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영 Oct 12. 2024

'눈물의 여왕' 그 이상의 포츠담

포츠담 상수시, 신궁전, 구시가지 독일자유여행 7일 차

독일여행 7일 차 여행은 포츠담이다.


포츠담회담과 '눈물의 여왕' 드라마가 떠오르는 포츠담으로의 여행은 어떤 느낌일런지...


전날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와서 딸은 아침을 시작하기 버거워했다.

"엄마아빠 둘이 가면 안 되겠지? 미아 되겠지?"

8시쯤 눈을 뜬 딸은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하니까 천천히 나가자."

엄마아빠는 6시에 깨서 아침까지 먹었는데 딸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10시가 넘어서 겨우 일어나 준비하고 나서니 11시가 다 되었다. 며칠 동안 모아둔 빈 물병을 마트 반납기에 반납하고 받은 쿠폰으로 물과 음료수를 샀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로 갈아탔다. 기차는 이번에도 30분 지연되었다. 독일에서 열차 지연이 잦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베를린에서 포츠담까지는 기차로 40여분 소요되었다. 포츠담에서 상수시궁전까지 가는 트램을 탔다. 포츠담은 최근 드라마 '눈물의 여왕'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김수현과 김지원의 신혼여행 촬영지인 상수시는 이번 독일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택했다.


상수시(Sanssouci)라는 말은 '~가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sans과 '걱정'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souci가 합쳐진 말이다. 상수시 궁전은 '걱정 없는 궁전'이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을 모티브로 1747년 지어진 프리드리히 황제의 여름궁전이다. 우리는 장난으로 '상주시 아니고 상수시다.' '상수씨네 집에 가자.'라고 말한다. 독일 궁전이 한국스럽다며 장난을 친다.


걱정 없는 상수시 궁전에서 피크닉이라니!


포츠담역에서 내려 케밥을 샀다. 비가 와서 못했던 피크닉을 상수시에서 하기로 했다. 상수시 궁전 입구는 정문이 아니었는지 지나는 길이 작고 좁다. 작은 호수와 건물, 조각상들도 보인다. 구석구석을 보고 싶지만 우리의 주요 관광 목적지는 상수시 궁전이기에 잠깐씩 눈여겨보기만 한다. 공원에 잔디와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는 길을 지나니 넓은 잔디가 펼쳐진다. 맑고 푸르고 깨끗함이 하늘바다를 수놓고, 초록빛이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다. 멀리 하늘에 다을 듯한 언덕에는 노란 황금색 칠한 벽과 푸른 청동지붕이 당당히 서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 궁전이다.

"와~ 좋다."

탁 트인 개방감과 시원함이 반갑다.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은 더 좋다.

하늘을 보노라니 윤동주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소년>

내 눈썹에도 양볼에도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들 것 같은 하늘이 강물처럼 흐른다.

강물처럼 흐르는 파란 하늘 아래에는 초록색 풀이 초록 물감을 풀어놓았다. 초록잔디에 뒹구니 온몸에 초록 물감이 묻어난다. 나중에 보니 계단마다 초록색 풀의 정체는 포도나무였다. 포도밭 언덕 위에 궁전을 지은 것이다. 포도밭 언덕 위에 궁전을 지었다니 그것도 신기하다.


맑고 화창한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같은 독일 여름날씨는 햇살이 따가웠다. 나무 그늘을 찾아 초록색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포츠담역에서 사 온 케밥을 놓고 가지고 온 책도 돗자리 위에 두었다. 독일에서 피크닉은 일상인지 딸이 챙겨 오라고 일러두어서 돗자리는 한국에서 사갔다. 상수시 궁전이 바라보이는 정원에서 피크닉을 하다니 그것 자체만으로 행복감이 밀려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간에서는 피크닉을 할 수 없는데 독일에서는 가능했다.

자외선 가득한 햇볕은 나무그늘에 누운 우리들에겐 하나의 구경거리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니 서늘한 기운이 올라온다. 누워서 나무 사이로 하늘을 보고 살랑대는 바람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도 몇몇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에서 한국말이 들렸다가 멀어진다. 책을 보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서 잠이 몰려온다.


