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0일 차 하이델베르크 여행이 시작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하이델베르크행 기차를 탔다. 한 시간 반정도 기차로 이동했다. 하이델베르크 역에서 내려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가는 트램으로 갈아탔다. 트램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트램을 타고 35분 정도 이동하니 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곳에 하차했다. 구글 지도가 성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을 알려주어서 성곽을 따라서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올라갔다. 나중에 보니 케이블카를 타고 곧바로 성으로 갈 수 있었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딸은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했는데 좋았다며 엄마아빠랑 꼭 오고 싶었다고 했다. 입구에서 티켓팅(입장료 성인 1인당 9유로, 학생 4.5유로)을 하고 입장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6유로)도 있으며, 영어 가이드 투어도 있으나 우리끼리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동화 속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 성(Heidelberger Schloss)은 1255년 건립된 선제후가 머무는 주거용 궁전이다. 선제후란 신성로마제국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을 가진 영주로 영화에서 보면 꽤 힘 있는 인물이다. 성은 17세기에 팔츠와 팔라티노 왕위 계승 전쟁과 30년(1618~1648년) 종교전쟁으로 훼손되었으며,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거대한 성벽이 폭파되었다. 18세기 선제후들은 심하게 손상된 궁전을 떠났다고 한다. 1764년에는 두 번의 낙뢰로 많이 파손되고 건물이 소실되었다. 1800년경 독일에서 망명생활을 한 프랑스의 샤를 드 그라임베르크 백작에 의해 성은 시, 노래, 그림에서 기념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00년경 성 분쟁이 일어난 후 성을 폐허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는 중세 르네상스 궁정으로 독일의 중요한 문화 기념물로 자리 잡았다.
가파른 성벽을 따라 올라 망루에 도착했다. 망루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전경은 아름다웠다. 붉은 벽돌로 지은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멀리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성은 푸른 산을 병풍 삼았고 붉은 벽돌로 지었다.
현재 성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원래는 더 높이에 있었다고 한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전경을 즐기고 침입자가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높은 곳에 성을 쌓은 것 같다. 도시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도 푸른 산이 도시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성과 도시,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다. 배산임수 풍수지리는 모르지만 명당자리로 보이는 천혜의 요새 같다. 800여 년 전 도시가 형성된 하이델베르크는 대단했을 것 같다.
망루를 보고 성 내부로 들어가면 22톤이 넘는 술통이 있는 건물에 이른다. 내부에는 카페가 있었는데 카페보다는 어마무시한 술통 앞에서 입이 쩍 벌어진다.
이 술통은 1751년 선제 후 카를테오도어 때 제작되었다. 술통 높이는 약 7미터이며 폭은 약 8.5미터에 이른다. 약 221,726리터(58,124 gallons)만큼의 술을 보관할 수 있다. 술통 맞은편에는 페르케오 목상이 있다는데 눈여겨보지 못했다. 페르케오는 하루에 18리터의 포도주를 15년 동안 마신 대주가다. 80세 가지 장수하였는데 의사는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한다고 하자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술통 앞에서 서고 술통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작게만 보인다. 선제후는 얼마나 술을 좋아하면 산중턱의 성에 22톤의 술통을 만들었을까? 전쟁을 대비해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만들었을까? 술통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포도주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까?
술통 밖으로 나오면 성 중앙 광장에 서게 된다. 광장 주변으로 오래된 건축물이 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서있다. 성은 다른 시간대에 지어진 것인지, 산 중턱에 지어진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통일성이 없다. 약학 박물관, 프리드리히관, 루프레히트관, 오토하인리히관 등의 건물이 빙 둘러 서있는데 안내도를 갖지 않아서인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약학 박물관은 무료 관람이 가능한데 보지 않았다. 다른 관은 가이드 투어를 하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성의 외관만 구경했다. 성의 외관만 휘릭 둘러보아도 좋았다. 잠시 광장에 서 있는 동안 시간을 되돌려 중세의 영주가 되어 보는 상상을 한다. 동화를 만들고 영화 한 편을 찍어도 좋겠다.
햇살이 내리쬐는 성 광장은 더웠다. 얼른 더위를 피해 달아나고 싶어졌다. 광장밖으로 나오면 입구이자 출구 쪽에 이른다. 기념품 가계가 있고 정원도 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관람이 시작되는 입구가 되는 곳이다. 정원을 따라가다 보면 파괴된 성벽이 보인다. 훼손된 건축물들은 그대로도 의미가 있고 문화재의 멋도 있다. 푸른 잔디가 넓은 정원은 산 중턱에 이렇게 넓은 정원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성의 정원은 1616년에서 1619년에 완공되었는데 프레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정원을 지나면 프리드리히관 테라스에 이른다.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테라스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선제후를 상상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중세의 영주가 된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는 매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축제가 열리는데 오페라, 오페레타, 연주회, 어린이와 청소년 극장, 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있다고 한다. 가끔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는데 좋은 볼거리가 될 것 같다.
