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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Oct 05. 2024

프랑크푸르트 오데르 건너 폴란드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가 두 개, 독일자유여행 6일 차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가 두 개다.

우리나라 광주가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 광주가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는 마인강옆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이다. 우리 가족이 독일에 입국할 때 들어왔던 곳이고 마지막 여행지이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은 독일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로 대도시다.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는 오데르강이 흐르는 폴란드에 인접한 시골도시다.


독일 6일 차 여행은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오더)다. 이곳은 이번 독일여행의 주요 목적지다. 딸이 이곳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과 달리 독일여행 6일 차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맑고 파란 하늘이 베를린 숙소를 나설 때부터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베를린에서 기차와 지하철, 고속열차를 갈아타고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로 향했다. 원래는 1시간 반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독일 기차의 문제로 고속열차가 사라져 3번을 갈아타고 3시간이 소요되는 먼 여행길이 되었다. 독일 기차의 지연문제를 두 번째 겪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베를린 시내를 지날 때는 구경하지 못했던 도시의 모습을 차창밖으로 보았다. 고속열차를 탈 때는 바깥경치를 바라보며 독일의 자연을 감상했다. 독일 자전거 라이더들의 건강한 모습도 보았다. 이국 땅에서 여행은 별것 아닌 모습도 눈에 들어오고 마음이 가고 색달라보인다.


딸의 공간, 기숙사 입성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3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에 도착했다. 오데르역은 작은 시골역처럼 정감 있었다. 버스를 타고 딸의 기숙사로 향했다. 딸이 숨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으로 간다니 마음이 설렌다. 딸도 부모님께 자신의 타향생활을 보여준다는 것이 조금은 긴장되고 두근대는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가로수가 도로에 숲을 이룬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기숙사는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었다. 빨갛고 초록색 칠한 기숙사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났더니 딸이 생활하는 기숙사는 그 뒤쪽 건물이라고 한다. 차분하고 담백하게 색칠한 서민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계단을 타고 삼층에 올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 명이 함께 생활하는 아파트형 기숙사다. 기숙사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가본 적도 없어서 상상이 가지 않는 공간으로 입성했다.


"독일은 자동키가 아니야. 열쇠로 여는데 현관과 방열쇠가 하나야. 내 방 열쇠로 현관문은 여는데 다른 방문은 열 수가 없어. 신기하지. 열쇠를 잃어버리면 큰일 나. 방에 들어갈 수가 없거든."

딸이 신기한 마법의 열쇠이야기를 해준다. 여러 번 말해주었던 열쇠의 신비로움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연한 스카이블루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좌측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다. 안쪽은 딸 방이고 우측에는 두 방이 있는데 각각 다른 룸메이트가 이용한다고 한다. 한국인 유학생과 인도인 유학생이라고 한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딸은 룸메이트가 본인이 먹고 사용한 물건을 설거지하지 않고 치우지 않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어느 한국인 유학생은 룸메이트가 기숙사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고 자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학생 중에는 저녁에 늦게까지 떠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한국인 유학생은 룸메이트 때문에 생활하기 힘들어 울기도 했다고 한다. 딸은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갖는다고 몇 번 호소하기는 했는데 친구 기숙사에서 작은 파티(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페이스톡 화면 속에서만 보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벽지대신 벽돌을 낮은 채도의 푸른 회색 페인트를 칠한 벽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작은 침대하나에 책상과 옷장이 있고, 남쪽으로 창이 나 있다. 심플하다고 하기보다는 삭막한 느낌이다. 화분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딸이 사는 곳에 처음 방문하면서 빈손으로 간 것이 미안하다.

"화분이라도 하나 사 올걸 그랬다."

"화분 잘 못 키우니 괜찮아."

딸은 미안한 내 마음을 아는지 괜찮다고 한다.