한 시간여를 쉬고 나니 움직일 힘이 난다. 선글라스와 양산까지 쓰고 나니 햇살도 무섭지 않다. 우리가 누웠던 앞에는 분수가 더위를 식히며 하늘로 솓아오르고 있다. 노란 황금 궁전을 바라보며 가운데 길을 따라 걸었다.

관광객들은 많지 않아서 한산했다.

계단 층계마다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나무를 다듬으며 가꾸고 있었다. "덥겠다." 누군가의 손에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있는 궁전이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해외여행에서 누군가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소매치기범을 의심해봐야 하지만, 상수시에서는 소매치기 걱정 없다. 걱정 없는 궁전이라 그런가?


보고 또 보아도 예쁜 상수시 궁전


궁전 앞에 이르러 보니 궁전은 그리 크지 않았으며 단조로웠다. 가운데 돔형태 푸른 지붕이 있고 벽면과 기둥은 노란 황금칠이 있다. 돔을 가운데 두고 긴 회랑 건축물이 있다. 벽면에는 인간인지 신인지 조각상들이 새겨져 있다.

상수시 궁전은 로코코 양식의 대표 건물이다. 로코코 양식은 루이 15세가 통치하던 시대 양식으로 우아하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부드러운 곡선의 디자인이 많다. 디자인과 내부 장식은 프리드리히 왕의 개인적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왕은 개뿐 아니라 음악, 책, 그림, 돌로 만든 인물상도 사랑했다고 한다.


좌우 긴 회랑을 돌아 뒤로 가보니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은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급 갈증이 느껴진다. 궁전 실내입장을 하려고 하니 관람객수가 마감되어 실내는 보지 못했다. 포츠담에서 갈 곳이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궁전 왼편에는 프리드리히 왕의 무덤이 있다. 그런데 무덤 위에 감자가 놓여있다. 사연을 알고 보니 기근이 심할 때 감자를 보급하기 위해 직접 감자를 먹어서 백성들이 따라먹도록 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무덤은 원래 포츠담 가르니손 교회에 안장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에 의해 유해가 강탈될 것을 우려하여 히틀러의 지시로 베른테로데의 소금광산으로 옮겼다. 포츠담이 동독관할권이 되면서 마르부르크 성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호엔촐레른 성으로 이장되었다가 독일통일 이후 프리드리히 유언대로 애견들과 함께 안장되었다. 다섯 번이나 옮겨진 프리드리히 왕은 뒤늦게 유언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궁전에서 다시 정원으로 내려오니 분수대 주위로 꽃들이 가득하다. 작은 시내가 흐르고 궁전 주변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있다. 보고 다시 보아도 예쁜 궁전과 정원이다.

상수시는 눈물의 여왕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로 꼭 와볼 만한 곳이며 포츠담에서 관광지로서 빠지지 않고 봐야 할 장소로서 손색이 없다. 상수시궁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이드 투어도 있고  오케스트라 공연도 있으니 미리 예약하여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상수시 정원 내에 또 다른 궁전, 신궁전


딸이 엄마가 궁전을 좋아하니 또 다른 궁전에 가보자고 했다. 엄마아빠는 딸이 어디로 우리를 안내하는지 모르고 그저 따라나섰다. 사실 딸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지도 검색에 의존해서 나서는 길이었다.

상수시 궁전에서 정원을 다라 나오니 또 다른 건축물이 있었는데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또 한참을 걷다 보니 중국풍의 건축물을 만났다. 중국식 찻집(Chinesisches Haus,1754~1757년)으로 프리드리히 왕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왕은 중국 가옥의 느낌을 선호했다고 한다. 찻집외부는 금색 야자수 모양의 기둥이 있고 금색조각이 있다. 이곳에는 프리드리히 원형 서재도 있고 조각과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있다고 한다.


