가 점점 철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했으리라. 해마다 보았을지도 모를 파우스트는 노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젊은이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런 연극은 독일 젊은이들에게는 인기가 없거나 헤펜하임이 워낙 시골이라 젊은이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독일 젊은이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여흥을 즐기고 도시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노인들의 흰머리 뒤통수와 곳곳히 등을 바로 세우고 관람하는 모습이 잔상처럼 뇌리에 남는다. 이것이 독일 노인들의 멋인 듯하다. 이런 문화를 즐기는 노인들이 부럽다. 우리의 노인, 노인 된 미래의 내모습도 상상한다.
브레이크 타임은 30분이었다. 계단에 앉아서 공연이 어땠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어는 전혀 못 알아 들었지만 좋다고 한다. 너무 소박하고 단순해서 재미없다고 그만 보고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더 보고 싶다고 한다. 언제 독일에서 독일어로 된 파우스트를 보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공연을 다 보게 되면 귀가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2부 중간만 보고 나오자고 했다.
브레이크 타임에는 연극을 관람하던 사람들이 교회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맥주나 음료를 사서 삼삼오오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부 시작종이 울리고 다시 입장했다. 2부는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30여분을 보다가 교회를 나왔다. 밖에 나오니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사위는 깜깜하게 어두웠다. 푸른 어둠에 건물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로등이 켜진 거리의 불빛이 반짝였다. 어두워진 마을의 모습에 "아!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교회에서 역으로 가는 중 다시 보는 마켓광장도 해 질 녘과 다른 모습이었다. "진짜! 예쁘다." 여기는 중세 건축물이 가득해서 광장이 포근하고 따뜻함을 발산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밤을 즐기고 있었다. 불 켜진 광장은 마치 중세 사람들이 밤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광장과 건물은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느낌이 너무 좋다. 아무래도 헤페하임과 사랑에 빠진듯하다. 기차역의 모습도 도착할 때와 떠날 때의 모습이 다르다.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도시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래도록 가슴에 퍼지는 잔향 같다.
괴테와 파우스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1832년 3월 22일)는 고전주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며 과학자다.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직을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왕실고문관이었고 엄마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시장의 딸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괴테는 평생을 넉넉하게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로마 고전문학과 성경을 읽었다. 근면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괴테는 일찍부터 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작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당시에 소설의 주인공은 신이 나 왕이 아닌 일반 청년이라는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다. 30대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로 교양서를 썼고 이후 <색채론>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이탈리아 기행>등을 썼으며, 80세 <파우스트>를 쓰고 세상을 떠났다.
괴테는 독일 문학계의 거장이다. 괴테는 작품을 쓸 당시 영국의 문학과 셰익스피어를 많이 숭상했다. 독일은 괴테 이후 문학계의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덕분에 한국문학계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져서 기대가 된다.
파우스트(Faust)는 16~17세기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마법사 이름이다. 파우스트는 민중 소설로서 극단이나 인형극으로 자주 상연되었다. 여러 작가들이 쓴 작품이 많은데 괴테가 파우스트의 완성도를 높였다. 1부는 20대에 구전 소설 내용을 2부는 괴테의 창작품으로 80세에 완성했다. 1부와 2부가 전개와 내용이 사뭇 다르다. 같은 작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1부는 파우스트가 악마와 거래를 하여 다시 젊어져서 사랑을 알게 되고, 뜻하지 않은 범죄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2부는 파우스트가 결혼을 하였으나 하늘을 날다가 아들 이카로스가 죽고 아름다운 부인 헬레나도 아들 뒤를 따른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마치 구운몽을 보는 듯하다. 환상 속 세상을 보는 듯 작품이 쓰였다. 파우스트는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파우스트가 최고의 순간으로 여기는 때는 사람들이 재방을 쌓고 둑을 건설하는 것이다. 참 독특한 결론이다.
파우스트는 희곡 대본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동영상 유튜브로 강연을 듣고 읽어보아야 조금 이해가 간다. 파우스트는 괴테 자신의 자화상인 것 같다. 괴테는 매우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삶을 본받고 싶을 정도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괴테 생가
독일여행 11일 차에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여행이었다. 괴테광장에 있는 괴테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날 파우스트 공연을 보고 난 후라 더 의미가 있고 친근했다. 괴테 생가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시내 한가운데에 있다. 괴테 박물관과 생가는 빌라 건축물처럼 보인다. 노란 집이 박물관이고 붉은 벽돌집이 생가다. 처음에는 노란 집이 생가인 줄 알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붉은 벽돌집이 생가였다.
괴테는 생가인 히르쉬그라벤(Großer Hirschgraben)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1775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세습 왕자 칼 아우구스트(Carl August)의 초청을 받아들일 때까지 어린 시절과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괴테는 이곳에서 '괴츠 폰 베를리힝겐', '파우스트'의 원작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초기작품들을 만들었다.
생가를 돌다 보면 괴테 가족이 부자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괴테가 뛰어놀았던 계단, 부엌, 방, 마당 등 당시 괴테가 사용했던 물건과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한국어로 음성안내를 들으며 관람하면 좋다. 독일여행지에서 한국어 음성안내는 처음이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오나 보다. 각 방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괴테의 삶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다.
어린 괴테가 부엌을 들락거리는 모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있는 모습, 라틴어 공부를 하는 모습등을 상상해 본다. 창가에 놓인 화분과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에 퍼지는 모습 속에 괴테가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기고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책을 읽고 대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복도에 있는 괘종시계는 고급스럽고 독특하다. 상단이 세계의 동그란 올빼미 눈 같고 아래는 원숭이를 조련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 괴테의 시간과 함께 했을 시계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고 있겠지. 쉴 새 없이 오르내렸을 어둔 갈색 계단은 반질 반질하다. 이번 여행에서 어디를 가나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보면서 음악가 작가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고 삐걱거리는 나무의 소리를 들어본다. 계단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을 모습도 떠올린다.
그림이 있는 방, 책이 가득한 서가, 어린 괴테를 위한 침실, 가족방, 여섯 형제자매의 방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모님의 흔적도 남아 있다. 아버지는 존경스럽지만 엄격하고 까다로운 면이 많았다고 한다. 엄하고 무서운 분이었고 책임감이 강하고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정적이었고 훌륭하고 자상한 분이었다고 한다.
괴테 가족 속으로 들어간듯 생생하다. 늙은 괴테가 파우스트를 쓰면서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어린 괴테, 젊은 괴테, 나이 든 괴테의 모습을 그려보기에 좋은 괴테 생가 관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밖을 보고 정원에 앉아서 소설을 읽어도 좋겠다.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이 사랑을 나누는 동상을 한참 바라보게 된다.박물관도 있었으니 시간이 되면 천천히 둘러보면 좋겠다. 괴테 시집을 하나 샀다. 아직 읽지 못했다. 독일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번역기를 돌려야한다.
괴테를 만나는 것은 관광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문학을 만나고 삶을 만나고 온 것은 아닌지.오감으로 만나는 여행이다. 여행은 물성이라서 더 현장감이 있다. 책에서 여행으로 만나니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