 

짐을 내려놓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도시를 구경삼아 조금 먼 곳에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가로수길과 주택가를 한참 걸었다. 산책 삼아 가는 길에 들꽃도 보고 집도 구경했다. 소도시의 작은 마을 같았다.

딸이 엄마아빠에게 야심차게 김치찌개를 해주겠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샀고 독일두부는 맛이 없다고 하여 재료에서 빼기로 했다. 독일의 식재료는 우리나라의 반가격도 안 된다. 독일의 물가는 야채, 과일, 고기 등 식재료는 저렴하고 음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은 비싸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맛있다. 과자는 첫날 사 먹어보니 맛이 너무 진하고 강해서 이후에는 사지 않았다.


시장을 보고 오니 몸이 피곤했다. 딸은 본인이 점심을 준비하겠다며 엄마아빠는 쉬라고 한다. 작은 침대에 둘이 누워서 한숨 잤다. 여행의 피로를 딸의 기숙사에서 풀었다. 한 시간쯤 잤더니 딸이 점심 준비가 다 되었다며 깨운다. 김치찌개와 쌀밥이 차려졌다. 감격의 순간이다. 딸이 차려준 든든한 밥상을 받으니 황송한 마음이 금할 길이 없다. 작은 부엌의 작은 식탁에 세 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음~ 맛있다. 우리 딸 요리 솜씨 좋네. 최고!"

"독일 와서 요리 솜씨 많이 늘었어. 친구들은 음식 안 해 먹는데 딸은 잘해 먹어. 헤헤헤."

식사 후에는 이전 룸메이트였던 이탈리아인 친구가 알려줬다며 사과파이까지 뚝딱 구워주었다. 딸은 독일 와서 얼굴도 좋아지고 살도 조금 찐 것 같다. 음식 해 먹는 거 보니 독일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딸은 외롭다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타향살이가 참 쉽지 않지. 우구우구~ 우리 딸 외로웠어요. 토닥토닥."


비아드리나 대학 탐방


딸이 차려준 맛있는 점심을 먹고 프랑크푸르트 오데르 여행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비아드리나 대학으로 이동했다. 비아드리나 대학(Europa-Universität Viadrina)은 학생수가 6500여 명으로 독일인이 77%, 폴란드 학생 12%, 기타 11%를 차지한다. 그중 한국인 대학생인 40여 명 있다고 한다.

비아드리나 대학교 구경전에 딸은 은행 AMT창구에 갔고, 엄마아빠는 밖에서 거리 풍경을 했다.


본격적인 대학교 구경을 시작했다. 대학 캠퍼스라고 해봐야 별건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나 조경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울타리도 없는 도심에 건물이 똑똑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학 본부, 대강당, 도서관, 학생관 등 앞에서 사진을 찍고, 딸이 자주 가는 도서관과 강의동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강의실 내부는 볼 수 없어서 복도 모습만 사진에 담았다. 여느 대학 강의실 앞의 모습이다. 알림판에 종이가 걸려 있고, 강의실과 교수실이 있다.

딸은 이 대학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공부했을까? 처음에는 영어로 듣고 말하고 팀과제를 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영어가 들리지도 않는데 내향형인 딸이 잘되지도 않은 영어로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서양인 유학생들은 곧잘 영어를 한다고 말했다. 인도인 유학생도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독일어는 처음 배우는데 재밌다고도 했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겠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건물을 지날 때마다 딸의 유학생활을 이야기해 줬다. 도서관에서는 과제를 했고, 강의실 앞에서는 발표를 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말도 못 했다고 했다. 학생식당 음식은 맛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해 먹었다고 했다.  어떤 표지판은 앞은 공놀이를 하는 표지판인데 뒤는 공놀이 금지표지판으로 되어 있다고도 했다. 화장실은 화장지 대신 타월을 사용하는데 끝까지 당기면 멈추는 지점에서 손을 닦고 나면 저절로 감아지는 구조라고 했다. 처음 사용하는 타월화장지가 신기했다.