자외선이 강해서 더웠는데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걸으니 걸을만했다. 산책하듯 걸어서 가다 보니 냇가를 따라 노니는 오리도 보고 울타리에서 풀을 뜯는 흰 염소도 보았다. 영화 작은아씨들에서 데이트하는 주인공이 있을법한 정자처럼 보이는 건축물도 있었다. 지붕의 돔도 보였으나 어떤 건축물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스신화 속 인물인 아르테미스와 아레스 동상도 만났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걱정이 없었다. 숲 속에 난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갈 뿐이었다. 시간에 쫓김 없이 가는 길이라서 편안했다. 목적 없이 걷는 길에서 뜻밖의 만나는 모든 사물들이 새롭고 반가웠다.


포츠담 신궁전에 이르다.

 

한참을 산책하듯 걷다 보니 아름다운 궁전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신궁전(Neues Palais)이다.

상수시 공원의 서쪽에 있는 신궁전은 상수시를 건설한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건축되었다. 1763년부터 1769년에 건축된 이 궁전에는 18세기 예술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프레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 영유권을 둘러싸고 유럽 대국과 싸운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서 지었다. 궁전이지만 왕실의 주거 목적이 아니라 왕족과 고위 인사들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건축했다. 왕실행사나 무도회, 국정 행사 등이 주로 열렸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한 후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프리드리히 3세 여름별장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좌우로 길게 지어진 신궁전은 연붉은 벽돌을 사용했고 그리스신이 연상되는 조각상들이 궁전을 빙둘러서 장식되어 있다. 3층으로 되어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꽤 높아 보인다. 가운데에 둥근 돔이 있으며 양쪽으로 긴 직사각형의 건축물이다. 대연회장과 스위트룸, 극장이 신궁전 안에 있다고 한다.  

신궁전에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가 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아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나서야 믿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외에도 화가 장 앙투안 와토가 그린 <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항구의 풍경>도 있다.


궁전의 내부도 꼼꼼히 관람하고 회화도 보면 좋겠지만 휴관일이라 밖에서만 구경했다. 딸은 신궁전 앞에 있는 벤치에 드러누웠고, 아빠도 벤치에 앉아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엄마 혼자서 신궁전 앞뜰과 뒤뜰을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고 궁전을 감상했다. 반인반마 조각상이나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조각상을 보며 새삼 유럽사람들은 그리스 신화를 무척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선악과를 먹는 아담과 이브, 그들을 꾀어내는 악마, 가로등에 세워진 조각상이 너무 귀엽다. 두 악동이 업고 업혀서 장난하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조각가의 재치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의심하는 도마/ 춤/ 항구의 풍경


상수시 정원 내, 신궁전 앞에 포츠담 대학이 있다.


신궁전 바로 앞에도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멀리서 딱 봐도 예사롭지 않다. 신궁전을 사이에 두고 굵은 쇠창살이 있는데 문이 개방되어 있다. 궁전으로 보이는 곳은 포츠담 대학 캠퍼스 중 일부다. 포츠담 대학 캠퍼스는 포츠담 시내에 퍼져 있는데 일부가 신궁전에 있다. 우리가 본 오래된 건물이 대학도서관과 역사연구소이다. 수학연구소는 옛 마구간에 있다고 한다. 포츠담 대학 신궁 캠퍼스 바로크양식 건축물은 궁전의 사무실과 휴게실을 이전할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측에는 검은 돔 건축물이 있고, 좌측에는 청동 건축물이 있으며, 가운데 드나드는 출입문이 있고 회랑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신궁전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검은 돔 건물 뒤편에 계단이 있다. 신전의 계단 같은 느낌인데 약간 검은 계단이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는 것처럼 사진을 찍자고 딸이 재촉하여 계단 위에 섰다. 표정도 자세도 꽤 그럴싸하게 찍었다. 가운데 문을 통과하니 네오르네상스 건축물 신전 기둥이 회랑을 장식했다. 회랑을 따라 걸어 나올 때는 신전의 사제처럼 걸었다. 문을 나와 포츠담대학 편에 서서 바라보니 건너편에 신궁전이 담겼다. 포츠담 대학 신궁캠퍼스에는 이외에 대여섯 개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포츠담대학 다른 건축물은 관람하지 못했고 버스 타러 나오는 길에 멀리서 보았다.


