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일정이 많아질수록 피로도 쌓인다. 온몸에 파스를 듬뿍 바르고 잔 덕분에 삭신은 덜 쑤신다. 여행 8일 차에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4박 5일 머물던 베를린을 떠났다. 딸은 베를린을 많이 못 봐서 오전에라도 몇 군데 보는 것은 어떤가 물었으나 엄마아빠는 괜찮다고 아쉬움은 남기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자고 했다. 어김없이 지하철을 탔고, 차창으로 지나가는 베를린 거리를 감상했다. 베를린에서 머물면서도 보지 못했던 거리의 모습이 많았다. 차창밖으로 흐르는 베를린 풍경을 감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독일기차는 지하철은 U1~U9(어반, U-bahn, Untergrundbahn)로 9개 노선이 있고, 기차는 DB(Deutsche Bahn), 고속열차는 ICE(Inter City Express)로 자주 타다 보니 많이 익숙해졌다.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 기차로 갈아탔다. 독일 중부지역에 해당하는 데사우 역(Dessau Hbf)에서 기차를 탔는데 초등학생 이십여 명과 선생님 서너 명이 타고 있었다. 이슬람계 사람들이었는데 여선생님은 터번을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처럼 시끄럽게 재잘댔다. 여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선크림을 발라주며 장난을 치고 남학생 중 몇몇은 안 바르려고 피하며 장난을 했다. 무에 그리 신나는지 웃음소리가 크다.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 유홍준 작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을 읽었다. 해외 여행할 때 책 한 권은 필수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공공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기 때문에 기차를 기다리거나 기차여행할 때 책 읽기가 좋다. 숙소에 일찍 귀가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났을 때도 책 읽기가 좋다. 독일여행 중에 <햄릿>을 다 읽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도 거의 다 보았다. 이번 책은 작가의 고향인 서울이야기다. 서울촌놈인 작가님의 언니, 동생, 가족, 친구, 동창, 마을 등 숨겨진 구석구석 이야기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밌다.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에서 2시간 반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우리가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시간은 낮 1시였다. 라이프치히역도 동과 서쪽 출입문이 따로 있을 정도로 꽤 컸다. 역 근처에 있는 숙소까지는 걸어갔다. 박석이 깔려 있는 인도는 꽤 울퉁불퉁해서 케리어를 끌고 가기 불편했다. 딸이 독일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었는데 바로 이런 도로를 말하는 것이었나 보다. 10여분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하여 예약을 확인하고 결제를 했다. 다른 장소와 달리 이번 숙소는 예약만 하고 결제를 하지 않았다.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딸은 결제를 미루고 있었다. 숙소로 입실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서 짐을 맡기고 라이프치히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짐을 맡기는데 케리어 3개에 19유로를 받았다. 투숙객에게는 무료로 맡아주는 곳도 많은데 너무 비쌌다. 이럴 줄 알았으며 지하철역에 맡길 것 그랬나 싶다.
저녁때 숙소에 들어가 보니 공간이 너무 좁았다. 2층 침대로 4인이 입실할 수 있었는데 큰 케리어는 펼쳐놓을 수 없었고 중간케리어도 간신히 통로에 두고 건너 다녀야 했다. 하루만 머물 예정이라 역에서 가까운 비즈니스텔을 선택했는데 너무 작아서 불편했다. 침대와 욕실 텔레비전만 있는 딱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신 공용 주방이 있어서 직접 해 먹을 수 있고,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둘 수도 있었다. 세탁기도 공용 주방에 있었다. 비즈니스텔이라 그런지 다른 숙소보다 5~7만 원 정도 저렴했다. 비즈니스텔을 이용할 사람이라면 숙소의 공간을 잘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잠만 자는 용도로 하루만 이용할 거라 더 욕심부리지 않았다. 아침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물과 음료, 과일로 최소한만 구입했고 냉장고에 넣어두지는 않았다. 낮기온이 30도인데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고 숙소까지 좁으니 더 답답했다. 밤에는 시원해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흐가 지휘를 하고 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했던 성토마스 성당
숙소에 짐을 맡기고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이동하니 라이프치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공원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90유로(한화 135,000원)로 다소 비싼 음식을 먹었다. 스테이크, 크림파스타, 피자, 레몬맥주, 흑매주, 커피등 여러 음식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도 보면서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바흐박물관으로 가려고 일어서니 그제야 보였다. 식당 바로 근처에 바흐박물관이 있었다. 거리의 간판은 대부분 바흐를 사용하고 있었다. 온통 바흐의 거리였다. 바흐 박물관 앞에는 바흐 동상(1843년 건립)이 있었으며 성토마스 교회가 있었다. 바흐 박물관을 보기 전에 성토마스 교회를 관람하기로 했다.