학생식당 앞으로는 오데르강 지류가 흐르고 있다. 유학생활이 힘들 때 잠깐 쉬어가기 딱 좋아 보였다. 강물이 고요히 지나고 강줄기 따라 무성한 수풀이 속살거린다.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두대의 보트가 지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과 푸르름 가득한 풀숲에 파란 하늘과 구름을 더하여 두대의 보트가 길고도 간지러운 산들거리는 바람을 일으킨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보트를 보니 휴양지에라도 온듯하다. 딸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공부했다는 것에 감사한다.


오데르강 건너 폴란드


비아드리나 대학 탐방을 끝내고 폴란드 국경으로 가기로 했다. 산책길에 만나는 건축물을 지나니 오데르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보였다.

" 저 다리를 건너면 폴란드야!"

"와! 저기만 건너면 폴란드란 말이지?"


오데르강(Oder) 또는 오드라강( 폴란드어: Odra, 체코어: Odra)은 폴란드, 체코, 독일 국경을 흐르는 강으로 길이 854km, 유역 면적 118,861㎢, 평균 유속은 574 ㎥/s이다. 한강 길이는 494.4km, 유역 면적 25,953.6㎢, 유속 340㎥/s으로 비교하면 오데르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데르강은 글리비체 운하, 오데르-슈프레 운하를 통해 엘베강, 바르타강, 비스와강과 연결되어 있다. 내륙 수상 교통역할을 한다. 주요 수송물자는 실레시아의 석탄, 철광석을 비롯한 원료, 공업제품등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넓게 깔려있고 군데군데 회색 구름이 있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떠있고 강에는 거울처럼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하늘의 구름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고 파란 바다 같은 하늘도 구름의 흐름 따라 그 빛이 변한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다채롭다. 하늘도 국경의 차이를 알고나 있는 듯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폴란드를 건너서 독일쪽을 바라보니 독일에는 낮은 회색 구름이 가득하다. 하늘도 제각각 다른 빛을 하고 있다. 오데르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폴란드가 맑고 청명한 하늘과 푸른 강물을 공유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니 폴란드 수우비체(Slubice)로 진입했다. 국경은 경계가 없고 제제하는 사람도 없다. 여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표지판만 있었다. 우리나라는 38선을 사이에 두고 쌍방 군대의 접촉선인 군사분계선을 나누고 남북으로부터 각각  2km씩 4km 폭으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를 갖고 있으며 그 누구도 건널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 쉽다. 다리만 건너면 다른 나라에 이르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을 두고 우리는 언제 그곳에 다다를지 모른다.


폴란드 국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지고 온 물로 목을 적시고 초콜릿으로 피곤함을 달랬다. 폴란드의 31번 도로 코스트르진(Kostrzyn), 슈체친(Szczecin) 초록색 표지판이 있는 회전 교차로를 보았다. 코스트르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슈체친은 1945년까지 독일령으로 있다가 현재는 폴란드에 해당하는 항구도시다.


잠시 다리를 쉬었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폴란드로 진입하는 차량보다 독일로 가는 차량이 많았다. 폴란드로 진입하는 차량을 검열하는 검문소는 없었는데 독일에는 폴란드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검열하는 곳이 있었다. 독일은 GDP 세계 4위, 폴란드는 22위로 국가의 경제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차이인 것 같다.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왕래를 하면서 일자리를 구해서 폴란드 사람들이 독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것은 역사적으로 두 번 있었지만 두나라 관계는 대립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유럽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경제 대국이고 폴란드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오데르 강을 건너 다시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로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보지 못했던 건물들을 다시 본다. 트램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저녁은 기숙사에서 간단하게 라면을 끓였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길도 3시간은 넘게 걸리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는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녁 노을빛을 받은 오데르역이 붉게 물들어간다.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독일의 풍차도 노을빛과 함께 타들어간다.



#하나만 #독일여행

#딸아행복은 여기에 있단다_엄마에 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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