성의 정원을 거닐고 붉은 성의 모습을 보며 한가로이 노닐기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볼거리가 많았다. 다음 관광지로 걸음을 재촉했다.
볼거리 많은 하이델베르크 시내 구경 -광장, 교회, 대학, 박물관, 학생감옥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로 들어오니 산중턱에서 보았던 시내 건축물이 눈앞에 서있다. 축지법을 써서 중세 시내로 들어온 것 같다. 먼 거리에 있던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나는 원근법 마법을 쓴 것인가 싶다.
하이델베르크 시장 광장인 마르크트 플라자(Marktplaz)에는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헤라클레스 분수는 곁에서 보지 못하고 삐죽 머리가 보였다. 광장에는 술과 음식을 먹는 사람, 관광을 나선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관광지다운 모습을 뽐냈다. 광장 근처에는 즐길만한 상점도 많았다.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 등 여러 종류의 가게가 즐비했다. 사람들도 어찌나 많은지 여행온 기분이 났다. 이곳에서 기념품을 사도 좋을 것 같았는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점심은 햄버거와 음료수로 먹었다. 함부르크에서 먹었던 햄버거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햄버거는 세계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시장광장 옆에 있는 성령교회에 갔다.
하이델베르크 예수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에는 프리드리히 가문 선제후 55구 묘가 안치되어 있었으나 파괴되어 현재는 1693년 루프레히트 2세(1352-1410)의 비문만 남아있다.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물리학의 창'이라는 글라스는 더 특별하다. 히로시마 원폭 후 그곳에서 나온 잔재를 가지고 만들어 히로시마 원폭을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을 포함한 여러 관광객이 이곳 앞에 있었다. 가이드를 대동한 관광객들이 열심히 귀를 세우고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성령교회는 가톨릭과 분쟁이 있던 1705년 교회 내부 성단 사이에 벽을 쌓아 따로 예배를 보며 대립했다고 한다. 이 벽은 대학 창립 500주년이 되는 1886년에 철거되었다. 1936년에 개신교가 가톨릭으로부터 사들여 현재는 개신교 교회다.
교회를 관람하는 동안 교회의 전시물이나 역사적 의미를 사진만 몇 컷 찍었다. 내용을 모르고 보니 휘리릭 보게 되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자유여행의 단점은 보아야 할 것들,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의미를 몰라 지나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다며 우리 식대로 잘 다녔지만 나름 아쉬움은 남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물 중 일부인 학생감옥과 박물관이었다.
학생감옥(Studentenkarzer)은 1778~1914년 말썽꾸러기 학생을 가두던 감옥이다. 강력범죄나 절도가 아니면 학사 감옥에 보내졌다고 한다. 감옥 하면 무서운 고문과 공포로 떨리지만 이곳은 학생들이 감옥을 들어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감옥생활을 즐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감옥벽을 비롯한 탁자, 침대, 의자 등 내부에는 당시 학생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건물 벽을 창의적 예술품으로 만들어놓았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하며 낙서를 읽어보려 했으나 언어를 모르니 그들의 흔적을 사진으로만 남겼다.
박물관은 감옥과 연결되어 있다. 박물관에서도 언어를 몰라서 그림만 대충 보게 되었다. 대학 강당으로 사용했던 곳에서는 딸 사진을 더 많이 찍어줬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책상배열이나 학생 관람석이 독특했다. 아래 빨간 탁자가 있고 뒤에 관람석처럼 보였다. 교수 좌석표도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라니 포츠담 대학만큼이나 개인적 욕망이 생기는 대학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네 곳에 흩어져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 대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계열 학부가 있는 곳이다. 박물관 계단에는 총장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자 교수 사진도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을 입구에는 SNS에서 유명한 간판이라는 악동마귀의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Ruprecht-Karls-Universität Heidelberg)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공립학교다. 1385년 교황 우르바노 6세의 인가로 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총 3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망 있는 대학이다. 유명인으로는 막스베버, 에리히 프롬, 카를 야스퍼스, 오토 프랑크(안네의 아버지)등이 있다.
박물관을 보고 나오니 예수교회가 있어서 잠깐 들어가 보았다. 금방 보고 나와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데 종교예술품이 전시되어 유산이었다. 예수교회(Jesuitenkirche)는 1712년에서 1759년에 걸쳐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로 높이 약 78m이다. 내부는 흰색으로 기둥은 녹색과 도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교회에는 종교예술과 예배 박물관이 있는데 예술사적 의미가 깊은 석상, 그림 등 종교예술품과 성배 등 예배도구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거리는 온통 중세풍의 건물로 가득했다. 어떤 곳이든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상점도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기념품도 사고, 즐길거리도 찾아보면 좋겠지만 다음 일정이 많았다.