성토마스 교회(St. Thomas Church)는 1212년에 짓기 시작해 1496년에 완공했다. 전형적인 후기 고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교회의 탑은 60m 높이의 팔각형 구조물이며 탑에는 가장 오래된 종 '글로리오사'이외에 8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 내부는 석조 기둥이 직선으로 높게 솟아 있고, 기둥과 기둥사이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천장은 높을수록 창이 길어지고 창이 길고 커지면 빛이 많이 들어온다. 빛은 성령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교회를 높게 세웠다고 한다. 건축기술이 발달한 후기 고딕양식에서는 기둥옆에 부연부벽(flying buttress)이 없는데 대신 복잡하고 화려한 둥그레 만든 천장 궁륭(Vault, 돔)으로 천장의 무게를 분산시킨다고 한다. 돔형태의 붉은 장식은 바로 궁륭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로 무료이다.
성토마스는 지난 여행지인 상수시 내 신궁전 그림(카라바조의 <성 도마의 의심>)에 나오는 성인으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아서 옆구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던 성인의 제자다. 이곳은 토마너 성가대(현존하는 성가대 중 가장 오래됨)의 근거지이며 16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종신 사원이다. 바흐는 이곳에서 토마너 성가대를 지휘자로 25년 동안 재직했으며 교회 연주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성토마스교회에 입장하기 전에 바흐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관광객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족사진은 찍지 못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바흐 박물관 안에서 내려다보면서도 찍고 박물관을 오가면서 찍고 다음날 다시 와서 찍었다.
교회로 입장하니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단 앞에 있는 바흐의 무덤이다. 무덤 위에는 바흐 이름이 새겨져 있고, 장미꽃이 놓여있다. 스페인 여행할 때도 교회 내부에 무덤이 있는 경우를 종종 보곤 했는데 적응이 안 된다. 어쩐지 으스스하다. 내부는 화려하지 않고 천장을 제외하면 소박하고 단조로운 편이었다. 긴 통로를 따라 의자가 놓여있고 높은기둥이 천장을 향해 뻗어 있다. 천장에는 빨간 그물모양의 장식이 얼기설기 장식되어 있고 가운데는 꽃모양이 수놓아 있다. 흰 벽의 기둥과 붉은 장식이 돋보인다. 작고 긴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은 스테인드 글라스는 알록달록 다채로움을 드러냈다. 교회에서는 일요일에는 미사가 있으며 주중에는 바흐 교회 음악도 연주된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도 좋겠다.
바흐 박물관에서 바흐 음악을 만나다
성토마스교회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바흐 동상이 보이고 바로 앞에 노란 건물 보인다. 박물관처럼 보이지 않고 일반인들의 주택 같은 건물에 있다. 언뜻 지나치기 십상이다. 노란 벽돌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들어가면 작은 앞마당이 있고, 안내데스크가 있다. 음악책에서 자주 보아온 익숙한 바흐 상반신 흰색 석고상이 인사를 건넨다. 입장권을 끊고 영어해설 음성안내기를 받았다. 입장시간은 월~일요일 및 공휴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이며, 입장료는 10유로다.
바흐 박물관(Bach Museum)은 토스카나 기둥과 로흘리츠 반암으로 만든 둥근 아치형 포털이 있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16세기에 지어졌다. 4층 건물인데 2, 3층에는 돌출형 창문이 있다. 원래는 바흐 가족과 절친이었던 보제 가족의 집이다. 바흐는 교회 옆에 교회의 부속건물에서 살았는데, 1902년에 헐렸다. 잘 보존되어있던 보제 가족의 집을 바흐 박물관으로 신설했다. 바흐와 가까이 지내던 보제가는 금은 중개인으로 꽤 부유했다. 보제가족은 건물을 증축하여 콘서트홀과 연회장을 지어 바흐가 연주하도록 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JohannSebastianBach, 1658~1750년)는 독일 헨델에서 태어났다. 바흐 가는 200년에 걸쳐 50여 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유럽 최대의 음악가계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로 신교로 불리는 프로테스탄트 집안이었다. 9세 때 어머니를 10세 때 아버지를 잃은 뒤 오르드루프(Ohrdrf)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요한 크리스토프(JohannChristoph)에게 맡겨져 학교교육과 음악교육을 받았다. 15세부터는 뤼네부르크(Lüneburg)에서 학업과 음악공부를 했다. 18세(1703)에 요한 에르스트의 궁정 바이올리니스트로 재직했고, 아른슈타트(Arnstadt)의 신교회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 지휘자로 활동했다.