눈물의 여왕 촬영지 상수시 궁전만 보려고 했는데 상수시 정원을 돌면서 차이나하우스를 보고 정원의 넓은 숲을 구석구석 산책했다. 상수시 정원 내에 있는 신궁전을 만나고 포츠담 대학까지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포츠담 구시가지 구경하다


포츠담 대학을 보고 나서 포츠담 구시가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버스로 30여분 이동을 하니 포츠담 시내다.

건축물은 2~3층으로 낮았고, 엷은 노란색과 갈색 벽돌을 이용한 거리의 건축물이 석양 무렵이라서 그런지 분위기 있다. 반듯하게 정돈된 거리는 깔끔하다. 다양한 가게들이 도로를 따라 즐비하다. 시가지 구석구석을 찾아보지 않아서 그런지 중세 유럽풍의 거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소도시의 모습이다. 트램과 자동차, 자전거가 공존하며 달리는 한산한 도로를 보며 걸었다. 멀리 나우엔 문(Nauener Tor)이 보인다. 이 문은 포츠담 옛 성벽의 출입문이다. 원래 4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73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서 1755년에 완공했다고 했다. 프리드리히 왕이 직접 스케치했고 상수시 공원과 신궁전을 만든 건축가 뷔랭(Johann Gottfried Büring)이 만들었다. 이 문은 트램만이 이동할 수 있다.


저녁 6시가 넘었으니 저녁은 무얼 먹을지 생각하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 간단하게 차나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싶었지만, 포츠담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맥주를 시키고 베트남쌀국수를 먹었다. 독일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는 우리가 먹는 그 흔한 쌀국수 맛이다.


포츠담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포츠담은 1345년 도시 지위를 얻었고 1573년까지만 해도 인구 2,000명에 불과한 마을이었다. 1660년 프리드리히 1세의 사냥지로 지정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은 후에 프로이센 왕국으로 발전했다. 1685년 포츠담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자 이곳으로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프리드리히 왕 때부터 프로이센 왕가가 사는 거주지가 됐다. 1815년 이후 프로이센의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가 됐다. 베를린이 프로이센의 수도가 되고 난 후와 독일제국의 수도가 된 뒤에도 황제의 궁전으로 남았다. 그러나 1918년 빌헬름 2세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퇴위되면서 포츠담은 제2의 수도로서 지위를 잃었다.

포츠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츠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 사이에 전후 독일과 유럽의 질서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포츠담 회담이 열린 곳은 체칠리엔호프 궁전이다. 체칠리엔호프 궁전은 1917년 빌헬름왕자와 체칠리에 왕비를 위해 신정원 안에 지은 프로이센 최후의 궁전이다. 원래 베를린에서 회담을 열려고 했으나 파괴가 너무 많이 되어서 회담을 열만 한 장소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동독 정부는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를 종식한다는 명분 아래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을 없애 버렸다. 파괴됐던 시내 궁전은 독일재통일 이후인 2002년 다시 복원하였다.

포츠담은 19세기부터 과학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고 3개 전문대학과 30개 이상의 연구소가 있으며 바벨스베르크 콘라트 볼트 영화대학(HHF)은 영화인을 양성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서 익히 알고 있는 포츠담회담은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루스벨트)과 영국(처칠), 중국(장제스), 소련(스탈린) 등 연합국 정상들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처리를 의논한 회담이다.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회담이다. 포츠담회담은 패전국 독일에 대한 처리문제, 폴란드 서부 국경, 오스트리아 점령지 문제, 동유럽에서 소련의 역할 문제, 배상금, 독일과 폴란드 간 국경을 확정하고 독일을 분할 점령하기로 확정했다. 전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일본에게는 무조건 항복 권고와 이후 일본에 대한 처리 문제를 논의하여 합의하였다. 일본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두 번에 걸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받고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포츠담은 우리 역사와도 밀접한 장소다. 포츠담 여행에서 아름다운 상수시 궁전과 드라마 명장면을 떠올려도 좋고 우리 역사에 영향을 미친 과거를 생각해도 좋다. 포츠담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많다. 가족 여행도 추가!  






#하나만 #독일여행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이전 08화 프랑크푸르트 오데르 건너 폴란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