올드 브리지 카를 테오도르 다리
구시가지에서 구경은 빠르게 마무리하고 철학자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철학자의 길에 가기 전 다리를 건넌다. 다리 이름은 카를 테오도르 다리다.
올드브리지(Old Bridge)라 불리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idge)는 네카어강위에 약 200m, 폭 7m이다. 네카어강(Neckar)은 독일 서남부의 강으로 라인강 지류다. 길이는 367km이다. 다리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져 홍수와 전투로 빈번히 부서져 1788년 카를 테오도르가 재건축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말 1945년 미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독일군이 다리를 폭파했으며, 전쟁 후 1947년 7월에 다시 다리를 세웠다.
다리를 건너기 전 테오도르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문의 우측을 보면 원숭이 상이 있다. 15세기 초에는 거울을 들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아일랜드 9년 전쟁으로 사라졌다 1979년 다시 건립하였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숭이상의 거울을 비비면 행운을 가져다주고, 손가락을 비비면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가게 하고, 근처에 있는 작은 청동 주물 쥐는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현재는 원숭이 얼굴에 머리를 넣고 사진을 찍으면 행운을 얻는다고 하니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를 집어넣고 사진을 찍었다.
원숭이 상 모습은 원숭이가 거울을 들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는데 당시 부패한 대주교를 희화화한 것이다. 동상은 한 손에 거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뿔의 부호(엄지로 중지와 약지를 잡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은 펴서 형성)를 하고 있다. 원숭이 아래에는 1632년에 마틴 제일러의 시가 적혀 있다. '왜 날 쳐다보는 거야? 하이델베르크의 늙은 원숭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앞뒤를 살피고, 거기서 너는 네 종류의 것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야.' 이 원숭이를 보면 부패한 위정자들이 반성을 할까.
테오도르 문을 지나 다리 위에 서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 아름다워 감탄이 나온다. 멀리 있는 성을 배경으로 해도 좋고, 강을 배경으로 해도 아름답다. 철학자의 길이 있는 산을 배경으로 해도 그림 같은 풍경이다. 어디에 눈을 둬도 예쁘다. 흐르는 강물과 넓게 펼쳐진 산, 자연과 어우러진 성과 도시의 모습에 반한다. 사진 찍기도 바쁘고 눈에 넣고 마음에 담기도 좋은 장소다. 성을 한눈에 가까이에서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다리에는 다양한 조각상도 볼 수 있다. 네포무크(보헤미아 고해성사의 첫 순교자) 조각상, 미네르바(아테네여신) 조각상, 카를테오도르 조각상 등이 있다.
철학자의 길에서 철학자를 만나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이차선 도로가 있고, 철학자의 길에 오르는 입구에 들어선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길의 폭은 1미터 정도로 좁고 양옆으로 집의 담벼락이 있다. 얼마간은 좁은 길을 따라 높게 쳐진 담벼락을 따라가야 한다. 처음에는 가파르지 않은데 점점 오르기에 숨이 차다. 양쪽 시야가 막힌 산책로는 처음에는 무념무상에 이르게 하지만 오가는 관광객 덕분에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은 괴테, 헤겔, 하이데거 등이 거닐었던 산책로이다. 길이 2.1km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구글 지도에는 우리가 오른 산책길이 아니라 산너머 길게 자리하고 있다. 철학자의 길은 지도에서 보면 여러 기념비도 있다. 칼 루드비히 왕자의 딸 리솔레트에게 헌정된 기념관인 리솔레테슈타인이 있다. 리솔레트는 루이 14세의 형제인 오를레앙 공작과 결혼했으나 왕위 계승전쟁을 촉발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념품으로는 1620년대 도시가 파괴되기 전 모습을 보여주는 동판 그림이 있는 메리안블릭(Merianblick) (Merian's View),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 한 낭만주의 시인 요셉 폰 아이헨 도르프 (Joseph von Eichendorff)의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좁은 산책로로 몇 분 오르면 시야가 조금씩 트인다. 과수원도 보이고 산도 보인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는 길에 접어들게 된다. 구불구불 오르는 길에 사과와 포도나무가 심어진 과수원이 있다. 이곳은 기후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석류, 레몬, 사과, 야자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도마뱀이 돌담에 있다가 날름 도망간다. 조금 더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 산중턱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반대편 도시의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다리에서 볼 때와는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가끔 다리를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만 도시 속에 잠긴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소란함은 사라지고 고요함만 남아있다. 평화롭기만 한 도시의 정적이 느껴진다. 하이델베르크 성과 도시에서의 전쟁과 파괴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산책길을 오르니 화창한 날씨는 덥게 느껴지고 발도 불편해졌다. 엄마아빠는 쉴 자리를 찾았고, 딸은 정상에 오르면 시가지가 더 아름답다는말을 남기고떠났다. 엄마아빠는 철학자의 길 중턱 나무그늘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철학자를 만나는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