어릴때부터 영재교육? 받았고 일찍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시대에 바라봐서 그런건지 그당시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2세(1707년)에 뭘 하우젠(Mühlhausen)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하고 사랑하던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와 결혼했다. 교회음악 개혁을 적극 주도했으나 교회 측과 대립하게 되어 물러난다. 23세에 바이마르(Weimar)의 궁정 음악사로 취직하였고 프로테스탄트 영주 빌헬름 에른스트(요한의 숙부)의 지원으로 음악적 재능이 열매 맺는다. 33세(1717년) 궁정 악장이 되어 악단의 지휘와 실내악 연주와 창작에 몰입한다. 바흐의 아내가 사망한 후 안나 막달레나(AnnaMagdalena) 와 재혼하여 13명의 아이를 낳는데 여러 명의 아이들이 사망하기도 한다. 안나 막델라나는 여자 성악가로도 꽤 유명하다.38세에 라이프치히 성토마스교회와 학교에서 음악 책임을 맡게 된다. 바흐의 작품은 관현악 모음곡, 바이올린 협주곡, 실내악,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곡 등 수많은 작품이 있다.
박물관 1층 전시실에는 바흐의 초상화가 여러 점 있으며 악보, 생활용품, 서신과 선물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바흐의 가계도가 있는데 바흐 가족 전체가 음악가 집안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바흐가 교회에서 사용했던 오르간도 전시되어 있고, 오케스트라에 사용하는 악기도 전시되어 있다. 바흐가 작곡한 작품을 오디오를 통해서 들으며 클래식에 빠져보아아도 좋다. 2층에서는 성토마스 교회와 바흐 동상이 있는 거리가 보인다. 박물관 내부를 보고 나오면 안내데스크에서 뒷마당 정원도 꼭 가보라고 이야기해 준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쉬어가도 좋다. 필자가 아는 바흐 작품은 <마태 수난곡>과 <G선상의 아리아> 뿐이라 박물관을 다녀온 뒤로는 클래식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클래식은 여전히 많이 어렵다.
라이프치히 구 시청사가 역사박물관이 되다.
바흐 박물관에서 나오면서 보니 점심을 먹었던 곳이 바흐박물관 바로 옆에 있었다. 눈뜬장님 마냥 같은 곳에 여러 관광지가 모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시역사박물관 건물 앞에는 지하철역이 있고 넓은 광장이 있었다. 마르크트 플라츠 광장으로 주변에 많은 상가가 몰려 있고 사람들도 많았다. 야외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구 시청사는 300여 미터 정도로 길었고 3층 건물로 붉은 벽돌로 되어 있는데 마치 목재건물처럼 느껴진다.
라이프치히 구 시청사이며 현재는 시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라이프치히 역사박물관은(Stadtgeschichtliches Museum Leipzig)은 르네상스 건축물로 지하에는 오래된 감옥의 유적이 있으며 2~3층은 중세부터 현재에 이르는 도시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관람(관람시간 월~일요일, 10:00~18:00)은 무료인데 6시가 마감이라서 서둘렀다. 한 시간 내에 다 볼 수 있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짧게라도 보기로 했다. 넓은 시청 홀도 있고, 시장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회의장으로 보이는 홀에는 역대 시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의자도 진열되어 있으며 실내가 고풍스럽다. 전시장에는 여러 섹션으로 되어 있는데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과거에 사용했던 마차, 등, 부엌, 음식물저장고 등이 있다.
어디서나 음악 흘러나올 것 같은 거리
부지런히 역사박물관을 보고 박물관의 또 다른 출구로 나오니 광장이 있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에는 괴테 동상이 있고 주변 상가에서 내어 놓은 야외 탁자에는 사람들이 음식과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괴테 동상 앞에서는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여행의 세 번째 목적 중 하나가 괴테이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역사박물관 앞 광장에서 야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 잠시 노래와 반주에 섞여 들어갔다.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와 음식을 즐기고 있고 푸드 트럭에서는 여러 음식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공원 근처라서 그런지 점심 먹을 때도 그랬는데 벌이 자꾸 달려들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여흥을 즐겼다. 저녁은 길거리 음식인 카레부스터를 먹기로 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서 간단히 먹었다. 길거리 음식은 처음이었는데 딱딱한 빵 한 조각과 먹는 카레부스터는 맛이 없었다. 베를린 음식점에서 먹은 카레부스터가 자꾸 떠올랐다. 소시지에 케첩만 들어 있는 그야말로 길거리 음식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어서 저녁 8시도 되지 않아 숙소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물을 사고 라이프치히 거리를 걸었다. 다음날 보게 될 성니콜라스 교회와 라이프치히 대학도 보았다. 길거리에서 버스킹 연주하는 사람도 많다. 오르간 드럼 기타 등. 거리는 중세도시에 온 듯하여 라이프치히는 어디를 가도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선율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